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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동네 골목길같은 ‘곡선의 사랑’…노인의 로맨스도 눈부시다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돌아온 이순재
가난한 노인들의 사랑이야기

50년 연기내공으로 풀어내

친숙한 우리 주변 이야기

현실성 잃지 않아

“좋은 반응 올 것 기대”





영화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영화배우 이순재(76)의 영화다. 장난기 그득한 눈으로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릴 때 그는 영락없이 짓궂은 소년이 된다. 사랑하는 연인을 먼 곳으로 보낸 뒤 회한과 아쉬움, 연민과 사랑을 담아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고 말할 때 그곳엔 칠순 지난 ‘할아버지’가 아니라 멜로 영화의 청춘스타가 서 있다. “지랄” “미친” “××놈”을 달고 사는 입이 험하고 괴팍하기 이를 데 없으며 까탈스럽기는 서릿발같은 노인이 천진한 소년, 사랑에 빠진 청년과 함께 동거하고 있다. 

지엄한 아비와 꼬장꼬장한 영감, 추상같은 대왕을 연기했던 수백편의 TV 드라마에서 시트콤의 ‘야동순재’까지, 그가 연기한 인물이 한몸 속에 용해돼 있다. 그러고 보면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이순재의 연기인생 50여년을 오롯이 담아내고 궤적을 쫓아간 작품같다. 극중 상대역인 윤소정의 남편이자 오랜 동료인 오현경은 시사회를 보고 나서 “순재형 너무 좋다”고 했단다. 


“1964년 TBS에서 9명의 배우와 전속계약을 했는데 오현경 씨와 지금은 작고한 이낙훈, 김순철 씨 등이 있었고 그때 윤소정 씨는 KBS 1기생으로 특채됐어요. 방송국 전속배우가 열 몇 명밖에 되지 않으니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서로 주ㆍ조연을 번갈아 했죠. 한 달에 31편을 촬영했죠. 65년까지는 모든 드라마가 생방송이었지. 열심히 대본 외워서 길게는 보름 정도 연습하고 드라이, 카메라 리허설을 거쳐 연극하듯 했죠. 스튜디오도 하나밖에는 없었고 실수하면 실수하는대로 그대로 다 방송에 나갔지.”

56년부터 TV와 연극무대에서 연기를 했으니 전후 한국 TV 드라마사와 연예사의 증인인 셈이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최근 서울 동숭동의 대학로 한 극장 카페에서 만난 이순재는 옛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며 50여년 몸과 이론으로 익힌 배우론, 연기론을 펼쳐보였다.

“드라마가 아예 연극처럼 실시간이었으니 배우끼리의 호흡이 중요했죠. 그런데 이제는 TV에 출연하는 젊은 배우들이 상대와 함께 연기를 하지 않아요. 상대 배우가 대사를 하면 (카메라가 자신을 비추지 않더라도) ‘리액션(반응)’을 해줘야 하는데, 고개 푹 숙이고 대본을 보고 있다니까요. 그러면 상호간에 톤 맞추기가 힘들죠. 요새 젊은 배우들은 밴 타고 와서 ‘나는 내거 하고 갈테니까 너는 니거 하고 가’라는 식이고, 카메라는 배우들이 대사만 제대로 하면 무조건 OK입니다.”

그러면서도 후배들에 대한 덕담도 잊지 않았다.

“요새 배우들은 외적으로 발산하는 연기는 다이내믹하게 한다”고 말했다. 또 요새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말 끝에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서 송강호는 정말 잘하더라”고도 했다.

이순재는 최근 TV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에선 그동안 연기력 논란에 항상 올랐던 김태희와 공연하고 있다. “이번에 보니 한 번도 투덜대지 않고 전력투구하고 있다”며 “광고모델을 하다가 연기를 바로 시작하게 돼 기본기를 익히는 훈련과정이 없었지만, 지난번에 보니 최형인 교수에게 연기를 배우고 있다고 하던데 스스로 발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니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배우”라고 말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가난한 노인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몇 십년 지기이자 동료인 윤소정, 송재호, 김수미와 함께했으니 젊은 배우들과 할 때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마음도 맞고 호흡도 맞았다.

“서울 부촌에서 영화를 찍다가 쫓겨났는데, 인천에서 찍을 때는 주민이 협조를 많이 해줬어요. 굉장히 추울 때였는데 파전이며 갖가지 먹을 것도 해다 주셨죠.”

강풀 작가의 인터넷 만화를 원작으로 한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오토바이 우유배달부로 일하는 노인 김만석(이순재)과 파지를 주우며 힘들게 생계를 이어가는 송씨 할머니(윤소정) 간의 애틋한 로맨스와 주차장 관리인인 장군봉(송재호), 치매에 걸린 그의 아내(김수미)의 가슴 아픈 사랑을 그렸다.

서민이 골목골목 다닥다닥 붙은 지붕을 이고 사는 동네에서 때론 나지막히, 때론 웃어가며, 때론 목이 메어가며 들려주는 노인들의 사랑이야기엔 사춘기같은 첫사랑의 들뜨고 서툰 열정도, 평생 힘든 걸음을 함께하며 깊이 숙성한 정도 있다.

이순재는 “만화보다는 강태기 씨가 하는 연극으로 처음 접했는데, 화려한 액션이나 빠른 템포의 이야기가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감성과 정서가 잘 살아있는 작품”이라며 “친숙한 우리 주변의 이야기이고 현실성을 잃지 않아 좋은 반응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형석 기자/ 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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