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조원 규모 체코 신규 원전 본계약이 체결식을 하루 앞둔 6일(현지시간) 급제동이 걸렸다. 한국수력원자력의 경쟁자이던 프랑스전력공사(EDF)의 이의제기를 법원이 받아들인 결과다. 체코 브르노 지방법원은 이날 한수원과 체코전력공사(CEZ) 자회사 EDU II 간의 두코바니 원전 2기 계약 서명을 중단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했다. 본계약 참석차 체코로 향하던 정부·국회 합동 대표단은 공항에 도착해서야 뒤늦게 이 소식을 접하고 당혹감에 빠졌다. EDF에 허를 찔린 것이다. 원전 수출 계약 자체가 완전히 무산된 것은 아니지만, 사법 리스크에 따라 본계약 일정자체가 불투명해졌다.
유럽 원전의 맹주격인 EDF가 안방에서 원전 사업을 놓친데 대한 반발은 집요했다. 지난해 7월에도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체코 공정거래위격인 반독점사무소(UOHS)에 이의를 제기했다. UOHS가 이를 최종 기각하자 이번엔 UOHS를 상대로 법적 소송에 나섰고 결국 가처분 명령을 받아냈다. EDF는 한수원이 제시한 조건, 즉 원자로 가격을 100% 고정한 것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공기 지연, 자재값 상승 등 여러 요인에 따라 사업비가 늘어날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하지 않고 고정 금액을 제시해 입찰을 따냈다는 지적이다.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이같은 불공정 입찰은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것이다.
EDF의 주장은 K원전의 강점인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정해진 예산으로 예정대로 준공)’을 정면 겨냥하고 있는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다. 스웨덴, 핀란드, 네덜란드,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여러 국가가 안정적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에 관심을 보이는 상황에서 EDF의 주장을 법원이 받아들이면 체코를 교두보로 유럽시장 확장에 나선 K원전의 전략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 이후 16년 만에 이뤄진 K 원전의 유럽 첫 수출이 늦어지게 된 것은 아쉽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점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 체코 정부나 발주사는 현지 언론 등을 통해 한수원과의 계약 추진 의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EDF가 문제 삼는 입찰 불공정성 가능성 역시 체코의 공정위가 ‘문제없다’고 결론 낸 사안이다. 체코 법원도 이번 가처분 명령은 절차적 조치일 뿐 소송의 결과와는 무관하다고 했다. 다만 일정 지연은 불가피하다. EDF가 몽니를 부려 법정 공방이 장기화되면 6~8개월까지 걸릴 수 있다는게 현지 전망이다. 미국 웨스팅하우스와의 지적재산권 분쟁을 극복한 경험을 살려 이번에도 팀코리아로 난관을 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