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파’ 등에 업고 미국판 ‘경제 계엄’까지 등장
‘머니 머신’ 한국, 표적 될 수 있다
‘상호이익’ 기반 철저하게 美 입장에서 설명해야
관세로 올라간 상품 가격, 또다시 인플레 부르나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e)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헤럴드경제=홍태화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0일(현지시간) 미국 대통령으로 돌아온다. ‘아메리칸 퍼스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더 위대하게) 등 강력한 자국 우선주의 기반의 국정 운영이 예고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그간 미국과 맺었던 혈맹이나 동맹 같은 전통적 이념 가치에만 기댄다면 수출·금리·환율에서 ‘트리플 리스크’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이해관계를 철저하게 따지고 거래 대상으로서 한국이 미국에 줄 수 있는 이점을 판매하지 못하면 우리 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수출마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금융 측면에서의 파장도 간과할 수 없다. 당장 미국이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 내 상품가격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해 곧 금리인하가 멈출 수 있단 점을 의미한다. 동시에 달러 강세가 계속되고, 원/달러 환율이 내려가기 어렵게 된다. 이미 미국보다 낮은 기준금리 상태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통화정책을 펼칠 공간이 위축되는 것이다.
‘충성파’ 등에 업고 미국판 ‘경제 계엄’까지 등장
트럼프 당선인이 세계 경제 측면에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이유를 한 마디로 줄이면 결국 ‘관세’다. 그는 미국 동맹이든 아니든 최대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수입품엔 60%까지 매기겠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첫 행정명령도 ‘관세’로 예고됐다. 그는 지난해 11월 “나는 (내년) 1월 20일 내 첫 행정명령 중 하나로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에 서명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트럼프 당선인은 자신이 구상 중인 보편 관세에 대해 전 세계 각국에서 경고하며 반발할 기미를 보이자, ‘국가경제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CNN이 익명의 소식통 4명을 인용해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언급한 ‘국가경제 비상사태’란 1977년 제정된 국제경제비상권한법(IEEPA)을 근거로 한다. 이 법은 미국의 안보나 외교, 경제 등에 위협이 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이 비상사태를 선포해 외국과의 무역 등 경제 활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해 준다.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면 대통령은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관세나 예산 등을 재배정할 수 있다. 일종의 미국판 ‘경제 계엄령’인 셈이다.
특히 2기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보다 더 독한 미국 우선주의를 펼칠 수 있단 점에서 우려가 크다. 과격한 정책을 견제했던 ‘어른들의 축(axis of adults)’이 이번 인선에선 아예 사라졌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이 지명한 백악관과 내각, 주요 연방 기관 등의 핵심 직책 후보자는 총 91명 모두가 ‘충성파’로 구성됐다. 트럼프 당선인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강력히 추진할 인사들인 셈이다.
‘머니 머신’ 한국, 표적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트럼프 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대한민국에 가진 기본 인식이 ‘부자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시카고에서 열린 ‘시카고 경제클럽’ 주최 대담을 보면 그의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트럼프 당선인은 당시 우리나라를 겨냥해 “‘머니 머신(부유한 나라)’”이라며 우리나라가 주한미군 주둔 비용으로 연간 100억 달러를 지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재임 시절 한국산 트럭에 대한 관세 부과한 사실도 거론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지난해 대미 수출은 1278억달러로 전년 대비 10.5%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미 수출은 2018년(727억달러)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으로 매년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하는 기록을 이어가며 순항하고 있다.
미국 수출이 호조를 나타내다 보니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도 전년(444억달러)보다 25% 불어난 557억달러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를 경신했다. 한국은 대미 무역에서 1998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흑자를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무역 적자 해소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대미 흑자’ 행진을 향한 한국에 통상 압력이 가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지만, 이 역시 트럼프 신정부가 추진하는 보편관세를 막을 방패가 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에 수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호이익’ 기반 철저하게 美 입장에서 설명해야
결국 과제는 트럼프 당선인을 얼마나 이해시키느냐에 달렸다. 우리나라 수출은 물건을 단순히 파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연계된 투자도 늘려왔다.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에 대한 투자를 강조했단 점에서 ‘상호이익’이 되는 수출의 성격이 실제로 강하게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 혜택을 받기 위해 한국 기업들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는 등 대규모 투자에 나섰는데, 이에 따른 기계·설비 반입 등이 수출로 잡혔다. 미국 제조업 재건 흐름에 반도체, 이차전지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한국 기업들이 적극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한 정부 관계자는 “한미 교역 관계가 상호호혜적으로 발전해 2023년 대한민국이 미국의 최대 투자국이 됐고, 대미 흑자 중 상당 부분이 대미 투자”라며 “결국 지금 최대 관건은 이러한 점을 부각해 우리나라가 미국의 관세 조치의 예외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의 수입을 늘리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미국에 수출을 늘린 만큼, 우리나라도 수입을 늘려 실질적인 ‘윈-윈’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자재 부분을 늘리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 있는 방안이다. 이미 1기 트럼프 당시 때도 이를 이용해 대미 무역수지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걸 방지했다.
2016년 한국의 미국산 원유·가스 수입 비중은 각각 0.2%, 0.1%에 불과했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기(2017∼2021년) 미국산 원유·가스 도입 비중을 높여 2023년 이 비중은 각각 13.5%, 11.6%까지 올라갔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미국 제조업 제품 경쟁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원자재 쪽에서 수입을 늘리는 방법이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관세로 올라간 상품 가격, 또다시 인플레 부르나
관세 여파는 금리와 환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관세 부과는 상품 가격을 인위적으로 높이는 행위다. 관세를 부과한 만큼 자동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거세지고, 금리를 내리긴 더 어려워진다. 지난해 9월 ‘빅컷’으로 시작된 미국 금리 인하 기조가 멈출 수 있다.
당장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인사들은 금리 동결을 시사하고 나섰다. 수전 콜린스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9일(현지시간) 보스턴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상당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금리 조정에 대한 느린 접근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시장은 이미 반응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정치적 불확실성, 과도한 재정적자에 대한 우려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 2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8일(현지시간) 2023년 하반기 이후 처음으로 5% 선을 넘었다. 이날 20년물 국채 금리는 이날 일시적으로 5.026%까지 튀어 올랐다가 다시 4.97% 수준으로 내려왔다.
환율도 마찬가지다. 미국 금리가 내려가지 않으면 달러 강세는 계속된다. 원/달러 환율은 글로벌 달러 강세 분위기가 강화되면서 지난 10일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는 전 거래일보다 4.5원 오른 1465원을 기록했다.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날보다 0.17% 오른 109.338을 나타냈다.
우리나라 통화당국 입장에선 정책을 펼칠 공간이 줄어든다. 이미 미국보다 기준금리가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더 내리게 되면 환율 오름세는 더 거세질 가능성이 크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려야 하는 통화당국 입장에선 딜레마적 상황에 부딪힌 셈이다.
이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 2일 “입수되는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내외 리스크(위험) 요인들의 전개 양상과 그에 따른 경제 흐름 변화를 자세히 점검하며 금리 인하 속도를 유연하게 결정해 나갈 것”이라며 “전례 없이 정치·경제적 불확실성이 커졌고 새해 물가, 성장, 환율, 가계부채 등 정책 변수 간 상충이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