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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경제질서의 파편화 [마누엘 무니즈 - HIC]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세계 경제는 파편화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10년 전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상대로 부과했던 무역 제한 조치는 연간 200~300건 정도였다. 그중 대부분은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건재했던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해결 제도로 귀착됐다. 그러나 2022년 말 기준 이런 제재 조치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2000여건을 훨씬 넘어섰다. 제한 조치의 대상은 주로 상품무역이었지만 서비스와 초국가적 투자로 그 범위가 확장돼 가는 추세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올해 초 파편화는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무역 긴장으로 장기적인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7%(7조4000억달러) 이상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전체 경제 규모의 4배가 넘는다. 파편화가 진행되면 높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전 세계 공급망이 긴장되며 때로는 실제 병목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니 앞으로는 식량, 에너지, 의약품 등의 물가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 어쩌면 공급망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자동차, 휴대전화, 컴퓨터의 배송시간이 길어지는 현실에 적응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모든 일에 연관된 비용을 생각하면 애초에 이런 일이 왜 벌어지는지 의아스러울 수밖에 없다. 답은 ‘지정학’에 있다. 최근 24개월간 지정학적 환경은 눈에 띄게 악화됐다. 이 변화의 주된 장본인은 적극적인 경제 충돌 단계로 치달은 미국·중국 관계다.

2022년 10월 7일에 미국은 중국에 전례 없는 무역 제재 조치들을 가했다. 명목상 목적은 중국의 첨단 컴퓨팅 칩 확보, 슈퍼컴퓨터 개발·유지, 첨단 반도체 제조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표는 중국이 이러한 기술을 통해 군사적 역량을 강화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1년 후 미국 상무부는 엔비디아, 인텔, AMD 등 생산업체가 여전히 중국에 수출하고 있던 제품들까지 포함해 이 조치를 갱신, 확장했다. 그리고 올해 8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3대 핵심 부문, 즉 반도체·초소형 전자공학(microelectronics), 양자 정보기술 및 특정 인공지능(AI) 시스템에서 미국의 대중(對中) 투자에 대한 제한 조치를 가하며 이 체계를 더 견고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가장 중요한 기술·산업 부문에 영향을 주는 공고한 제한 조치들이 확립된 것이다.

균열의 두 번째 요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많은 정부와 기업에 큰 타격을 줬고, 수십년간 이어져 온 러시아 등 다른 나라에 대한 관여 전략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 2월, 전쟁 발발 후 수천개의 기업이 러시아에서 사업을 중단하거나 완전히 철수해야 했다. 이 중에는 BP처럼 오랫동안 러시아에서 활동해온 에너지기업, 바이엘(Bayer) 등 제약사, 인디텍스(Inditex·자라의 모회사)와 같은 유통기업도 있었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그 외 여러 나라의 대러 경제 제재가 철수의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소비자, 직원, 일반 대중의 압박 때문에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세계 많은 기업, 특히 유럽 기업들은 더욱 뚜렷하게 그 여파에 휘청이고 있으며, 미래에 비슷한 충격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지역에 대한 노출을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균열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주요 원인은 ‘전 세계적인 정치적 불안정의 심화’다. 서방 세계에서 양극화가 확산되면서 정치 및 규제 위험도 커지고 있다.

기업이 변화하는 국제 규제 환경과 더불어 까다로운 국내 환경에도 대처해야 하는 상황이 점점 흔해지고 있다. 나라마다 매우 적극적인 규제 방향, 어떤 경우에는 개방경제나 공정한 경쟁의 장(場)이라는 규칙도 완전히 무시한 방향을 시사하는 어젠다를 내건 정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이 중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또다시 미국에서 발생한다. 미국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다. 만약 정권이 교체된다면 미국 정치와 정책은 일대 변화를 겪을 것이다. 예컨대 트럼프 대선 캠프는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매기는 방안을 정책으로 내걸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동맹과 파트너들에 대한 경제적 전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것이 정말 현실이 될지, 아닐지는 선거 결과와 수많은 다른 요인에 달렸겠지만 어쨌든 위험은 존재하는 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위험 헤지의 완전 초기 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위험 자체는 현실화될 필요도 없다. 위험의 잠재력만으로도 기업으로서는 수천가지 사소한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하다.

무엇에 투자할 것인지, 어디에 연구·개발(R&D) 시설을 지을 것인지, 어디에 인력을 배치할 것인지 등 이제는 이 같은 결정 대부분을 위험 헤지의 관점에서 내릴 것이며, 이는 불가피하게 국제적인 경제 통합을 둔화(완전히 역전시키지는 않더라도)시킬 것이다.

최종 결과는 아직 불확실하다. 예컨대 무역수지 합계는 높게 유지되더라도 패턴이 두드러지게 변화하면서 무역의 지역 편중이 심화될 수도 있다. 가장 현실성 있어 보이는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무역과 투자가 정치적 온건파 쪽으로 재편될 것이다. 미국 재무장관은 이를 ‘프렌드 쇼어링(friend-shoring)’이라고 칭했다.

어쨌든 세상이 국제 경제 거버넌스의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냉전이 종식된 후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이 발생할 무렵까지 세계 경제가 맹렬한 속도로 통합되던 단계는 지나갔다. 이 시기에는 정부와 기업이 공급망의 효율성과 효능이라는 ‘경제’논리를 중심으로 의사결정을 내렸다. 초(超)세계화는 전 세계의 성장,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 하락과 공급 개선이라는 엄청난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저물었다. 이제 지정학적·정치적 위험이 구심점이자 기업 의사결정의 중대 요인이 되는 단계가 시작되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이는 기술과 안보의 교차점에 서 있는 기업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 환경을 잘 헤쳐나가는 것이 어렵지만 21세기 경제와 기업 성공의 핵심 요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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