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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나는 귀농귀촌강사다
수도권의 한 귀농귀촌교육장에서 강의하고 있는 필자[필자 제공]

“지금까지 귀농귀촌교육은 일부러 찾아다니면서 받았는데요. 이런 얘기는 처음 들어봅니다. 정말 공감하기에 눈물이 다 나오려고 하네요.”

지난달 수도권 귀농귀촌 강의 때 한 교육생이 질문 대신 던진 ‘돌발 발언’이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꽤 오래전에 귀농했다. 그런데 왜 교육을 받냐고 물었더니 “귀농귀촌강사가 되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실 그날 강의는 전혀 특별한 게 없었다. 귀농귀촌의 이해, 시골 입지 선택 및 땅·집 마련, 시골생활과 갈등관리 등 귀농귀촌 강의에서 흔히 다루는 주제였다. 그런데 처음 들어본 얘기라니....

필자는 2012년부터 줄곧 귀농귀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몇 년간은 민간 전문가로 정부의 귀농귀촌정책 수립과 관련 심사·평가에도 약간 관여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의 귀농귀촌종합센터 교육과정에 강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엔 일부러 멀리했다. 관(官) 주도 정책과 교육의 한계를 봤기에....

그런데 최근 농정원 귀농귀촌종합센터의 ‘귀농귀촌강사 역량강화교육’에 어쩔 수 없이 참여했다. ‘교육을 받지 않으면 민간위탁 교육과정에 강사로 참여할 수 없다’는 압박 때문에. 한편으론 공통 필수 과정의 ‘표준교안’이라고 하니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감으로 종일 5개 과정을 들었 는데 ‘역시나’ 실망으로 끝났다. 표준교안이라고 했건만 귀농귀촌의 ‘현실’과 ‘현장’은 없고 단지 교육을 위한 교육, 강의를 위한 강의만 있었다. 총평을 하자면 기본 내용을 담은 한 과정만 빼곤 나머지는 함량 미달이었다.

실례로 대동여지도를 따서 ‘귀농귀촌여지도(농지 및 농가 선택과 구입)’라고 이름 붙인 교육과정을 보자.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물음에 대한 답, 즉 귀농귀촌지역 및 마을 선택에 대한 내용이 전무했다. 농지법 등 법과 제도만 담았는데 이마저도 지난해부터 대폭 강화된 농지 취득 및 이용 규제에 관한 설명은 없다. 귀농귀촌이란 결국 입지다. 전국을 놓고 ‘도→시군→읍면→마을→개별 터’로 이어지는 일련의 선택 과정에 대한 안내는 필수다. 이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이후 경제활동, 지역 정착 등 모든 게 틀어진다.

‘귀농귀촌 갈등해결 농하우(농+HOW)’ 과정도 갈등해결이론과 마을 사례 위주로 구성돼 ‘현실’, ‘현장’과의 괴리가 컸다. 사실 가장 빈번한 갈등은 개인 간 또는 몇몇의 첨예한 이해관계 대립에서 빚어진다. 특히 이웃 갈등, 경계 갈등이 가장 심하다. 토호세력의 지역텃세와 귀농귀촌 선배의 텃세도 빼놓을 수 없다. 직접 살아보면 갈등해결법은 없다. 사안별 갈등해결 접근법이 있을 뿐이다.

귀농귀촌교육의 체계화와 표준화 그리고 강사의 역량 강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에 걸맞은 올바른 방향과 양질의 내용을 담보하지 못하면 다양성은 실종되고 되레 부실화·획일화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귀농귀촌강사 역량 강화를 내세운 표준교안이 그랬다. 지난달 필자의 강의 때 한 교육생(예비강사)이 “처음 들어본 내용”이라고 해 의아하게 여겼던 궁금증이 비로소 풀렸다. ‘부실한 표준’이 널리 퍼진 탓이다. 주먹구구식 강사 등급도 문제다. 박사·교수는 귀농귀촌을 몰라도 바로 1등급 대접을 받지만 학사는 10년 이상 강의한 ‘찐고수’라도 2등급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일각에선 ‘귀농귀촌교육 카르텔’이란 비판마저 나온다.

귀농귀촌이 사회적 트렌드가 된 지 십수년이 흐르면서 언제부턴가 귀농귀촌교육은 유망한(?) 사업 아이템이자 시장으로 변질됐다. 귀농귀촌강사 또한 인생 1막의 전문성과 경력을 적당히 접목하면 폼 나고 돈도 버는 매력적인 직업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이렇다 보니 민간 교육업체와 강사가 차고 넘친다.

필자 경험으로 보자면, 대부분의 귀농귀촌교육업체나 강사는 많은 돈을 벌지 못한다. 나름 소명의식과 자부심이 없다면 버티기 힘들다. 지난해 필자가 전국을 돌며 강의로 얻은 수입과 소득(국세청 소득금액증명)은 각 3400만원, 1360만원이었다. 실질소득을 높이려면 허리띠를 더 졸라매 수입에서 비용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왕복 700~900km거리를 당일치기로 뛰거나 휴게소 라면과 3만원 이하 숙박으로 때운다. 이를 즐기지 못하면 고난이 된다. 필자는 강의 때마다 해당 지역을 답사해 그 생생한 ‘현실’과 ‘현장’을 이후 강의에 꼭 반영한다. 이게 진짜 역량 강화 아닌가.

교육은 국가의 백년대계다. 귀농귀촌교육 또한 농업농촌의 대계여야 한다. 그러나 현재 귀농귀촌교육과 운영 체계는 여전히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진정성 없는 길을 정답인 양 제시하고 있다. 빨리 재정립해야 한다.

귀농귀촌강사의 역할도 마찬가지다. 직접 농업농촌에 뿌리를 내리고 인생 2막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도시민에게 필요한 이정표를 제시하는 길라잡이여야 한다. 함량 미달의 표준교안을 베끼는 ‘나도 강사’가 아니라 자신 있게 나만의 올바른 이정표를 전달하는 ‘나는 강사’말이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hwshi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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