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의 중요 고비마다 시민의 힘이 있었다. 한밤의 갑작스런 ‘계엄 사태’가 야기한 국가적 혼란과 위기를 막아 낸 것은 이번에도 맨몸의 시민들이었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의 해제안 의결, 국무회의의 수용까지 전 과정이 평화와 질서 속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부릅뜬 눈으로 감시하고 온몸으로 엄호했다. 계엄의 합법성 여부는 차치하고 선포와 해제까지 물리적 절차가 법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질 수 있었던 것은 국회를 에워쌌던 시민들의 스크럼과, 밤새 TV와 휴대폰으로 지켜봤던 보통 사람들의 힘 덕분이었다. 세계는 한국이 ‘피플 파워’로 민주주의의 최대 시험대를 통과했다고 평가했다. 이제 대통령과 여야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정확히 헤아리고 따를 때다.

시민들은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을 다시금 전세계에 환기시킴으로서 국격의 추락을 막았다. 국내 증시와 금융 시장에 대한 대내외 평가를 최악까지 치닫지 않도록 방어해낸 것도 계엄 해제를 신속하게 이끌어낸 시민들의 힘이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4일(현지시간) “한국의 민주주의 발현과 민주적 회복성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례”라고 이번 사태를 평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날 사설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3일 윤 대통령의 진의가 불분명한 계엄 선포를 신속하게 거부하면서 수십 년 만의 최대 시험대를 통과했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과거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던 한국의 피플파워가 이번에도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었다고 했다.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은 이날 리포트에서 계엄 사태가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인식을 약화시켰을 수 있었지만, 평화롭고 신속한 해제가 “정치 시스템 내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투자자들의 신뢰 훼손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제 공은 다시 대통령과 정부, 국회로 넘어갔다. 5일 윤 대통령은 비상 계엄을 건의했던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면직을 재가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6개 야당은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하고 이날 0시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야당은 탄핵안에서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국민주권주의와 권력분립의 원칙 등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다는 사유를 제시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은 또 한번의 역사적 비극을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부결’을 당론으로 정했다.

대통령과 여야가 국민의 명령을 서로 다르게 받아들였다. 가장 관건은 향후 윤 대통령이 얼마만큼의 인식 전환을 보여줄지, 어떤 후속 수습책을 내놓을지일 것이다. 대통령과 여야는 각자의 선택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는 것인지 돌아보고 또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