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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홍칼럼] 전직 대통령들의 앙코르 커리어

“그 대통령은 지금 잘 있는가? 당신네 나라에서는 대통령을 지내고 나면 감옥에 가고 그러던데....”

2006년 5월 초 이집트를 방문한 한국의 국제의회연맹(IPU) 대표단 일행에게 그 나라 국회의장이 물었던 말이다. 그는 1997년 서울 IPU총회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었고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고 했다.

한국 의원대표단 일원으로 동석한 내가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군요” 했더니 그후 안부가 궁금하다는 듯 이렇게 물었다. 나는 뭔가 껄끄러운 가시 같은 게 있다고 느껴져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과거 군사쿠데타로 집권했거나 독재권력을 휘두른 대통령의 경우 임기 후에 대법원 판결이나 시민혁명에 의해 징벌받은 일이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들은 그런 일이 없다.”

이집트가 과거 자국의 문명사 등을 내세워 콧대 높은 나라라는 것을 아는 나는 무언가 한 마디 덧붙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런 민주화 이후 선출된 지도자 중 한 분이다.”

그러자 자기들끼리 얼굴을 마주보더니 “아하, 한국에도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있군요. 우리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지요.”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연합]

김대중(DJ)과 사다트는 여러 배경 차이가 있지만 평화를 위해 헌신한 지도자로 공통점이 있다. 사다트는 1977년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 초청으로 예루살렘을 방문해 양국 정상회담을 했으며 의회에서 연설도 했다. 1978년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 중재로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성공시켜 이스라엘이 점령했던 시나이반도를 이집트에 반환했다. 그러나 사다트는 아랍 진영 내부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혔다. 오늘날 아랍 극단주의집단인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또다시 중동평화가 풍전등화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살신성인하는 지도자가 나서지 않는 한 안타까운 전쟁의 재앙이 불 보듯 뻔하다.

DJ는 퇴임 3년 후인 2006년 평양에서 열리는 6·15 남북공동선언 6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정부도 그의 자연스러운 방북 기회에 특별 메시지 전달을 기대했다. 전직 대통령의 의미 있는 역할로 ‘앙코르 커리어(Encore Career)’의 롤모델이라 할 만했다. DJ는 중요한 사안을 앞두고 으레 그랬듯이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했다. 당시 국회의원 신분인 나는 그해 5월 18일 동교동 사저에서 그를 면담하고 예정된 방북활동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그의 ‘앙코르 방북’은 여러 정치적 사정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체제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기회가 사라진 것이다.

주요 인물의 앙코르 커리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예가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카터는 재임 중엔 1979년 6월 방한해 박정희 대통령과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한국민의 기억에 새겨진 인물이다. 이 시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미국 CIA 한국지부장 로버트 브류스터와 종종 골프회동을 했다. 여기서 그는 10·26 거사 후 미국이 내보일 태도를 시사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카터가 1981년 퇴임 직후부터 전개한 ‘사랑의 집짓기(Habitat for humanity)’는 한국에도 ‘지미 카터 프로젝트’ 지부가 생길 만큼 세계적으로 집 없는 빈곤층과 자연재해 이재민에게 희망을 줬다. 그 외에도 재단을 설립해 다양한 자선활동을 벌였다. 재임 중 이스라엘-이집트 간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중재했던 평화의 전도사 역할은 퇴임 후 1994년 6월 24일 북한을 방문해 김일성과 만나 북핵 문제 해결과 북미 관계 개선을 논의하는 앙코르 커리어로 이어졌다. 그 14일 후 김일성이 사망하는 바람에 남북정상회담을 조기에 성사시키지는 못했다. 이 같은 일련의 분쟁국가 간 평화중재 역할과 사회적 약자 돕기 활동을 평가받아 카터는 미국의 전직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카터의 재임 때 여론조사 지지율은 미국 대통령 중 중하위권에 불과했다. 퇴임 후 활동이 더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최고의 전직 대통령’이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미국 대통령의 퇴임 시 지지율 기록을 보면 높은 순서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71%, 빌 클린턴 65%, 로널드 레이건 64%, 버락 오바마 59%였다. 이 중 퇴임 후 앙코르 커리어활동을 한 경우는 클린턴과 오바마다. 루스벨트는 재임 중 사망했고 레이건은 퇴임한 지 얼마 안 돼 알츠하이머병과 치매진단을 받아 앙코르 커리어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앙코르는 노래를 잘 부른 가수에게 주어지는 명예다. 재임 때 반민주적 과오를 범한 공직자는 퇴임 후 손가락질 받는 ‘역(逆)앙코르’를 면하기 어렵다. 심한 경우 민중적 징벌에 내던져지기도 한다. 리비아 대통령 무하마르 카다피나 루마니아 대통령 차우셰스쿠가 그런 비운의 사례다. 대통령 퇴임 후 역앙코르가 더 많다는 점에서 한국의 정치선진화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미결과제라 하겠다.

김재홍 서울미디어대학원대 석좌교수 (전 서울디지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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