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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고민하는 힘] ③이제는 쓰지 않는 단어들
[헤럴드경제 스타&컬처팀=최국태 기자] 어린 시절, 내가 가장 가기 싫은 장소는 단연코 이발소였다. 지나치게 성인남성 취향이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그 시절 이발소는 우리 사회에 만연했던 마초 문화의 결정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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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손잡이 위에 나무판자를 걸친 후에야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의자, 역한 냄새를 풍기는 남성 화장품, 이발사 아저씨의 무표정과 불친절함, 포마드 바른 머리, 때가 찌든 가운, 가죽에 면도칼 가는 소리, 잘 들지 않는 바리캉, 깨진 거울, 이 모든 게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무겁고 칙칙한 분위기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 '1년에 한번만 겪으면 된다!' 용기를 내며 이발 시간을 참아내곤 했는데, 마지막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세척과 건조는 이런 나를 그로기 상태로 몰고 갔다. 우리 큰누나와 동갑이라는 소문은 들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융통성도 자비도 없어 보이는 동네 형이 빨래비누와 투박한 손으로 사정없이 머리를 긁어대고, 빳빳하게 핀 수건으로 머리를 쳐대니 아프기도 하거니와 무서워서 말은 못 했지만 자존심도 심하게 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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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립기만 한 시골 이발소. 까까머리 어린 내 모습도 그립고, 내 손을 잡고 이발소로 이끌던 아버지 손도 그립다. 꼭 그렇게 되라고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보디가드처럼 나를 데리고 간 날에는 자기 몸보다 큰 배터리를 가진 라디오에서 유정천리가 흘러나왔던 것 같다.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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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그 이발소 이름은 ‘우정(友情)’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에는 우정, 행복, 명랑, 만남, 부부 같은 단어들이 상점 이름으로 흔하게 쓰였다. 행복이불, 명랑문구사, 만남다방, 부부상회 등등. 당시는 지금처럼 세련된 단어를 떠올리는 게 쉽지 않기도 했겠지만, 가난했던 시절, 우정 행복 명랑 같은 감정이나 타인과 만남을 귀하게 여기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담겨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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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단순히 추억이나 펼쳐보려는 마음 때문이 아니다. 일상에서 ‘우정’이나 ‘행복’, ‘명랑’ 같은 단어를 쓰지 않다 보니 실제 우리 삶도 그렇게 메말라 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친구를 귀하게 여기는 마음, 만남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 힘들어도 삶을 명랑하게 살려는 자세 같은 것들은 그 시절이 훨씬 충만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세대가 더 지나면 ‘우정’ 같은 단어들은 사전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고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눈부신 봄. 그리고 따뜻한 날씨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오후, 어린 시절 우정이 어쩌고 하는 3류 수필이나 시가 적힌 문방구 노트가 모자이크처럼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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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cultur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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