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구 급증에도 동물권리 제자리

‘귀여움’에만 집중…개·고양이에 편향

“동물 자체로 존중해야” 동행의 의미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123RF]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123RF]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댕집사’, ‘냥집사’…. 국내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5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국민 3명 중 1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는 셈이다. 동네는 물론 쇼핑몰, 음식점, 카페 등에서도 반려동물을 마주칠 정도로 동물은 우리의 삶에 깊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동물의 권리도 그만큼 신장했을까? 인간은 동물을 제대로 알고 합당하게 대하고 있을까? 사육곰을 구조하는 ‘곰보금자리프로젝트’의 활동가이자 수의사, 성공회대학교 ‘동물권과 사회 연구’ 전공 초빙교수인 최태규는 신간 ‘도시의 동물들’에서 동물들이 처한 현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져도 아직 한국의 도시에서 동물들은 갖가지 고난에 맞닥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집에서 동물을 키우고, 길에 사는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죽임당하는 동물의 수를 줄이고자 고기를 덜 소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상황은 일견 동물도 더 살기 좋은 사회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는 진심, 선의, 사랑과 같은 말로 표현되는 이러한 움직임이 각 종의 고유한 특성이나 그 생태적 작용, 달라진 현대 도시의 환경에 대한 고려 없이, ‘인간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는가’라는 관계주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우려한다.

예컨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는 그 고양이의 허기를 잠시 달랠 수 있지만 길에서 떠도는 고양이의 개체 수를 늘려 삶의 조건을 악화시킬 뿐이다. 여기에 고양이 밥을 먹으러 온 너구리, 비둘기, 까치 등 다른 동물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귀여움’에 집중이 된다는 점은 개, 고양이 등 특정 종에 대한 편향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동물의 역할이 귀여움에 국한되면 동물이 지닌 수많은 특성과 그에 따르는 필요가 삭제되는 문제를 낳는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는 동물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돌봄’의 대상으로 여긴다. 개와는 상호 작용을 하며 특별한 관계를 맺길 원하고, 성체가 되어도 ‘개’가 아닌 ‘강아지’로 부른다. 늙어 죽을 때까지 귀여워야 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개를 주인인 나와 독립된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더 깊이 종속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어른으로서의 개를 지워버리고, 성욕을 제거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특히 초소형견을 선호하는 한국에서 개는 점점 더 작고 약해져서 슬개골 탈구는 흔한 질병이 됐다.

“일방적이고 한쪽으로 치우친 관계를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가리고 있는 현실에서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종류의 폭력이 일어나고 있다”는 저자의 말은 섬뜩하다.

이와 반대로 ‘반려동물’이 되지 못한 동물은 보호의 범위에서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 된다. 집 앞에서 굶주린 쥐를 보면 밥을 챙겨 줘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죽여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한다. 한때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비둘기는 비위생적이고 질병을 옮기는 동물로 전락했다.

반려동물이 해가 다르게 늘어가는 와중에 다른 한편에선 여전히 많은 동물이 인간에 의해 죽거나 삶의 터전을 잃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길조였다가 유해 야생동물로 전락한 까치, 갑자기 개체 수가 늘어났을 뿐 인간에게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는 러브버그, 먹이를 찾으러 왔다가 번쩍이는 네온사인에 길을 잃어 민가에 들이닥치기도 하는 멧돼지는 ‘너무 많다’는 이유로 가차 없이 죽임을 당한다.

백로는 깃털이 날리고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서식지에서 쫓겨나고, 연간 20만마리가 사냥이나 교통사고로 죽는 고라니는 멍청하게 차를 피하지 못해 죽는다며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야생동물구조센터가 도시화로 생존을 위협당한 동물들이 실려 와 고통 속에 모여 있는 재난의 공간이라고 소개한다. 동물과 고기의 연결 지점을 분리해 무감해짐으로써 고기를 보다 수월하게 소비하고, 동물을 사고팔아 생계를 유지해 온 사람들을 멸시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이러한 동물들의 삶은 급속한 산업화와 군사 독재, 반생태적 개발주의, 시장의 지배, 소비자 정체성과 개인 미디어를 갖춘 시민들의 등장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변천과도 맞물려 있다.

저자는 동물을 인간과의 관계 속에 넣는 것이 아니라 ‘동물’ 그 자체로 존중하고, 동물을 주어로 하는 공론을 제안한다. 동물을 사랑하며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들릴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어쩌면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넘쳐나는 지금이야말로 ‘동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성찰해 볼 때가 아닐까 싶다.

도시의 동물들/최태규 지음·이지양 사진/사계절


pink@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