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엔 달랐다.”
지난달 17일 중국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민영기업 간담회가 끝난 후 현지 기업총수들의 일성이었다. 민영기업 간담회는 2018년 11월 개최 이후 6년 만에 열렸다. 현지 언론들의 반응은 뜨거웠고, 그만큼 상징적인 메시지가 이어지며 과거 회의와는 결이 달랐다는 평가다.
첫 번째로 간담회에 참석한 민영기업의 면면이 주목을 받았다. 업종으로 보면 인공지능(AI)·반도체·로봇·우주항공 등 빅테크 과학기술 분야가 주를 이뤘다.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딥시크의 창업자 량원펑에서부터, 휴머노이드로봇 군무로 유명세를 탄 유니트리 창업자 왕싱싱, 샤오미의 레이쥔, 텐센트의 마화텅 등 중국의 대표적인 빅테크기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한동안 뉴스에서 자취를 감췄다가 지난해 경영에 복귀한 알리바바 마윈의 참석도 눈길을 끌었다.
2018년 간담회에 참석했던 몇몇 부동산 기업 대표는 이번엔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부동산이 이제 더 이상 민영기업의 핵심이 아니라는 점, 이제는 ‘과학기술과 혁신이 민영기업 성장축이 되게 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향성이 명확히 드러났다.
두 번째는 회의가 개최된 시기다. 2018년 회의는 당시 트럼프 1기 정부가 시작하고 관세폭탄이 투하되는 와중에 민영기업을 달래려는 목적이 컸다. 중국 민영기업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65%에 달한다. 다시 말하면 무역전쟁의 포화를 민영기업이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이른바 ‘국진민퇴(국영기업은 발전하고 민영기업은 퇴보한다)’라는 인식이 중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다. 시 주석은 2018년 회의에서 “민영기업은 ‘우리 편(自己人)’”이라고 치켜세우면서 각 지방정부도 ‘민영기업 기 살리기’에 나선 바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경기부진과 미-중 무역마찰로 중국 민영기업들은 ‘두 팔을 잘라내는 것’과 같은 혹독한 겨울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 간담회는 트럼프 2기 정부가 시작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개최됐다. 미국의 견제 속에 하루빨리 고삐를 쥐고 민영기업의 신뢰 회복에 나선 것이다.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를 앞두고 정부 기조를 확인하고 후속 정책을 끌어내기에 시기적으로 안성맞춤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회의가 끝나자마자 마치 화답이라도 하는 듯 알리바바를 비롯한 빅테크기업들이 AI 분야에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히고 있다. 각 지방정부에서도 잇달아 민영기업 좌담회를 개최하며 지방 민영기업 기 살리기에 동참하고 있다.
민영기업은 중국 개혁·개방의 주인공이자, 중국 경제를 떠받치는 척추와도 같다. 현지에서는 민영기업을 ‘56789’로 설명한다. 세수의 50%, 국내총생산(GDP)의 60%, 기술혁신(R&D)의 80%, 기업 수의 90%를 차지하는 중국 경제의 허리이기 때문이다.
연초부터 중국 민영기업 수장을 한자리에 소집한 중국의 속내가 그려진다. 한층 높아진 미-중 무역전쟁의 파고를 넘기 위해 중국 정부는 경제의 허리이자 기술혁신의 주체인 민영기업 숨통을 틔우는 게 시급해지고 있다. 민영기업이 과연 중국 경제의 구원투수로 등판할 지, 앞으로 중국 정부가 어떠한 정책과 메시지를 내놓을 지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김윤희 코트라 칭다오무역관장헤럴드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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