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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광장] 아동학대의 단상

1970년대나 198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와 같은 세대는 이른바 ‘사랑의 매’라는 포장된 이름으로 가정에서는 부모님으로부터, 학교에서는 선생님으로부터 회초리 등으로 체벌당하기 일쑤였다. 그것은 정당한 훈육의 한 과정으로 이해하면서, 어느 누구의 연극 대사처럼 “미워서 때리건 사랑해서 때리건 맞는 입장에서는 똑같이 아플 뿐”인데도 심지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격세지감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인데 말이다.

‘어린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이 1920년 소파 방정환 선생이 어린 아동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지은 것이라고 하니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 것 같다. 그전에는 “애놈, 아들놈, 딸년”으로 불렸다고 하니 어디 존중의 대상이나 독립된 인격체로 보기나 했을까 싶다. 필경 단순히 어른에게 종속되는 존재나 부모의 소유물로 여겨졌을 뿐이었을 것이다.

어린이가 보호되어야 함은 마땅하다. 어린이는 어떤 이념이나 제도를 가진 사회에서도 최우선으로 보호되어야 하는 사회적 약자임이 분명하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날 어린이를 보호하는 장치로서 아동보호법 등 여러 관련 법들을 두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요즘 신문 기사를 보면 아동학대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아동학대란 아동의 건강 또는 복지를 해치거나 정상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신체적, 정서적, 성적 학대를 말하는데, 요즘 특히 문제되는 것은 정서적 학대이다. 신체적 학대나 성적 학대는 보통 육체적 폭력이나 강제력이 수반되므로 상대적으로 구별하기가 쉽지만, 정서적 학대는 아동복지법에 “아동의 정신 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듯이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동에게 외모를 비하하거나 폭언하는 것은 당연히 정서적 학대이다. 그리고 아동이 있는 자리에서 행해진 폭력적인 부부싸움도 정서적 학대이다. 심지어 보호자의 종교 강요 행위도 아동학대의 한 유형으로 포함시키려는 시도까지 있었다. 물론 종교단체의 반발로 이 시도는 무산되기는 하였지만, 당시 이를 추진했던 시민단체는 “특정 종교를 강요하여 공포심을 조장하는 건 명백한 정서적 학대”라면서 “아이가 폭넓게 세상을 경험할 기회가 차단된다”고 하였다. 최근 들어서는 자녀의 자아와 가치관이 정립되기도 전에 부모의 종교를 자녀에게 주입하는 모태신앙도 아동학대로 취급하는 성향까지도 있다고 한다.

최근 민주당이 국회에서 개최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를 위한 아동 청소년 양육자 간담회’에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참석해 “윤석열 대통령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찬성했다”고 성토하고, 또 ‘아동 활동가’를 대표해 발언에 나선 8세 어린이는 “내가 제일 싫은 건 우리나라 대통령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찬성했다는 것”이라며 “저나 제 친구가 대통령이라면 핵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걸 절대 막았을 것”이라고 비판하고 나서, “우리나라도 위험한 핵발전을 당장 멈추자”며 “경주 월성에 사는 다섯 살 동생도 피폭됐다. 너무 속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물론 어리다고 활동가가 되지 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웨덴의 여성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15세였던 2018년부터 기후 변화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환경운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부터 지구 환경 파괴에 침묵하고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는 주류 정치인들과 어른들에게 반항하는 의미에서 등교를 거부했고, 이를 트위터에 올린 것이 서구권의 진보 성향 청소년층에 큰 영향을 줬고, 나아가 세계에도 파장을 던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개최한 이번 간담회에 참석한 8세 어린이나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는 과연 자발적 의사로 공식행사와 매스컴에 나왔을까. 그리고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외교 문제로 누구도 쉽게 풀 수 없는 ‘일본 핵 오염수 문제’를 얼마 정도 이해하고 나왔을까. 간담회 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보이는 앳된 어린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이날 참석한 어린이 중에는 참석자 소개 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부끄러운 듯 어머니에게 안겨 얼굴을 숨기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민주당은 이들을 ‘활동가’라고 불렀고, 유튜브로 중계도 하였다고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최소한 어린이들은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으로 나뉘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현 정치판에 어린이들은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어린이도 당연히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그 대열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이 양극단으로 나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권 현장에 나오는 순간 그들은 정치적 선전도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민주당이 그랬으니 다른 정당들도 나서 너도나도 어린이들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발표를 하게 한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는가.

어린이는 어린이로서 존중받아야 하고, 대우받아야 한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어린이가 정상적으로 자아와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어른들의 생각에 어린이를 종속하게 하는 것은 전 근대적일 뿐만 아니라 어린이에 대한 인권침해이자 일종의 ‘아동학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영문 법무법인 우람 대표변호사

yj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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