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법 지난 일이다. UN산하 국제감자연구소(CIP)에서 감자역병 공동연구를 위해 한국에 온 감자 연구자와 며칠 동행한 적이 있다. 무엇보다 끼니마다 메뉴가 고민이었다. 스페인계인 그의 입맛에 한국 음식이 맞지 않을까 염려돼서다. 다행히, 해외 체류 경험이 많았던 터라 입맛이 소탈했고, 무엇이든 맛있게 즐겼다.
하루는 경포대 근처 횟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스페인과 남미 지역도 ‘세비체(Cebiche)’라는 회와 비슷한 요리를 즐긴다며 반기는 모습이었다(세비체는 생선을 약하게 초절임하여 샐러드처럼 먹는 요리로, 엄밀히는 회와 조금 다르다). 곁들임 찬으로 내어준 깻잎을 건네자 처음 먹어본다는 그는 비린 맛을 줄여주는 독특한 향이 좋다고 했다. 입맛에 맞는 모양이었다. ‘페릴라(Perilla, 들깨 학명의 속명)’ 잎이라는 걸 알려주며,우리나라에서는 장류와 함께 조림이나 절임으로 먹거나 종실유인 들기름으로 음식의 풍미를 살리는 데 활용한다는 팁도 설명했다. 이후로도 출장 동안 그는 들깨에 관한 궁금증이 생길 때마다 이것저것 물었다. 채식과 생선요리를 즐기고, 음식에 조예가 깊은 연구자라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후였다. 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트에 들러 소주 등 몇몇 한국적인 것들을 소개하려는 데 진열대에서 깻잎 통조림을 보자 반색하는 게 아닌가. 짠맛의 소스에 절인 것이라 생식으로 먹던 것과 맛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당시의 좋았던 향만 기억하며 여러 개를 바구니에 담았던 기억이 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농산업 분야 수출액은 약 130억 달러로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 가운데 농식품(작물보호제 등 포함) 비중이 약 100억 달러에 이른다. 한류 문화(K-culture)의 세계적 확산도 큰 몫을 했다. 다만, 수출 상위를 라면, 과자, 커피 등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식품들이 차지한 점과 김치, 김밥, 쌀 가공식품 같은 국산 농산물을 활용한 품목 비중이 적다는 점은 생각할 부분이 많다. 농업인의 소득과 직접 연계할 수 있는 품목의 수출을 확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선 농산물의 수출 확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최근 불고기, 삼겹살, 갈비 등 구이 문화를 선호하는 외국 관광객들이 늘고 있다. 이와 함께 고기를 신선 채소에 싸 먹는 ‘쌈 문화’에 대한 수용성도 덩달아 높아졌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채소를 데치거나 끓여 먹는 것보다 신선한 샐러드나 피클 형태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는 배추와 상추 외에도 생식이 가능한 채소나 나물류가 매우 많다. 한식은 반찬으로 무침과 절임류도 다양하다.
충남 금산은 지난해 깻잎 매출액이 사상 최고인 763억 원을 기록했다. 밀양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중단됐던 수출을 재개했다는 뉴스도 들린다. 깻잎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생산한다. 잎 전용으로 육종하여 보급되는 들깨 품종도 여럿이다. 곁들임 반찬으로 나온 깻잎을 쌈으로 맛본 서양인이 깻잎 통조림을 기념품처럼 사던 것이 신기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한식 문화를 통해 세계인에게 널리 알려지며 수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화훼 수출액은 대략 우리나라 전체 농식품 수출 총액과 맞먹는다. 화훼류는 품종뿐만 아니라 생산과 수요처도 다양하다. 신선 농산물이라 유통에도 기술 투입 요소가 많아 소량 다품목인 우리나라 특산 채소와 나물류의 수출에도 시각을 좁혀 살펴볼 만하다. 규모의 문제이겠으나 들깻잎과 미나리, 산마늘과 참나물 등 이색 쌈채소와 나물을 조합한다면 한국 특유의 K-샐러드 수출 시장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서효원 농촌진흥청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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