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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거란전쟁’ 전쟁신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읽을 수 있다[서병기 연예톡톡]
전쟁볼거리에 스토리까지 접목되니…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KBS 사극 ‘고려거란전쟁’이 속도감있게 전개되고 있다. 흥화진 전쟁신의 불덩어리 공격 등 스펙타클한 전쟁 볼거리에 스토리까지 접목되니 초반부터 시청자를 흡입할 수 있었다.

‘고려거란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황제 현종(김동준)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최수종)의 이야기를 담은 정통 대하 사극이다. 6회까지 진행됐는데, 1회 시청률 5.5%로 시작해 7.8%(6회)까지 올라갔다.

‘고려거란전쟁’은 우리의 역사를 담고 있지만 누구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를 지니고 있다. 초반부터 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변을 헤쳐나가는 인물들의 민족애와 인간애가 느껴져 울컥하는 느낌으로 보고 있다. 이 지점이 KBS가 대하사극의 저력을 보여주고 수신료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저력이라고 여겨진다.

특히 6회 엔딩신은 근래에 보기 힘든 명장면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거란군은 공성전(攻城戰)을 성공시키기 위해 고려 백성 포로들을 방패 삼아 흥화진 성벽을 오르고 있는 가운데, 서북면 도순검사 양규(지승현)가 그 방향을 향해 피묻은 손으로 눈물을 흘리며 "쏴라"고 말하며 활시위를 당기는 엔딩은 전쟁의 실상을 잘 보여주며 시청자에게도 그런 감정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전략과 전술,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고려 거란 전쟁’만의 독보적인 전쟁 신과 양규 장군 캐릭터에 완벽 몰입한 지승현의 혼신의 힘을 다한 절규 엔딩은 진한 여운을 선사했다.

흥화진 전투는 양규가 울음소리를 내는 신호용 화살인 효시(嚆矢)를 쏘아올릴 때부터 인상적이었다. 전쟁신은 스펙타클하게 찍기 위해 각종 장비를 동원하고 제작비를 쏟아붇지만 정작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구분이 잘 안될 때가 많다.

하지만 ‘고려거란전쟁’은 전쟁신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고 그 속에서 스토리를 읽어낼 수 있다. 기존 사극에선 볼 수 없었던 정교하면서도 디테일한 김한솔 PD의 연출력까지 더해지면서 전쟁신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읽어낼 수도 있어 좋았다.

거란군은 투석기를 이용해 불덩어리를 날리는데, 사정거리를 계산했다. 이에 대항하는 고려군은 '맹화유'(맹렬히 타오르는 기름)가 든 항아리를 날려 거란군의 투석기를 파괴시켰다. 또한 고려군은 '함마갱'(인마살상용 함정)을 미리 파놓고 거란 병사들을 빠트리게 했다. 어두운 밤에 활을 쏠 때는 빛을 향해 하나의 점을 노리고 쏘는 '일점사' 전략을 썼다.

거란과 고려군의 성격도 잘 파악하게 해주었다. 40만 대군을 보유한 거란군은 유목민 답게 텐트를 치는 곳이 정치행정중심지다. '날밤'에 익숙하며, 타초곡(打草谷) 기병이 주축이다. 전쟁에서 필요한 물품을 충당하기 위해 약탈을 하는데, 이는 전쟁의 주요 목적이기도 했다. 가장 탐내는 약탈물이자 전리품은 '사람'이었다.

거란제국의 6대 황제 야율융서(김혁)와 전쟁에서 잔뼈가 굵어진 노련한 장수인 소배압(김준배), 흥화진 전투의 대장인 선봉도통 야율분노(이상홍)의 개성적인 캐릭터 성격도 제법 잘 드러나 있다.

반면 고려군은 농사를 짓다 징집된 백성을 포함해 30만이다. 강조(이원종)가 "두번 겪으면 두배로 두려운 게 전쟁일세"라고 말한 것도 공감이 간다.

‘고려거란전쟁’은 앞으로 거란의 2차 침략부터 마지막 6차 침략까지, 거란과 고려가 맞붙은 10년간의 치열한 전쟁을 그려낼 예정이어서 기대되는 부분이 많다. 특히 귀주대첩은 고려가 송나라를 무릎 굻린 거란을 상대로 이긴 명승부로 전해진다.

‘고려거란전쟁’은 초반 스피디한 전개로 흥미를 유발했다. 서북면 도순검사로 있던 강조(이원종)는 목종(백성현)을 시해하고 목종의 모친인 천추태후(이민영)를 유배보냈다. 이어 천추태후의 내연남인 정2품 우복야 김치양(공정환)까지 제거했다.

천추태후는 자신과 김치양 사이에서 낳은 '현'을 왕으로 세우려고 했었고, 동시에 자신의 조카인 대량원군(김동준)에 대한 암살도 시도했다.

강조는 암살 위협에 내몰려 절에 피신해 있던 대량원군을 제 8대 고려 황제 현종으로 내세우며 1등공신이 됐지만 과욕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자임을 피할 수는 없었다. 강조는 거란에게 침략 명분을 제공했다. 거란에 알리지 않고 거란이 책봉한 왕을 죽였다면 거란이 공격해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불안해 하며 황제에 오른 '정치 초짜' 현종과, 우왕좌왕하며 갈피를 못잡는 현종에게 조언하는 강감찬(최수종)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최수종은 사극의 대가 답게 안정적인 사극 발성을 보여주었다. 강감찬은 지방관리인 충주판관에서 예부시랑으로 중앙정계 무대에 등장하며 조금씩 분량을 늘려나가면서 극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최수종의 활약은 더욱 기대가 된다.

뿐만 아니라 지승현, 이원종, 박유승, 김정학 등 고려 장수와 신하들, 거란 측 인물들의 연기도 안정돼 있다.

고난과 시련이라는 '도전'에 직면한 현종이 강감찬을 활용해 어떤 '응전'을 펼쳐나가는지를 보는 게 관전 포인트라 할 수 있지만, 11세기 동아시아의 거란족을 비롯해 북방민족들과의 관계속에서 고려 국가의 정체성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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