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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경제위기’ 독일, 법인세 파격감면 카드 주목해야

독일 정부가 연간 70억유로, 4년간 320억유로(약 45조9000억원) 규모의 법인세 감면 패키지법안(성장기회법)을 내놨다. 올해 독일이 주요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이라고 전망되는 등 위기감이 커지자 내놓은 카드다. 성장기회법은 독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미텔슈탄트(중소기업)’를 대상으로 한다. 직원 수가 500명에 못 미치고 매출 5000만유로(약 718억원) 이하인 미텔슈탄트는 독일 기업의 99% 이상을 차지한다.

독일은 법인세 실효세율이 28.8%로, 지난해 유럽연합(EU) 평균인 18.8%를 훨씬 웃돈다. 독일 연립정부는 좌파 성향 사회민주당(SPD)이 이끌고 있는데 통상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를 강조해 세금을 깎아주기로 합의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경기침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IMF에 따르면 독일의 올해 연간 성장률 전망치는 -0.3%로,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 최대 경제대국이 한순간에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판이다. 최근 7년간 최대 무역국이 중국인데 중국 경제의 리오프닝이 부진해지자 직격탄을 맞았다. 탈원전 에너지정책도 패착이었다. 독일은 천연가스의 55.2%, 석탄의 56.6%를 러시아에서 수입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이 끊기자 전기요금이 10배 폭등하는 등 에너지위기를 겪었다. 자동차 강국으로 내연기관차 시대를 호령했지만 새 흐름이 된 전기차 시대엔 열등생에 가까운 모습이다.

한국 경제와 닮은꼴인 독일의 파격 감세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제조업 강국으로 중국 의존도, 탈원전 후유증, 수출 부진 등은 우리도 판박이처럼 안고 있는 고민이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도 26.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3.1%보다 높다. 그런데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양국의 대응은 판이하다. 독일 연합정부가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 감세를 통한 경기부양에 나선 것과는 달리 한국의 의회권력을 장악한 거대 야당은 보편복지용 세수 확충을 강조하며 한사코 감세를 막고 있다. 독일의 이번 카드가 기업의 투자 확대와 소비심리 회복 등 경제난 돌파의 마중물이 된다면 우리 야당도 다른 시각을 갖게 될지 모르겠다. 독일의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각국이 법인세 경쟁을 펴는 것은 해외 기업을 불러들여 시장 활력을 높이는 첩경이기 때문이다. 일찌감치 법인세 혁명을 단행한 아일랜드는 2003년에 1인당 GDP가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영국을 추월했고, 지난해에는 2배가 넘는 수준으로 경제가 비약했다. 감세 성공의 교과서적 같은 얘기라고 치부해선 안 된다. 우리도 멀지만 가볼 만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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