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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남주 기자의 유통이야기>주류업체들이 표정관리하는 까닭은?
요즘 소비재 업체들은 너나 없이 죽을 맛입니다. 원자재 급등으로 상품가격을 올린 뒤 소비자로 부터 고물가의 주범으로 손가락질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정부는 소비재 업체들이 가격을 터무니없이 편법인상했다며 실태 조사를 벌이는 등 아예 싸잡아 공공의 적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일부 식품업체는 편법가격 인상 문제로 정부의 고강도 조사까지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아니 막말로 사회봉사하려고 기업 운영합니까. 밀, 원당, 유가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고 공공요금에 인건비까지 치솟으면서 어쩔 수 없이 상품 가격을 올렸는데 고물가의 주범이니 공공의 적이니 하며 손가락질을 하니 정말 죽을 맛이지요.

여기에 힘센 대형 유통업체들은 수시로 높은 입점 수수료에 판촉물 행사까지 요구하고 있습니다. 상품 가격 올렸다고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는 바람에 매출도 형편 없어졌습니다. 다들 2001년은 그 어느 해보다 힘들다고 하소연입니다. 아마 저 같아도 맥이 풀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죽을 맛이라고 푸념을 늘어놓는 요즘 숨어서 살짝 표정관리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주류업체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데다 최근 일부 주류업체의 숨통을 옥죄던 거액의 소송에서 줄줄이 판정승했기 때문입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250억원의 과징금을 놓고 법정타툼을 벌여온 공정위와 소주업체간 소주가격 담합에 대해 서울고법은 2일 소주업체의 손을 손을 들어줬습니다. 소주업체들이 모임을 가졌지만 느슨한 형태의 담합으로 보이고, 국세청의 행정지도 또한 법적근거가 미약해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부당하다고 재판부가 판단을 내린 것입니다.

아직 상고심이 남았지만 이번 판결로 진로, 롯데주류, 무학, 금복주, 대선, 보해 등 11개 소주업체들은 일단 가격담합의 올가미에서 벗어났습니다. 25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 걱정도 털어냈습니다. 소주만 그런 게 아니라 위스키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국내 최대 위스키 업체인 디아지오코리아 역시 몇일전인 지난 30일 관세청을 상대로 벌인 1994억원 규모의 세금분쟁에서 조세심판원으로 부터 재조사 결정을 받아냈습니다.

관세청의 과세가격 평가 적정성에 이의를 제기한 디아지오코리아의 심판 청구가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번 결정으로 디아지오측은 과세액이 대폭 줄어들 공산이 커졌습니다. 사실상 우세승을 거둔 것입니다. 물론 관세청과 디아지오코리아간 2차 세금 분쟁도 디아지오측이 유리한 입지에 올라선 셈입니다.

무자료거래로 면허가 취소됐던 디아지오코리아를 대신해 윈저 위스키 등을 위탁판매하다 200억원 규모의 세분 분쟁에 휘말린 수석무역도 덩달아 홀가분해졌습니다. 주류업계가 표정관리하는 이유는 더 있습니다. 소비재 대부분이 상품가격을 올린 뒤 불황을 겪는 고물가 후폭풍이 맥주와 소주시장엔 남의 일이라는 점입니다.

맥주는 올들어 1분기중 판매량이 전년대비 9.2%나 늘었습니다. 최근 몇년동안 추락을 거듭해온 맥주 소비가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주도 모처럼 1.2% 성장했습니다. 여기에 오는 7월이면 한ㆍEU FTA 가동으로 세금도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벌써 일부 주류업체에서 두둑한 보너스 이야기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일만 자꾸 생기니 주류업체들이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고물가 후폭풍으로 소비재 업계가 불황을 겪고, 사회 분위기도 좋지 않은 상황에서 대놓고 웃음보를 터트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자칫 ‘나홀로 행복’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겁다는 ‘괘씸죄’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즘 주류업체들이 표정관리에 부쩍 신경쓰는 이유랍니다.

<최남주 기자 @choijusa> calltax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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