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헐크로 알려진 배우 마크 러팔로가 변호사로 출연한 ‘다크 워터스’란 작품이 있다. 영화는 다국적 거대 화학기업이 프라이팬 코팅제인 피에프오에이(PFOA)라는 물질을 개발해 막대한 이익을 얻는 과정에서 이 물질의 심각한 유해성을 숨기고 은폐했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 변호사는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무려 10여년간의 법정 소송 끝에 기업의 잘못을 밝혀냈다. 이는 우리에게 화학물질 관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영화에서 문제가 된 PFOA는 열에 강하고, 물이나 기름 등이 쉽게 스며들거나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는 특성이 있는 화학물질이다. 아웃도어 제품, 일회용 종이컵, 프라이팬 등에 코팅제로 쓰였다. 그러나 이러한 편리함 뒤에는 치명적인 위험이 존재했고, 마을 주민들은 원인 모를 질병에 걸리게 됐다. 화학물질은 이처럼 우리 삶에 편리함을 주지만 동시에 위험성을 내포한다.

우리는 화학물질과 동행하며 삶을 이어간다. 하지만 화학물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진다. 잘 관리하면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화 속 사례처럼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가져올 수 있다. 계속 증가하는 새로운 화학물질과 그 다양한 활용 안에서 화학물질의 안전관리는 최우선으로 고려가 되어야 한다.

정부는 오랫동안 화학물질 정책의 중심을 ‘안전관리’에 두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화학물질 안전관리가 정부만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화학물질 사용은 이해당사자가 광범위하고, 사고 예방은 정부의 정책과 현장의 행동이 함께 이루어져만 가능하다.

그동안 산업계는 화학규제에 대한 이행 부담을 지속해서 호소하고, 시민사회는 정부와 기업에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며 우려를 표해왔다. 이러한 상반된 입장 속에서도 소통과 협력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정책이 있고, 제도가 개선되어도 결국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화학 안전 문화확산과 소통 강화를 위해 정부, 시민사회, 산업계가 한자리에 모여 화학물질 안전관리 정책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으는 장(場)이 필요했다.

환경부는 지난 2020년부터 ‘함께 만들어가는 화학 안전’이란 주제로 ‘화학 안전주간’을 열고 있다. 올해도 역시, ‘내 손으로 지키는 안전한 사회’를 부제로 정하고 지난 12월 2일부터 3일까지 ‘제5회 화학 안전주간’을 진행했다. 올해 초 화학물질 관리의 기본이 되는 법률 개정이 있었던 만큼, 이번 화학 안전주간이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주요 행사 중 하나인 ‘화학 안전정책포럼’에서는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 개정 이후, 정책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다.

독일의 유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현대사회는 위험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으며, 국가가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과학으로만 다룰 것이 아니라, 국민과 소통하고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처럼 모두가 참여하고 소통하는 노력이 있을 때, 화학물질과의 안전한 동행은 실현될 수 있다.

이병화 환경부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