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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인세 골프소설 22] 메리와 단리, 적과의 동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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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오른쪽)과 단리 백작. [사진은 당시 초상화]


[헤럴드경제 스포츠팀] 외로움과 불안감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날 백마를 탄 구원의 기사가 메리에게 다가왔다. 헨리 단리라는 백작이었다. 그는 잉글랜드 헨리 7세의 증손자였고 메리처럼 튜터가의 피가 흐르는 왕족이자 메리와는 먼 사촌지간이었다. 그리고 왕위 계승 서열에도 올라 있던 인물이었다. 골프로만 소일하던 젊은 과부는 미남이며 사교계에서 인기가 있는 단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4년 뒤인 1565년 7월, 3살 연하의 단리경과 여왕은 에딘버러의 할리루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두번째 결혼도 결코 메리한테는 행복이 아니었다. 첫번째 결혼은 비운의 시작이었고 두번째 결혼은 파멸의 시발점이었다. 단리와의 결혼에 대해 메리를 도와 국정을 쇄신시키며 그나마 측근이라고 여겼던 이복 오빠 제임스 스튜어트는 강력하게 결혼을 반대했었다. 이복 오빠는 제임스 5세가 죽기 전 마리 왕비가 아닌 다른 첫번째 부인에게서 얻은 장남으로 북쪽 지방 모레이의 초대 백작이었다.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 여왕도 사촌 이모의 입장에서 단리를 탐탁지않게 여기며 조카인 메리를 진심으로 염려했다. 이 결혼은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권력 구조마저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귀족들은 이미 단리 집안의 헛된 망상을 감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리는 메리와 결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머지 결혼 전 그녀를 억지로 강간하다시피 해서 야욕을 채웠다. 여왕을 차지하려는 단리의 의도는 다른 데 있었다. 권력욕에 대한 집착이 강했던 그는 왕의 자리를 탐낸 것이었다.

결혼을 하자마자 단리는 속을 내보였다. 메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그저 어린 나이에 과부가 된 자신의 상처를 단리가 진심으로 어루만져주며 사랑하는 줄로 착각하고 있었다. 술중독자였던 단리는 의처증까지 있어 여왕이 다른 남자 신하들과 있는 꼴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질투심도 강했다. 그는 경솔하고 어리석었으며 무능한 인간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이 순탄할 리 없었다.

단리의 마음속엔 애정보다는 여왕을 이용하려는 생각밖에 없었다. 메리를 죽이고 정통성을 가진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둘 사이가 좋을 리 만무였다. 그래도 잠자리는 했기에 아들이 태어났다. 훗날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통일 영국의 초대 왕이 될 인물인 제임스 6세였다.

단리는 아들도 의심하면서 메리가 정부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로 생각했다. 그에게 아들은 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그 일을 구실 삼아 메리의 정부라고 생각하는 리치오를 없앨 생각을 했다. 단리에게 있어서 리치오는 걸림돌이었다. 데이빗 리치오는 메리 여왕의 비서이자 음악가이며 몇 안되는 메리의 측근이었다.

그는 사려 깊었으며 매너있게 행동했다. 메리는 그런 리치오를 사랑하고 있었다. 남편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의 감정을 리치오를 통해 보상받고 있었던 것이었다. 단리가 이를 그냥 둘리 없었다. 그의 질투심은 거의 광적이었다. 급기야 결혼한 지 1년 만에 부인이 보는 앞에서 리치오를 살해하는 잔인함을 보였다. 단리는 그를 메리의 정부라고 주장했다.

메리는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 남편에게서 살기를 느꼈던 것이다. 자신도 언제 그의 손에 죽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믿을 사람이라고는 유일한 가족이자 혈육인 왕세자 뿐이었다. 메리는 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입지를 굳히려 안간힘을 썼다. 단리와는 이혼할 생각을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단리 역시 메리를 죽이고 자신이 왕위를 계승하려는 음로를 늘 꾸미고 있었다. 한 침대에서 부부가 서로를 죽이려는 끔찍한 동상이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메리가 먼저 음모를 꾸몄다. 사랑하던 리치오를 죽인 복수를 하려고 다짐하던 여왕은 단리에게 화해를 모색하자는 취지하에 골프를 치자고 제의했다.

마크 앤 센서의 저서 <골프의 역사>에 따르면 1567년 2월9일 오전 두 사람은 오랜만에 글래스고의 골프장으로 나가 부부 라운드를 즐겼다. 메리는 남편과 스크래치로 쳐도 뒤지지 않을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180센티 미터의 큰 키는 남자들 못지 않게 장타를 치는 데 도움이 됐다. 그 날의 라운드도 메리가 충분히 앞설 수 있었지만 일부러 남편의 체면을 세워주느라 접대 골프 차원에서 플레이를 자제했다.

라운드를 마친 뒤 메리는 남편과 에딘버러 성으로 가지말고 별궁에서 하룻밤을 지내자고 제안했다. 단리도 화해를 모색하던 차라 흔쾌히 응했다. 왕실 전용 별장의 ‘커크 오필드’궁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오랜만에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다. 잠옷 바람으로 침실에서 여왕을 기다리고 단리는 내심 아내와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었다.

글라스에 레드와인을 따르면서 기다리던 단리는 샤워장에서 메리가 너무 오래 있다고 생각했다. 침실이 날아갈 만큼의 거대한 폭발음이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동시에 단리의 손에 들고 있던 와인병이 허공으로 솟았다. 사방으로 튀어 오르던 유리 파편은 그의 얼굴을 향해 다시 쏟아져 내렸다.

아스라한 의식 속에서 단리는 빨간 와인이 공중에서 흐트러지는 모습을 잠시 보았다. 자신의 몸도 침대 위의 허공에 떠있다고 생각했다. 그 느낌도 잠시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고 느꼈다. 몸뚱아리에서 찢겨져 나간 살점들이 허공으로 흐트러지고 있음을 인식할 수 있었다.

자신이 휘두른 칼에 의해 리치오의 목이 떨어질 때 아내의 일그러진 모습이 허공 속에 큰 영상으로 떠올랐다. 아내의 짓임을 되뇌이는 동안 심장마저 터지고 있음을 그는 느낄 수 있었다. 여왕인 아내를 이용해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려는 야심까지 품었던 그는 그렇게 처참하게 죽었다. 골프역사 문헌에 따르면 별궁에 폭발물을 설치한 범인은 메리의 새로운 정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필자 이인세 씨는 미주 중앙일보 출신의 골프 역사학자로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우승을 현장 취재하는 등 오랜 세월 미국 골프 대회를 경험했으며 수많은 골프 기사를 썼고, 미국 앤틱골프협회 회원으로 남양주에 골프박물관을 세우기도 했다. 저서로는 <그린에서 세계를 품다>, <골프 600년의 비밀>이 있다.
sport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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