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 ‘SAF 사용 의무화’에 경쟁 확대
수익성 계산따라 엇갈리는 정유 4사 전략
“英·日 수출 확대”vs“수출하면 손해”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국내 정유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친환경 대체 연료 지속가능항공유(SAF)를 개발하고 수출까지 하고 있지만, 정작 내부적으로는 수익성 우려로 인해 투자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SAF 생산할수록 정유사 손해”
11일 헤럴드경제 취재에 따르면 에쓰오일(S-OIL)은 SAF 해외 수출 비중을 키우지 않는 방향을 내부적으로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현재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등 일부 항공편에서 쓰는 SAF를 공급하고 있다.
이는 최근 경쟁적으로 SAF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국내외 정유 업체들과는 다른 전략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원료 확보나 시장 수요가 불확실해 투자 결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SAF 생산 비용은 높은데 이를 보전하려면 소비자 부담만 높여야 해 정유 업체가 손해를 보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SAF는 기존 항공유 대비 탄소 배출이 80%까지 적은 친환경 연료로,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사용 의무가 확대되고 있다. 정부가 2027년부터 국제선 모든 항공편에 SAF 1%를 혼합 사용하도록 의무화하면서, 국내 항공사들은 한발 앞서 올해부터 SAF가 들어간 비행기 운항을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유럽발 항공편에는 2%까지 SAF를 혼합해야 한다.
업계선 ‘최초’ 타이틀 경쟁 불붙어
이같은 에쓰오일 방침은 국내 다른 정유 업체들과는 사뭇 다른 방향이다. 최근 정유 업체들은 앞다퉈 SAF 수출에 나서고 있다. 특히 SAF 시장에 선도적으로 진출했다는 ‘최초’ 타이틀 경쟁이 열띠다.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해 6월 국내 최초로 일본 항공사에 SAF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이어 GS칼텍스도 일본 수출을 시작했다. SK에너지는 지난해 대량생산 체제를 갖추고 보다 큰 시장인 유럽에 최초로 SAF를 수출했다고 최근 밝혔다.
글로벌 ‘탈탄소’ 움직임에 맞춰 업계에선 SAF 시장은 계속해서 커질 전망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SAF 수요가 올해 80억리터 수준에서 2050년에는 4490억리터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시설 갖췄다 파리만 날릴까” 속내는 투자 고민
다만 국내 업체들의 속내도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현재로선 SAF의 ‘수익성’과 ‘시장성’ 모두 불투명한 상태라서다. 이 때문에 SAF를 수출하는 정유 업체들 역시 지금은 전용 설비 시설 구축을 망설이고 있다.
지금 대부분 업체들은 기존 석유 생산시설을 일부 이용하는 코프로세싱 방식으로 SAF를 생산하고 있다. 코프로세싱은 기존 설비를 활용하면 되지만, SAF만 생산하는 별도의 시설을 갖추려면 최소 조 단위 투자가 필요하다.
SK에너지는 앞서 올해까지 SAF 50만톤을 생산하는 시설을 갖추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계획이 미뤄져 현재 검토 중이다. GS칼텍스 역시 지난해부터 전용 시설 구축을 검토했지만 현재까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기후변화 정책에 소극적인 트럼프 2기 정권이 올해 들어서면서 SAF 규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모른다는 요인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설비 구축은 시장이 다 성숙했을 때에야 가능한 이야기”라며 “시설을 한번 구축해놓으면 유지 비용이 계속 투입되는데 정작 나중에 수요가 없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유·항공사, 정부에 “비용 부담 없게 해달라” 요구
SAF 생산 비용도 업체들로선 고민거리다. 우선 SAF 생산에 필요한 ‘폐식용유’는 전 세계적인 공급 부족 상태다. 폐식용유는 SAF뿐 아니라 바이오디젤, 바이오플라스틱 등 각종 친환경 활용되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패스트마켓에 따르면 친환경 연료 생산 거점인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폐식용유 가격은 작년 5월 1000달러를 돌파했다.
이 때문에 최근 정유 업체와 항공 업체들이 참석한 산업통상자원부 산업투자전략회의에선 ‘SAF 도입 때문에 항공 티켓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이 없게 해달라’는 요구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항공 업계 관계자는 “당장 유럽은 의무 비율을 높인다는 계획이기 때문에 비용 상승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SAF 혼합 사용 의무 수준은 1~2%로 미미해 가격에 영향이 없다. 그러나 이 비율이 10%대 이상으로 높아지면 항공 업체들로서도 티켓 가격 인상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SAF 국내 수출 역량을 높이기 위해선 정부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오현영 에너지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EU나 유럽의 경우 생산 업체들에게 근본적으로 도움이 되는 재정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SAF 가격이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