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럴드경제(울릉)=김성권 기자] 푸른 파도가 넘실거린다. 높새바람이 분다. 넘실거리는 파도를 들여다보면 어른거리는 모습이 있다. 우는 바람 고요히 귀를 기울이면 애끓는 흐느낌이 들려온다” (고 이경종 선생 추모비 일부 글)
지난 1976년 1월 17일 오후 4시쯤 울릉군 북면 천부항에서 만덕호 난파 때 같은 배에 탔던 두 제자를 구하려다 순직한 이 시대의 참 스승 고(故)이경종 선생의 49주기 추모제가 17일 고인의 순직비가 있는 천부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렸다.
내가 죽어서도 제자를 사랑하고 바라보겠다는 고인의 유지로 만든 추모비 상단의 동그란 두 쪽의 눈 모양은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김진규 울릉교육장,남한권 울릉군수,남진복 경북도의원, 한종인 울릉군의회 부의장 ,홍성근 군의원,학교관계자와 당시 고인의 제자 등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개식사,묵념,고인 약력소개,비문낭독,헌화,추모사,참여자 헌작 순으로 거행됐다.

방학을 맞아 교정의 무거운 침묵속에 초등학생이 읽은 순직비 비문 낭독에서는 참여자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김진규 울릉교육장은“49년 전 울릉도 섬마을 선생으로 추운 겨울 바다에서 두 제자를 구하다 순직한 고인이야 말로 이 시대의 영원한 참스승”이라고 말했다.
김 교육은 또 “해마다 울릉도로 전입 해오는 교직원들을 고 이경종 선생 추모비를 찾게해 고인이 생전에 보여준 사도(師道) 정신을 기리는 추모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밝혔다.
남한권 울릉군수는 “불씨는 작아도 빛은 솟아나듯이 49년 전 어린 제자를 구하다가 순직한 고 이경종선생님의 거룩한 희생정신이 스승의 길인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남아있다”고 했다.
만덕호 침몰 사고는 4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울릉도 일주도로는 1963년 이후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지만 잦은 태풍과 폭설로 인해 공사는 진척이 없어 1976년에 이르도록 부분적인 개통만 이뤄졌다.

특히 겨울철에 폭설이 내리면 도로가 끊겨 주민들은 뱃길을 이용해야만 했다.따라서 배는 규정에 넘는 물건과 사람을 싣는 일이 흔해 항상 사고의 위험을 안고 있었다.
1976년1월17일 오후 4시쯤 도동항에서 천부항으로 가던 만덕호의 침몰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가 발단이 됐다. 만덕호는 그해물자와 승객을 싣고 천부항 입항 20m 앞둔 지점에서 기관 고장으로 높은 파도에 침몰해 37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 참사였다.
이 배는 도동항에서 철근1.7톤t, 정부미10포대, 라면15상자, 승객20여명을 태우고 출발했으나 경찰의 검문 이후 승객 30여명을 추가로 태웠고 이로 인한 과적과 기관이 고장 났다.
기관고장으로 표류 중인 만덕호는 거센 파도를 만나 전복됐으며 바로 코앞에서 파도에 휩싸여 목숨을 잃어가는 부모·형제를 구할 길이 없었다.
뭍에서 발을 동동 굴리는 주민들의 간절함도 뒤로하고 배에 탔던 이들은 차디찬 겨울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월급을 받으러 울릉읍 도동에 갔던 당시 천부초등학교 이경종 선생은 바다에 빠진 제자2명을 구한후 결국 운명을 달리했다.
수영선수로 알려진 고 이경종 선생은 1941년 대구에서 태어나 대구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1959년 영천 지곡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순직(당시 35세)한 그날까지 15년 4개월 교사로 봉직했다.
울릉교육지원청은 이 같은 참 스승의 살신성인 정신을 본받고,스승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거룩한 뜻을 후세에 길이 남기고자 사고가 났던 날인 매년1월17일 천부초등학교 교정에서 추모식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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