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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속기소돼도 학내 조사 기다려라? 10년전 규정에 매달리는 학내 성폭력 처리
지난 5월 24일 고려대 의대에 재학 중인 A양은 동기 남학생 세 명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학교 양성평등센터 등에 신고했다. 하지만 학교 측은 가해학생들이 평상시처럼 학교에 다니도록 방관했고 결국 A양은 기말고사 시험에서 가해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시험을 치러야했다.

그로부터 50여일이 지나 고대 의대 성추행 학생들을 모두 구속기소 됐다. 그러나 이들이 사법처리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측에서는 7월 말로 예정된 양성평등센터의 조사를 기다려야 한다며 이들에 대한 학내 징계조치를 미루고 있다. 조사 대상인 학생들이 구치소에 수감되 조사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시간끌기에 나서고 있다는 비판이다. 결국 고려대 졸업생들 170여명이 연명, 학교에 플래카드를 걸어가며 이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나섰다.

A양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매년 학내 성폭력 사건이 되풀이 되고 있지만 대학교들은 여전히 10년째 낡은 규정에 매달려 있어 피해자들이 더 큰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2일 한국성폭력상담소에 따르면 지난해 성폭력 상담신청건수 1313건 가운데 가해자와 피해자가 학교에서 알게된 사이인 경우는 143건(10.9%)인 것으로 조사됐다. 드러난 학교 성폭력만 해도 5일에 2건 가량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렇듯 학내 성폭력은 계속되고 있지만 학교들의 관련 규정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헤럴드경제 취재팀이 서울 주요 6개 대학의 학내 성폭력 규정을 살펴본 바에 따르면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수위를 구체적으로 명문화 한 곳은 없었다. 6개 대학 모두 가해자의 공개사과, 재교육프로그램 이수 명령, 사회봉사 등의 부수적인 조치만 있을뿐, 가해학생에 대한 정학이나 퇴학, 출교등의 처분은 징계위원회의 결정을 기다리게 돼 있었다. 이 경우 징계위원회가 소집, 결정할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며 그 동안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할 규정이 없어 2차, 3차 피해가 우려된다.

실제로 고려대 의대 사건의 경우에도 사건이 발생한지 한 달이 흘렀지만 학생들의 처분은 아직까지 내려지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양성평등센터의 조사보고서가 나온 후에야 그를 바탕으로 가해학생들의 징계수준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보였다. 고려대가 밝힌 징계위원회의 결정기한은 ‘사건 발생후 60일 이내’로 돼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두나 기획조직국장은 “학교 측으로서는 일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문제를 축소시키려는 경향이 있다”며 “학교에서 자체 조사를 진행하다가도 피해자가 형사고발을 하면 조사를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학교는 2차 피해 발생 가능성이 다른 어떤 장소보다 높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교수는 학생을 지도하면서 성적을 메기는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있다는 문제점도 있다. 모 대학 교수는 학생을 성추행하고도 “OO양,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자네가 그러면 안 되네”라는 식의 메일을 보내 이를 무마하려고 한 사례도 있었다. 이러다보니 성폭행, 성추행을 당한 학생이 신고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김두나 기획조직국장은 “사건이 처리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자의 고통은 가중 된다”며 “신중한 결정도 좋지만 그에 못지않게 신속하고 명확한 처벌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동취재팀 @madpen100> madp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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