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관세 슈퍼위크’가 임박하면서 지난달 31일 아시아 증권시장이 블랙먼데이를 맞았다. 일본 닛케이 지수, 대만 가권지수 등 미국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들의 지수가 4% 이상 급락했다. 한국의 코스피도 공매도 전면 재개에 대한 경계심까지 겹치며 3% 급락해 2480선 밑으로 밀려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이날 하루에만 1조5000억원 넘게 팔아 치우며 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외국인들의 매도 물결 속에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거래 종가는 전 거래일보다 6.4원 오른 1472.9원을 기록했다.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3월 13일(1483.5원) 이후 약 16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은 계엄 및 탄핵 사태에 따른 불확실성과 미국발 관세의 고저에 따라 널뛰기를 해왔다. 지난해 비상 계엄 선포 직전 1400원 안팎에서 등락하다 계엄 선포와 달러 강세 여파로 가파르게 상승해 연말연초에는 1470원대까지 올랐다. 그러다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과 윤석열 대통령 구속으로 1월 말 1430원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가 지연되고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시기가 임박하자 다시 오름세를 탔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 간 금리차(1.75%포인트), 미국의 경기 둔화 우려 등이 원화 가치를 더 끌어내릴 수 있는 요인들이다. 시장에서는 올 2분기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까지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전방위적 관세 폭격이 아시아 무역대국에 주는 충격은 1998년 외환 위기나 2008년 금융 위기 때와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호주 민간 싱크탱크인 로위연구소는 글로벌 경제전문 매체인 블룸버그에 “도널드 트럼프의 상호 관세는 아시아 성장 모델에 심각한 위협을 가한다”며 “이제까지의 위기와 충격은 금융 부문에 제한된 것이었지만, 이번 충격은 훨씬 더 구조적인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환율 충격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번지며 일파만파식 위기를 불러 올 수 있다는 경고다.

글로벌 투자은행인 씨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탄핵이 기각되거나 4월 중순으로 결정이 연기될 경우 정치 불확실성 장기화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이 다소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무라증권도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이후 원화 가치가 일본 엔화보다 더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했다. 외국인 자금 유출과 투자심리 위축 등으로 향후 원화가 더욱 약세를 보일 거라고 예상한 것이다. 헌재와 정치권이 귀담아 들어야 한다. 미국의 관세 압박은 우리의 통제 밖이지만 정치적 교착상태 돌파는 우리 하기 나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