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테러 자처’ IS 호라산…왜 러시아 심장부 노렸나 [세모금]

2024-03-25 14:08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에서 발생한 무차별 총격·방화 테러 장면. 현장에서는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사건 직후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이 조직의 아프가니스탄 지부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 조직원이 이번 테러를 벌였다고 주장했다. IS는 이날 테러 공격 당시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엑스(X) 화면 갈무리]

[헤럴드경제=정목희 기자]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발생한 총격·방화 테러로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배후 단체로 극단주의 이슬람 수니파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호라산(ISIS-K)’이 자처하고 나섰다. 이번 사건은 호라산을 포함한 이슬람국가 세력이 최근 서방과의 대립으로 취약해진 러시아와 이란 등으로 테러 공격 방향을 틀고 있다는 신호라는 관측이 나온다.

페르시아어로 ‘태양의 땅’을 뜻하는 호라산(Khorasan)은 이란의 동쪽 지역, 즉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8세기 이슬람 제국을 창건한 압바스 왕조의 혁명으로 이슬람 제국에서 비아랍인에 대한 아랍인의 지배를 종식시키며 이슬람 황금기를 연 역사적 사례를 상기시키기 위한 작명이다.

ISIS-K는 2015년 파키스탄 탈레반에 불만을 품은 조직원들이 이슬람국가 건설을 위해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인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사상을 받아들여 설립됐다. ISIS-K는 IS 지부 중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테러를 벌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2021년 8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할 때 수도 카불에 있는 공항에서 폭탄 테러를 감행하며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이슬람 수니파를 제외한 모든 종교를 제거 대상으로 보는 ISIS-K는 이슬람 시아파 ‘맹주’인 이란 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비상사태부 구조대원들이 수도 모스크바 크라스노고르스크 마을에서 총격 테러 이후 방화로 전소돼 무너진 크로커스 시청 건물에서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AP]

이들이 러시아 공연장에서 테러를 일으킨 배경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정권에 대한 오랜 원한이 있다. IS-K는 이번 모스크바 테러 직후 성명을 통해 “대규모 기독교인 군중을 공격했다”고 표현했다. 푸틴은 구소련 붕괴 후 체첸·다게스탄·인구셰티야 등에서 빈발한 이슬람권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 움직임을 군사적으로 억눌러왔다. 2010년대에는 시리아 내전 개입과 함께 중동에 대한 영역 확장을 노렸고 IS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퍼부었다. 그 과정에서 반(反)러 성향 무장 단체들이 발호하며 러시아에 대한 테러 공격을 자행해왔다.

일부 전문가들은 IS-K가 러시아를 주요 표적으로 삼아 왔다고 전했다. 시아파인 시리아와 이란을 지원해온 러시아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의 테러가 빈번히 발생해왔기 때문이다. 다니엘 바이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 연구원이자 조지타운 대학 교수는 “러시아는 때때로 미국보다 (호라산에) 더 큰 적이 될 때도 있다”고 말했다.

미 당국자들은 IS-K가 최근 외연을 확장하며 러시아에 “3월 초 계획된 공격을 감행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에이드리언 왓슨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미국 정부는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콘서트장을 포함해 대형 모임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리스트 공격 계획에 관한 정보를 입수했다”며 “러시아 당국에도 이 정보를 공유했다”고 했지만, 안토노프 주미 러시아 대사는 대테러 전쟁에 있어 미국과 러시아의 접촉은 붕괴됐으며 이는 러시아의 잘못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대테러 연구기관인 수판센터 콜린 클라크 연구원은 “IS-K는 러시아가 무슬림을 지속적으로 탄압해왔다고 생각한다”면서 “IS-K에는 크렘린궁에 불만을 품은 중앙아시아 무장단체도 다수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모스크바 크로커스 시청에 난입하고 건물에 불을 지른 테러 용의자가 모스크바 바스마니 지방법원으로 끌려가고 있다. [AFP]

테러 용의자 네 명이 탄 차량에서는 권총과 탄창, 타지키스탄 여권 등이 발견됐다. 용의자 중 한 명인 샴숫딘 파리둔(26)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된 신문 영상에서 “지난 4일 튀르키예에서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에 입국했고, 텔레그램을 통해 ‘공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살해하라’는 임무와 함께 무기를 전달 받았다”라며 “테러 대가로 50만루블(약 730만원)을 받기로 했다”고 진술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전쟁 이후 전시 경제로 전환됨에 따라 이슬람교도 중심의 중앙아시아, 특히 타지키스탄과 우즈베키스탄 이주 노동자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졌다. 중앙아시아 이민자들은 무비자로 러시아에 입국할 수 있으며 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수백만 명의 러시아 주요 도시에 정착했다. 중앙아시아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수십만 명은 러시아의 방위산업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모스크바에 본부를 둔 안보 및 국방 싱크탱크 전략 및 기술 분석 센터의 루슬란 푸호프 대표는 “이번 테러는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 당국이 시행해온 이민 장려 정책의 위험성을 보여준다”며 “거대한 무슬림 거주지와 디아스포라(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는 민족 집단 또는 거주지)가 형성됐고, 급진 이슬람주의자들의 폭발은 단지 시간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한때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주요 관심사였던 이민 문제에 대한 불만이 러시아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이들은 지금 당장 이민 정책을 바꾸기에는 러시아 경제가 중앙아시아의 노동력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온라인 취업주선업체 슈퍼잡 대표 알렉세이 자하로프는 “15년 전에 우리가 그들이 이민 오는 것을 막았으면 좋았을 것”이라며 “더 이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print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