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0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추진을 공식화했다. 역대 최대 피해를 낳은 산불 대응과 함께 통상·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 등 시급한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합의가 우선이라고 밝혀오던 정부가 입장을 바꾼 것인데, 정치권도 사안의 급박함을 인식하고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특히 75명의 사상자와 6800여명의 이재민을 낳은 산불 피해 복구 지원은 한시가 급하다. 당장 거처를 잃은 이재민들을 위한 임시 주거시설 마련이 시급하고, 전기·상하수도·도로 등 기본 인프라 복구도 절실한 상황이다. 농가 피해도 상당하다. 사과·배 과수원과 인삼밭이 잿더미가 된 농민들은 생계의 기반을 잃었고 축산업 종사자들은 전소된 축사와 폐사한 가축으로 망연자실해 있다. 관광으로 먹고 사는 마을도 잿더미가 됐다. 한 두해 지원으로 회복이 어려운 것들이 적지 않다.
더욱이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에 있다. 한국은행이 전망한 올해 경제 성장률은 1.5%로, 잠재 성장률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외국 기관에선 0%대 성장 전망까지 나온 마당이다. 소비 부진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고, 제조업과 건설업은 위축돼 일자리 창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이 수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다. 경제 회복을 위한 마중물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여야 간의 예비비 증액을 놓고 기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재난 대응을 위해 예비비 2조원 증액을 주장하고 있다. 올해 예산에서 야권의 ‘예비비 삭감’을 부각하겠다는 정치적 의도일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현 예비비로도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필수 추경으로 내세운 AI경쟁력 강화와 민생 지원도 세부로 들어가면 입장차가 크다. 특히 여당은 영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취약 계층 등으로 선별해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야당은 전 국민 1인당 25만원 지역화폐 지급 등을 내세우고 있어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추경의 본질은 신속한 지원이다. 산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과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 산업계의 위기 앞에서 한가하게 말싸움할 때가 아니다. 규모도 10조원으로는 부족하다. 한은은 경기 부양으로 15조~20조원을 제시한 바 있다. 산불 피해까지 더하면 더 과감한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지역화폐 지급 등 추가 지원책도 논의할 수 있지만, 추경의 본질을 흐려선 안 된다. 추경이 늦어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국회와 정부는 이를 명심하고 지체 없이 재정 지원이 이루어지도록 협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