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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칼럼-홍길용 증권팀장] 증권사들의 불법(?) 증자
‘2조9999억9999만9999원이면 안 되고, 3조원이면 되고.’
대한민국에서 투자은행(IB)을 하려는 증권사가 갖춰야 할 자본 조건이다. 법적 기준으로는 이게 거의 전부다. 어떤 업무능력과 노하우를 갖췄냐를 따지는 구체적 기준은 없다. 그냥 3조원만 맞추면 일단 자격이 생긴다. 하긴 국내에서 모든 금융기관의 자격조건은 ‘자본’이니 새로울 것도 없다. 그런데 3조원이란 기준이 어디서 나왔을까. 2조원이나 2조5000억원이면 투자은행을 못할까?
3조원이란 기준이 처음 나온 것은 지난 7월 자본시장법 개정안 때다. 당시 상위 5개 증권사의 자기자본 평균이 2조7000억원이다 보니 금융당국에서 그냥 대강 정한 듯하다. 요즘 증시가 불안하고, 특히 증권주는 리먼브러더스 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바닥에서 기고 있는데, 어디에 쓸지도 모르는 돈을 또 쏟아붓는 결정을 참 무덤덤하게 내렸다. 증자로 늘어난 자기자본을 어디에 쓸지는 주주도, 회사도, 금감원도 잘 모른다. 이번에 증자를 단행한 3개 증권사 가운데 2개 증권사는 내년 초 대표이사 임기가 만료된다. 이들이 스스로 연임을 점쳐 과감하게 증자를 결정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투자자 이익은 안중에 없다. 업계는 금융위원회가 무서울 뿐이고, 금융위는 ‘○○○ 위원장 재임기간에 ××××를 이뤄냈다’는 업적이 중요할 뿐이다. 이러다 보니 IB, 헤지펀드는 청계천을 닮았다. 하긴 금융위가 보기엔 4대강 정비사업만큼이나 중요할 수 있겠다.
여기까지는 그저 비판이라 치자. 그런데 이번 증자의 절차를 보면 비판이 아니라, 비난을 해야 마땅하다.
지난 7월 금융위는 IB에 해당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의 자기자본 기준을 3조원 이상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금액 이상으로 정했다. 얼마 전 국무회의를 통과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만으로도 프라임브로커 업무가 시작되는 점을 감안해 일단 3조원으로 정했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그런데 이 법안은 아직 국회 상정 전이다. 다시 말해 3조원이란 기준은 아직 법적 효력이 없다. 증권사들이 법적 효력도 없는 기준을 먼저 맞추고 있는 꼴이다. 만에 하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법 개정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주가 하락과 주주이익 침해를 무릅쓰고 증자를 단행한 책임은 누가 질까. 물론 금융위는 이번 증자와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그 어떤 압력도 행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위원장께서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
얼마 전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투자전문가를 만났다. 그에게 헤지펀드 할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헤지펀드 성공을 위해서는 실력 있는 개별 매니저들의 벤처정신을 살려줘야 하는데, 어찌 된 노릇인지 국내에서는 대기업들에만 헤지펀드를 허용하려 하고 있다. 할 생각 없다”며 잘라말했다.
대형 증권사 CEO에게도 물었다. 프라임브로커 할 생각 있냐고. 답은 “돈 안 된다”였다. 밀어붙이면 된다고 믿는 금융당국, 안 된다면서도 끌려가는 업계, 그리고 진작부터 외면하는 시장. 동상이몽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긴 헤지펀드 하겠다며 공매도 금지하는 게 우리나라 정부와 자본시장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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