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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포럼>다산(茶山)이 그리워진다-박종구 한국폴리텍대학 이사장
몇 해 전부터 통섭(統攝)이 화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통섭형 인물을 꼽으라면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다. 조선후기 실학사상은 공리공담에 치우친 성리학을 지양하고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했다. 실학파의 관심 분야는 현실개혁을 위한 사회ㆍ경제적 문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 등 매우 광범위했다. 다산은 철학ㆍ지리ㆍ역사ㆍ법률ㆍ정치ㆍ문학ㆍ군사 등 다방면에 걸쳐 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책을 저술했다. 목민심서를 비롯한 그의 저서는 오늘날까지도 위정자들의 교본이 되고 있다. 다산의 다양한 학문적 궤적은 오늘날 고도산업사회가 지향하는 융합형 인재가 나아갈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백성의 수고를 덜어주고 공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고안한 거중기는 실학파의 위민사상을 잘 반영하는 융합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다.

후기산업사회와 디지털사회에서는 자연과 인간, 이질적인 문화와 사회, 국가와 국가 또는 개인과 개인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관계의 벽들이 빠르게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기존 산업사회의 분업적인 분야들, 인간 생활의 개별 기능들 사이에 존재해 왔던 경계의 벽이 무너지면서 지각 및 인식의 문명구조가 바뀌어 가고 있다. 특히 우리 주변의 실생활에서는 그 변화가 더욱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스티브 잡스와 애플이 주도한 스마트폰은 이제 언제 어디서든 접속과 소통을 가능하게 하며 유비쿼터스 시대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다.

A와 B의 기능을 융합하여 더욱 편리한 기능을 가진 새로운 기기를 갖고자 하는 욕구는 컨버젼스(convergence)의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이러한 융합에 대한 욕구는 사회적 인식의 결과 도출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이 근본적으로 타고난 유전자의 작동으로 오늘날 첨단기술, 새로운 직업, 기술과 문화, 비즈니스 등 여러 분야에서 융합을 이끌고 있다.

이런 까닭에 과거에는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사람이 각광을 받았지만, 이제는 한 분야에만 정통한 I자형 인간보다 전문성은 기본이고 폭넓은 지식과 이를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한 T자형 인간이 각광을 받는 시대가 됐다.

우리나라의 대학교육도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교육의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순수 학문 분야의 전통은 유지하되 고도 산업사회의 변화를 예측하고 더 앞서가는 교육현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최근 각 대학에서 융합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되는 것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폴리텍대학은 오래전부터 이종의 기술영역에 대한 융합을 시도해왔다. IMF 사태 이후 늘어난 고학력 청년실업자와 비진학청소년 등 다양한 계층의 학생을 대상으로 효율적 교육을 제공하고 우수한 인재로 양성하여 산업현장에 유입시키고자 융합형(Crossover)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관광 통상영어과를 졸업한 학생이 수중용접과에 입학하여 국제 산업잠수 자격증을 취득하고 싱가포르에 있는 기업에 연봉 1억5000만원에 취업한 사례 또한 언어와 기술이 융합된 기술 인력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산업사회는 끊임없이 변화 한다. 우리 교육도 이러한 변화를 뒤쫓아 갈 것이 아니라 사회를 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0%를 넘는 청년실업 문제도 결국 통섭형 인재, 기술과 인문교양이 아우러지는 인재에서 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새삼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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