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동시에 밀어붙이며 시장에 심각한 혼선을 야기하고 있다. 미 세관국경보호국(CBP)이 지난 11일 (현지시간) 상호관세 예외 품목으로 반도체,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모듈 등을 공지하면서 강경 기조에서 한발 물러선 게 아니냐는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13일 트럼프는 “관세 예외가 아니다. 단지 다른 관세 범주로 옮긴 것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오락가락 발표에 기업과 시장 혼란이 커지는 모양새다.

문제의 시작은 CBP가 발표한 상호관세 예외 목록이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이 다수 포함되면서 기업들은 안도했지만, 이내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는 제외되지만 품목별 관세는 부과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상호관세는 상대국과 협상 여지가 있지만, 국가 안보를 내세운 품목별 관세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세를 면제하겠다고 했다가 다른 법적 틀로 다시 부과하겠다고 나선 셈이다. 이쯤 되면 누가 정책을 발표해도 믿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이런 식의 혼란이 처음도 아니다. 한국에 상호관세 25% 등 각국에 관세율을 부과했다가 불과 발효 13시간 만에 90일 유예를 발표한 전례가 있다. 중국에 대해서는 125% 관세를 매기겠다고 선언했다가, 백악관이 나중에 “실제는 145%”라고 정정하면서 시장을 더 혼란스럽게 했다. 미국 민주당조차 “관세를 갖고 빨간불, 파란불 장난을 한다”며 비판하고 나선 이유다.

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결정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상황에선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다. 미국이 안보를 이유로 핵심 제조업을 자국 내로 끌어들이겠다는 기조는 분명하다. 이미 철강, 알루미늄, 자동차에 25% 품목별 관세를 매긴 데 이어, 이제 반도체와 전자제품도 관세부과를 예고한 상태다. 모두 한국의 주요 제조업 근간을 흔드는 일이다.

실제 미국은 한국 전자제품 수출의 최대 시장 중 하나다. 삼성전자의 실적을 견인해온 스마트폰과 LG전자의 냉장고, TV 등 가전제품은 미국 수출 비중이 높다. 품목별 관세가 현실화되면 단순한 수출 차질을 넘어 공급망 자체의 재편 압박으로 이어질 수 있다. LG전자가 최근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에 나선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반도체 역시 미국이 집중적으로 자국 생산을 압박하고 있는 분야다.

수시로 바뀌는 관세 발표에 일희일비할 게 아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즉흥적으로 보이더라도, 그 밑바탕에는 미국 핵심 제조업 복원이라는 일관된 방향성이 깔려 있다. 본질을 꿰뚫고 관세와 시장성을 염두에 두고 면밀히 계산을 해야 한다. 이런 때수록 정부와 기업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정교한 전략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