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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금리에도 증시 흔드는 개인들…비이성적 과열인가 [홍길용의 화식열전]
금리 올라 주식·채권 기대수익률 역전
인터넷버블 때도 긴축 불구 증시 상승
2차전지·반도체·AI 등 미래유망하지만
낙관과잉·탐욕→비정상적 가치 정당화
당분간 고비용 경제→자산가격에 부담
적절한 차익실현과 합리적목표 설정을

“낮은 인플레이션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듭니다. 위험 보상이 줄면 주식을 비롯한 수익자산의 가격이 높아집니다. 주가수익비율(PER)과 인플레이션은 역의 상관 관계를 보여왔습니다.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로 자산가격이 지나치게 올라 일본처럼 예기치 않은 장기불황에 빠지지 않을 지 걱정됩니다”

1996년 12월 5일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의 연설 ‘민주사회에서 중앙은행의 도전’ 중 한 대목이다. 쉽게 풀면 물가가 낮은 상태가 오래되면 낙관적인 전망이 커져 미래가치를 반영하는 주식 등 자산가격이 상승하고, 이 과정에서 ‘비이성적 과열’로 자산가격이 비합리적인 수준까지 높아지면 이후 거품 붕괴로 경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거품’ 경계한 그린스펀, 저물가에도 긴축 강행했지만

1993년 하반기 이후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평균 3% 아래에서 머물고 있었다. 연 3% 안팎의 경제성장률을 감안하면 인플레가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하지만 1994년 그린스펀은 3%였던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한다. 그린스펀은 낮은 물가가 오래 지속되면 비이성적 과열에 의해 자산시장에 거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비이성적 과열을 언급한 1996년 12월 연설 당시 기준금리는 5.25%였다. 그린스펀은 왜 저물가 상황에서 긴축을 강행했을까?

금리가 오르면 자산가격은 떨어지는게 보통이다. 그린스펀의 긴축에도 미국 증시의1995~1999년 연평균 상승률은 다우존스 24.7%, 나스닥 41.9%에 달한다. 1994년 말 대비1996년 말 주가는 다우존스가 나스닥이 68%, 72% 급등한 상태다. 인터넷버블의 태동이다.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을 경고할 때 5.25%였던 기준금리는 2001년 3월까지 평균 5.5% 수준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린스펀의 경고와 긴축에도 비이성적 과열은 쉽게 식지 않았다.

▶2023년 고금리에도 증시 급등…주식보다 나은 채권

S&P500지수의 향후 12개월 주당순이익(EPS) 전망치 기준 선행 PER는 약 19배다. 장기평균은 5년이 18배, 10년이 17배 수준이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 아마존, 엔비디아. 테슬라, 메타 등 초대형 빅테크 7종목은 30배에 달한다. 엄연히 고금리 시대인데 과거 저금리 시대 때보다 증시 가격수준(valuation)이 더 높다.

올해 초만 해도 지난 해 긴축 충격으로 PER 값은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상반기 주가 급등으로 다시 높아졌다. 주식의 기대수익률은 보통 PER 값의 역수로 계산한다. 19분의 1이면 5.26%다. 1년 만기 미국 국채 이자율(yield)가 5.38%다. 물가상승률 보다 높다. 위험자산인 주식의 기대수익률이 안전자산인 채권만 못한 셈이다. 현재 기술적으로 S&P500의 현재 상태는 매도(sell)를 할 때다.

실제 투자 고수들은 수익률은 높고 유동화는 쉬운 단기 채권에 집중하고 있다. ‘투자의 달인’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의 버크셔헤서웨이(Berkshire Hathaway)가 올 상반기말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1470억 달러다.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버핏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긴축 등으로 증시가 급락하기 직전인 2021년 말에도 현금성자산을 역대 최대인 1490억 달러까지 높였다. 버크셔헤서웨이가 보유한 현금성자산 가운데 1200억 달러 이상이 미국 단기 국채다. 최근에도 100억 달러 어치를 추가로 매입했다.

▶“탐욕도 시장을 움직인다”…‘위기 감별사’ 로버트 쉴러

나스닥지수가 사상 최초로 5000을 넘었던 2000년 3월15일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제목의 책이 발간된다. 저자는 그린스펀이 아닌 경제학자 로버트 쉴러(Robert J. Shiller)였다. 2013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쉴러는 이 책에서 비이성적 투자자들에 의해 어떻게 거품이 만들어지는지를 설명했다.

“비이성적 과열은 투기적 거품의 심리적 기반입니다. 투기적 거품은 값이 올랐다는 뉴스가 투자자들의 열정을 자극하면서 사람들 사이에 빠르게 번지는 상황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투기적 거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가격 상승을 정당화시키는 스토리가 실제보다 더 과장돼 많은 투자자들이 빨려 들어가게 됩니다. 투자자들은 투자대상의 진정한 가치에 의심을 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시기와, 혹시 돈을 벌 수도 있다는 흥분에 사로잡혀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2000년 3월 5132까지 올랐던 나스닥지수는 그 달부터 하락을 시작해 2002년 10월 1108까지 추락한다. 5000선 회복까지는 이후 꼭 15년이 걸렸다. 쉴러가 정확히 인터넷 거품 붕괴를 예견했던 셈이다. 이후 쉴러는 2005년 미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거품이 발생하고 있다는 경고를 내놓는다. 그는 미국 20개 주요도시의 주택가격 추이를 나타내는 S&P케이스실러지수를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쉴러의 집값 경고 이후 3년도 안돼 서브프라임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가 발발한다.

쉴러가 만든 또 하나의 중요한 지표가 경기조절 주가수익비율(CAPE, Cyclically Adjusted Price-to-Earnings)이다. 장기간 주식의 평균적인 수익과 현재 시장가격을 비교해 고평가 또는 저평가 여부를 판단하는 데 사용된다. 일종의 증시 온도계다.

쉴러의 이 같은 접근은 1980년대 초반까지 지배적이었던 유진 파머(Eugene Fama)의 ‘효율적 시장 가설(EMH, Efficient Market Hypothesis)과 결이 다르다. EMH에서 투자자들이 합리적으로 가격을 결정한다고 본다. 실러는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견해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고 반박한다.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비이성적 과열 때문이다. 요즘 재조명되는 FOMO(Fear Of Missing Out)도 에이 속한다. 공교롭게도 댄 하먼(Dan Herman)이란 학자가 처음으로 이 용어를 규명하고 학술논문을 발표한 시점도 각각 1996년과 2000년이다. 그런스펀이 비이성적 과열을 언급하고 쉴러가 관련 저서를 발표한 때다.

‘irrational exuberance’를 보통 ‘비이성적 과열’로 번역하지만 점잖은 표현이다. 어감을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irrational’은 ‘합리적인(rational)’에 부정 접두어 ‘ir-’이 붙었다. 어근은 ‘ration’(배급)이다. 배급을 잘 하려면 합리적이어야한다. ‘irrational’과 비슷한 우리말은 ‘무모(無謀)한’이다. ‘exuberance’는 ‘super’, ‘high-level(ranking)’의 뜻을 가진 ‘uber’가 ‘보통 이상’으로 의미를 키우는 접두어 ‘ex-’와 결합했다.

▶힘 세진 개인…돈으로 주가는 올릴 수 있지만

증시에서 2차 전지 관련주에 이어 상온/상압 초전도체 테마주가 들썩이고 있다. 코로나19를 지나며 가계의100조원 초과 저축을 주도한 자산가들과 가상자산 시장에서 고개를 돌린 적극적 투자자들이 증시를 주도하는 모습이다. 개인 투자가 몰린 종목의 주가가 급등하면서 또다른 투자금이 유입되는 형태다. 올해 코스닥 개인 순매수는 8조원에 육박하고, 코스피에서도 6월 하순 이후 6조원 이상 순매수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JP모간 분석을 보면 주가가 상승하면 큰 돈을 버는 콜 옵션(call option)으로 개인투자자들이 사들인 주식 가액만 올해에만 400억 달러를 넘었다고 한다.

요즘 개인들은 기관들이나 전문가의 분석을 잘 믿지 않는다. 가격은 시장 주체들이 만드는 결과물인 만큼 그 한 축인 개인의 생각과 판단도 중요하다. 다만 기존의 이론적 잣대로만 본다면 기업 이익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현재의 주가 수준은 최근 만들어진 고금리 상황 보다는 과거 저금리 때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Fitch)가 미국 정부 신용등급을 강등한 이후 미국 장기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피치의 조치 때문일까? 같은 날 미국 재무부는 장기국채 발행을 늘릴 계획을 밝혔다. 공급이 늘면 가격이 하락한다. 1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가 급등한 진짜 이유다. 특히 일본은행이 수익률곡선조정(YCC) 상단을 높이면서 미국 국채의 주요한 투자자였던 일본 자금의 이탈 가능성도 커졌다. 물가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지만 전세계적인 폭염으로 식량과 에너지 값이 다시 오를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유럽도 중국도 불황의 그늘이 짙다. 통화정책을 펼치는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추가 긴축도 조기 완화도 어렵다. 현재의 금리 수준이 꽤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높아진 금리에 따른 차입비용 부담은 계속 높아질 것이고 시간이 갈수록 기업들의 실적을 짓누를 것이다.

인공지능(AI)과 전기차 등 미래 기술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실적이 받쳐주지 못하면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버블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내리지 않다면 적어도 분석적으로 접근하는 기관들이라면 그 동안 많이 오른 종목이나 지수는 매수 보다는 매도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개인들의 판단이 중요하다. 더 오를 것이란 확신으로 기관들의 매물을 받아낼 수도 있고 이 참에 함께 차익실현에 나선다면 꽤 가파른 가격 조정이 나타날 수도 있다. 만약 기관 매물까지 받아낼 작정이라면 얼마나 더 오를 수 있을 지에 대한 분명한 근거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다면 그나마 빨리 차익을 챙기는 게 낫다. 더 벌지 못하더라도 덜 잃는 게 현명한 투자다. 비이성적 과열을 경계할 지, 합리적 무관심(rational inattention)을 견지할 지 신중히 선택할 때다.

ky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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