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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원칼럼> 이름 바꾸기
도로명 주소 공식 시행

사라지는 옛지명 아쉬워

역사적 사건도 쉽게 개명

무형적 손실 가볍지 않아





‘도로명 주소’가 공식적으로 시행되면서, 오래된 지명들이 사라지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들이 들린다. 사연들이 담긴 이름이 사라지는 것은 우리 가슴에 아쉬움의 물살을 일으킨다. 이번 조치처럼 합당한 경우에도 그렇다.

우리 사회에선 이름들이 너무 가볍게 바뀐다. 고려 이전의 이름들은, 지명이든 기관 이름이든, 남은 것이 거의 없다. 중세 이름들이 많이 보존되고 고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름들이 드물지 않은 서양과는 대조적이다.

이름은 사물을 가리키는 기능을 지녔으므로 자주 바뀌면 제 몫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서양의 오래된 이름들을 대하면 부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실은 이름에 담긴 내력과 사연들을 아끼는 전통이 부럽다.

6ㆍ25 전쟁의 역사를 읽으면, 미군 제1기병사단(cavalry division)을 자주 만난다. 중요한 싸움들에서 공을 세워 우리를 구해준 고마운 부대다. 원래 기병부대로 출발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보병부대가 되었고 지금은 기갑화 보병부대다. 그래도 여전히 기병사단이란 이름을 지닌다. 그 이름엔 수많은 싸움들에서 분전한 부대의 내력이 담겼고 부대원들은 그런 부대의 일원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임진강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싸운 영국군 부대들은 정말로 오래된 이름을 지녔다. ‘Royal Northumberland Fusiliers’는 당시 우익을 맡았었는데, fusilier는 부싯돌로 점화하는 구식 소총(fusil)으로 무장한 보병을 뜻한다.

이 낡은 이름을 현대에도 그대로 지닌 ‘Northumberland Fusiliers’는 1674년에 창설돼 그 뒤로 영국이 참전했던 거의 모든 전쟁들에서 공을 세웠다. 1968년 영국군이 개편될 때도 Royal Regiment of Fusiliers라는 이름을 골라서 fusiliers라는 이름을 이어받았다. 좌익을 맡아서 분전했던 ‘Gloucestershire’ 대대와 예비였던 ‘Royal Ulster Rifles’ 대대도 여러 백 년 이어진 이름을 지닌 부대들이다. ‘8th King’s Royal Irish Hussars’는 기갑부대인데, 경기병을 뜻하는 hussar를 그대로 썼다. 이렇게 고색창연한 이름과 거기 담긴 전통을 이어받은 군대는 당연히 긍지가 크고 용감하게 싸울 터이다.

아쉽게도 우리에겐 이런 전통이 없다. 대한민국이 세워진 뒤로는 더 거칠어져서, 정권이 바뀌면 으레 정부 조직부터 바꾸려고 시도한다. 심지어 사회의 기본 규범인 헌법이 여러 번 바뀌었고 정부 조직들과 이름들은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바뀌었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가 치르는 무형적 손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특히 문제는 역사적 사건들의 이름을 가볍게 바꾸는 풍조다. 6ㆍ25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나 ‘통일전쟁’이라고 부르는 경우처럼 아주 해로운 경우들도 있다.

이름엔 나름의 힘이, 거의 목숨이라 부를 만한 무엇이 있다. 그래서 그것이 가리킨 실체가 사라진 뒤에도 이름만 남아서 실체의 존재를 증언하는 경우들이 많다. 이제 우리는 정성 들여 실체에 어울리는 이름을 짓고 그 이름을 오래 지키는 전통을 세워야 한다. 제도와 조직을 함부로 바꾸는 풍조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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