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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사람>“장애인 문화소외 물려줄순 없죠”
국내 1호 청각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박순미씨
같은 처지 장애인들위해 관광안내

공부한 만큼 도움줄수 있어 행복



오랜 장마가 끝나고 무더운 여름 날씨가 시작된 지난 18일 오후. 경복궁에서 만난 박순미(48) 씨는 유독 긴장한 얼굴이었다. 순미 씨의 오른손에는 경복궁에 대한 역사가 적힌 책자가 들려 있었다. 무더위로 인해 순미 씨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경복궁 이곳저곳을 눈으로 살펴보며 손과 입을 멈추지 않았다.

이날은 순미 씨가 지난 6개월간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교육을 마치고 직접 시연을 하는 첫 날이었다. 순미 씨는 지난 3월부터 종로구가 시행한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양성교육 과정에 참여해왔다.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는 시청각장애인이 같은 처지에 있는 장애인을 위해 문화관광 안내를 해주는 일이다. 종로구는 지난 3월 국내 최초로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 양성교육과정을 도입, 지난 5월 23일까지 매주 2회 총 56시간 이론과 실기 수업을 시행해왔다. 순미 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 6명과 청각장애인 11명은 오는 30일 예정된 수료식을 마치면 국내 1호 장애인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게 된다.

순미 씨는 이날 모니터링 요원으로 참여한 서울농학교 고3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광해설에 나섰다. 늦깎이 공부를 시작해 지난 2월 서울농학교를 졸업한 순미 씨는 후배들 앞에 관광해설사로 나선 기분이 남달랐다. 


경회루 앞에서 순미 씨는 수화를 통해 경회루의 건축구조를 설명했다. 사각기둥과 원형기둥을 함께 배치한 것인 하늘과 땅 천원지방(天圓地方)사상을 기초로 한 것이라는 설명을 할 때는 그의 손짓은 정확하면서도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설명을 보는 농학교 학생들의 눈빛도 반짝였다. 일반인들이 보기엔 아무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수화를 통해 조선시대 어느 순간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순미 씨는 관광해설사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전까지 취업을 원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수화교육을 하며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았는데 일자리가 많지 않았다. 농인들에겐 취업 기회가 매우 적다”며 “청각장애인들은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일이 많다. 듣고 말할 수 없다 보니 사회에서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청각장애인들이 개인의 능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도배 일을 하는 남편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딸, 복지관에서 일을 하는 아들까지 순미 씨 가족은 모두 청각장애인이다. 수입은 항상 넉넉지 않다. 그런 순미 씨에게 가장 큰 바람은 문화관광해설사로 일자리를 얻어 고정 수익을 얻는 것. 하지만 아직까진 취업연계 프로그램은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문화관광해설사 프로그램은 순미 씨에게 희망을 가져다줬다. “공부를 해보니 배울 것이 정말 많더라. 공부하는 재미와 함께 내가 공부한 만큼 다른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앞으로 전국을 다니면서 관광해설사로 일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sjp10@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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