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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서> 받아쓰기 100점 장관들
“도대체 지금까지 뭐했습니까? →이렇게 하는 게 좋습니다. →자, 자, 그냥 이렇게 하세요.”

2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은 마치 학생을 불러앉혀 놓고, 방과후 나머지 공부를 시키는 분위기였다. 선생님들은 답답한 심경으로 화도 내고, 어르기도 했다가, 안 되겠다 싶었는지 A부터 Z까지 가이드라인을 써주는 열성을 보였다.

북한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이라는 국가 위기상황에서 정부의 대응능력은 점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었다. 이날 회의에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류우익 통일부 장관이 참석, 위기상황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한 무능함에 대한 반성문을 썼다. 두 장관은 비상시국에 구체적인 대책 없이 빈손으로 국회를 찾아 더욱 뭇매를 맞았다. 덕분에 이날 국회는 오랜만에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대책회의실이 됐다.

참여정부 시절 외교부 장관을 지낸 민주통합당 송민순 의원은 류 장관에게 “조문 관련해서 아직도 결정 못하고 뭐하는가. 국론분열 안 생기도록 정부가 깃발을 들어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냐”고 질책했다. “한반도 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내놓는 두 장관에게 “자, 이렇게 하세요. 여야정 협의를 빨리 여는 게 좋을 겁니다. 그리고 북한과 가장 가까운 한ㆍ중 간 교신이 제일 중요합니다. 워치콘을 상향조정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애기봉 탑은 공세적 제스처로 비칠 수 있으니 자제해 주세요.” 등 구체적인 조언을 쏟아냈다.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이 “북한이 외국 조문단을 사절했지만 이희호 여사가 조문하러 가신다고 하면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가 안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고 말하자, 류 장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 여사 방북 조문 관련 입장을 가급적 빨리 내겠다”고 답변했다.

같은 당 구상찬 의원은 외교통상부가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중국과의 ‘핫라인’도 가동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한ㆍ중 관계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19일 미국, 일본, 러시아 3국의 수장과 차례로 통화했지만, 북한 동향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 통화도 못했다는 굴욕적인 상황도 알려졌다. 구 의원은 “이 대통령이 20시간 통화 시도했는데 불발됐다는 건 한ㆍ중 간 외교문제가 심각한 것 아니냐”고 물었고,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전화통화 문제는 익숙지 않아서 협의 중”이라는 변명으로 둘러댔다. 이어 양국 외무부 장관 간 통화도 50시간 넘게 ‘불통상태’였음이 알려지자, 김 장관은 “곧 통화를 할 예정”이라고 수습했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두 장관의 받아쓰기 점수는 100점이었다. 김성환 외교부 장관은 이날 낮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통화했다. 50시간째 안 되던 연락망을 재가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류우익 장관도 이날 오후 공식 브리핑을 갖고 ‘정부 조문단은 파견 안 한다. 단 이희호 여사, 현정은 회장의 조문은 허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두 부처에서 내놓은 브리핑 내용은 여당 의원들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적은 것으로, 국회에 불려나와 혼쭐이 나야 일하는 장관들의 모습들이 다시금 현 정부의 무능을 실감케 했다.

조민선 기자/bonjo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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