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을 맞아 필자는 가끔 농장 맨 위쪽의 작은 소나무 숲을 걷는다. 이때 누런 솔잎 무더기를 헤집고 올라온 초록 산마늘(명이)을 만난다. 겨울을 이겨낸 선명한 녹색 생명력은 언제나 경이롭다. 산마늘과 함께 일찍 봄을 알리는 눈개승마(삼나물)는 매번 불청객 고라니에게 몸을 뜯기는 수난을 당한다. 그래도 다시 새순을 내는 불굴의 생명력은 감동 그 자체다. 마음이 지칠 때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됨은 물론이다.
자연이 키운 산마늘과 눈개승마는 건강먹거리이기도 하다. 엄나무와 두릅 순, 쑥, 머위, 달래, 민들레, (왕)고들빼기, 냉이 등도 봄철 시골밥상에서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소나무 새순(솔순)과 달맞이꽃뿌리, 매실, 보리수, 포도, 개복숭아 등을 재료로 만든 담금주는 약술이나 진배없다. 말려둔 뽕나무뿌리껍질(상백피), 달맞이꽃뿌리, 멧대추씨(산조인), 엉겅퀴 등은 마시는 차로 즐긴다. 먹거리를 통한 섭생치유다.
필자는 밭농사를 지을 때 가급적 인위적 개입은 피하고 자연에 맡긴다. 고추는 두둑에 비닐을 씌우지만 옥수수는 땅에 직파한다. 화학비료와 화화농약, 제초제는 아예 사용하지 않는다. 힘닿는 한 호미로 김을 맨다. 달맞이꽃은 애초 자연 군락지여서 내버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거둔다. 손 안 대고 코 푸는 농사다. 이렇게 자생력으로 자란 작물은 산삼과 인삼의 차이만큼이나 그 약성이 뛰어나다.
봄을 맞아 아내와 큰딸은 맨발로 맨땅을 걷는 접지(어싱 earthing)에 푹 빠져있다. 밭 가운데에 밭길 겸 접지로가 길게 뻗어 있다. 15년 째 홍천산골에 살면서 필자가족이 얻는 수확은 비단 먹거리만이 아니다. 이 접지로를 통해 얻는 무형의‘건강열매’가 더해진다. 자연과 함께 하는 농사와 일상을 통해 얻는 심신의 치유효과야말로 시골(전원)생활의 참 기쁨이자 즐거움이다. 자연이 살아 있는, 오감을 만족시키는 ‘생화’치유다.
물론 도시에서도 치유는 가능하다. 대개 큰 도시에는 도시농업과 스마트팜을 접목한 멋진 치유정원과 치유농장이 조성돼 있다. 도시민들은 이곳에서 치유농업도 배우고 심신의 치유도 얻는다. 다만 도시의 치유는 한계가 있다. 거의 모든 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기에 자연 그대로의 ‘생화’치유가 들어설 여지가 별로 없다. 즉 ‘조화’치유에 가깝다.
그런데 자연에 둘러싸인 농촌까지도 이런 ‘조화’치유에서 자유롭지 않다. 돈 버는 농사는 말할 것도 없고 치유농장의 프로그램조차도 ‘생화’아닌 ‘조화’치유가 주도한다. 초과학인 자연보다 과학을 더 신뢰한다. 기후변화는 이를 더욱 가속화한다. 하지만 ‘조화’치유는 ‘생화’치유의 그림자일 뿐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최근 발표한 ‘2024년 귀농·귀촌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귀농이든 귀촌이든 시골행의 이유로‘자연환경’을 첫손 꼽았다. 또 귀농가구의 작목선택 이유가 ‘고소득’이라는 답변은 17.4%에 불과했다. 이는 결국 자연으로부터 얻는 치유를 가장 원한다는 의미다. 만약 당신이 시골(전원)생활을 꿈꾼다면 ‘조화’치유가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는 ‘생화’치유를 추구하시라. (초)자연의 순리를 따른다면 누구나 값없이 얻을 수 있다.
박인호 전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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