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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결국 곪아 터진…터져야만 살 수 있는 우리네 삶”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 펴낸 김인숙
운명의 수레바퀴에 얽힌

평범한 이들의 ‘생존방식’

발리서 넉달간 머물며 집필

등단 30년째…15번째 작품




“그 문이 열리면 당신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반드시 기억해야만 할 것도 기억하게 될 겁니다. 기억해야만 할 것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을 지우게 될 겁니다.”(미칠 수 있겠니 중)



김인숙의 장편소설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의 주인공 진은 힐러(심리치유사)로부터 나쁜 기억 때문에 아픈 거라는 얘기와 함께 치료를 받는다. 그러나 진은 오히려 어린시절 나쁜 기억까지 하나하나 떠올리게 된다.

소설은 관광객의 섬, 신의 섬을 배경으로 겉으론 살인까지 얽힌 치정, 연애이야기지만 선이 단순하지 않다. 섬으로 여행을 왔던 여주인공 진과 그의 연인 유진, 그곳에 눌러앉은 유진의 시중을 드는 몸종 여자아이, 춤을 잘 추는 남자아이, 섬의 드라이버 이야나와 그의 약혼녀 수니, 이아냐의 친구 만 등이 각자의 삶을 살다 어느 시점 한 수레바퀴에 운명적으로 엮이게 되는 얘기다.     

주인공 진은 연인 유진을 찾으러 섬을 찾지만 자신의 침대에서 자고 있는 유진의 아이를 밴 몸종을 발견하고는 칼을 휘두르고야 만다. 유진을 찾아 다시 찾은 섬에서 진은 엄청난 지진을 만난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진은 이야나와 이야기를 나누다 7년 전 벌어진 살인사건에 서로 관계돼 있음을 알고, 사건의 진실과 대면하게 된다.


김인숙의 인물들을 마주하는 건 조마조마하다. 속에 들끓는 무언가 때문에 조금만 힘이 가해지면 얇은 표피를 뚫고 터져 나올 것 같은 불안함 때문이다. 억눌린 것을 그나마 버티게 해주는 자존심, 터뜨렸을 때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음에 대한 미심쩍음과 소심함으로 흔들리며 안으로 곪아터진 사람들이다. 진은 섬의 화산이 활동한다는 얘길 듣고 환호하는 쪽이다.  그것이 분노든, 갈망이든 좀더 결정적인 폭발, 완전한 폭발을 원하는 이들이 있다.

임계치에 육박해 있는 이들은 그러나 특정되지 않는다. 김 씨의 이전 소설 ‘안녕 엘레나’에서 친구가 보내온 메일에 “여긴 너무 많은 엘레나가 있어”라고 말하듯, 이번 소설에서도 이름은 그가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듯  이야나, 데위 따위로 불린다.

작가는 소설을 발리에서 넉 달간 머물며 썼다고 했다. “그곳의 언어는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전혀 없다”며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언어를 만든 삶에 대한 관심에서 이 소설은 출발했다”고 말했다.

소설은 표면상으로는 지진해일과 같은 자연적 재해가 덮고 있지만 미칠 것 같은 현실, 힐러로부터도 치유받지 못하는 상처를 오히려 지진이 뒤엎어 버리면서 다시 살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스스로는 어찌해볼 수 없음을 외부적 요인에 기댈 수밖에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살아내기, 생존방식을 보여준다.

따라서 ‘미칠 수 있겠니’라는 소설의 물음은 단지 ‘사랑할 수 있겠니’만은 아니다.‘~할 수 있겠니’로 질문되는 모든 것, 저어함, 망설임, 흔들림, 가능태 사이에 인물들은 놓여 있다.

장·단편, 산문을 합쳐 15번째 작품이라는 작가는 “낯선 공간, 낯선 사람 얘길 쓰고 싶었다”며 “시작은 그랬는데 결국은 잘할 수 있는 걸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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