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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재환 新年칼럼> ‘정유년(丁酉年) 새해’ 비움 가득한 한 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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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환 헤럴드경제 G밸리 논설위원

[헤럴드 지밸리 = 노재환 논설위원 기자]몇 해 전부터 치통으로 이래저래 고생을 많이 해왔는데, 가을 문턱을 넘어 서서히 다시 통증이 오기 시작하더니 겨울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기어이 사단이 나고 말았다. 처음에는 고된 일상에 잇몸이 그저 들뜬 줄로만 여기고 예사로 넘겼다.

연말 모임이다 뭐다해서 그저 오고가는 정이리라 생각하며 마신 술 탓인지 통증이 점차 심해지더니 도통 무엇을 씹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우선 임시방편으로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서랍 한구석에 상비된 진통제로 버텨보기로 했다. 얼추 한 두 시간여 지나니 통증이 이내 가라앉았다.

필자가 치아를 둘러싼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달리하면 자본과 지배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20여 년 전 겪은 IMF외환위기 시절과 성격이 다른 경제위기에 빠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97년 말, 들이닥친 IMF외환위기는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맞물린 부실한 기업대출 등 단기적 충격이 원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에 한술 더 떠, 미국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 트럼프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교역 마찰,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등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 증대, 날로 압박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중국의 사드보복 노골화,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 시행 여파 등 새해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이 전망되고 있다.

일각에선 우리 경제를 놓고 서서히 삶아 죽어가는‘가마솥에 갇힌 개구리’라는 비유까지 나왔다. 이는 개구리가 위기에 봉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유에서 나온 말이다.

최근 보도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90.4%에 달하는 국민이 현재 경제 상황을 ‘위기’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현 정부와 한국은행이 발표한 낙관적 전망보다 국민이 체감하는 경제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얼마 전 벌어진 한진해운 사태, 대우조선해양 부실 등 조선·해운업이 직면한 위기와 이를 포함하는 산업구조조정이 더디게 이뤄지며, 그에 따른 피해의 여파로 가계가 어려움을 겪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와 함께 우리 경제의 28%가량을 차지해온 삼성·현대 등 대기업 그룹도 심각한 위기상황에 놓여있다. 이런 황에서 중국·인도 등 경쟁국은 틈새를 파고들어 시장을 빼앗아가고 있다.

IMF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의 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은 지금까지 총 3차례다. 그중 2000년 4분기(-0.7%)는 그해 연간 성장률이 8.9%에 달했고, 2003년 1분기(-0.7%)에는 2002년 성장률이 7.4%의 고성장을 나타낸 직후라는 점에서 성장절벽과는 거리가 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이지만 정부가 새로 내놓을 수 있는 카드 또한 충분치 않아 보인다. 현재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의 저금리고, 박근혜 정부는 4년 동안 3번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 재정여력도 충분치 않다. 지금까지 GDP를 떠받쳐 온 건설·부동산은 과열에 진입해 있고, 사상최대치를 연일 경신하는 가계부채 등으로 인해 규제를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과 탄성이 국내외에서 들린다.

치통을 그대로 방치하며 통증이 올 때마다 진통제로 위기를 모면하려했던 필자의 경우처럼 우리 경제 곳곳에서의 위기 징후는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됐고, 이제 잇몸마저 망가져 더 이상 제 역할을 못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아직까지도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는 일부 부류도 있다. 대선을 앞둔 정치권과 복지부동 모드로 들어간 정부와 정부를 떠받치고 있는 관료들의 행태다. 이러한 틈을 타 일부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미룬 채 ‘난 모르쇠’ 버티기에 들어갔고, 노조는 파업으로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고 있고, 지금 광화문에서는 연일 수십만의 촛불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촛불을 밝혀야할 곳이 비단 광화문뿐이랴!

12월의 마지막 날, 2017년 새 달력이 주인이 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달력을 본다. 52,600분→8,760시간→365일→→55주→12개월 이 모두가 한 몸이었던 1년이란 시간을 가득 채우며, 두껍게만 느껴졌던 달력도 이젠 마지막 한 장에서 4시간여 남겨 놓고 있다.

지난여름 무성함으로 이내 그늘이 되어주던 가로수들도 무거운 몸을 털어버린 채, 겨울의 한파와 맞서며 늘 그러했듯 춘삼월을 기약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앙상한 가로수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비움으로 봄이 올 때까지 유유히 흘러갈 수 있는 지혜를 채워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국민이 느끼는 위기감이 심각한 이 때 우리 사회의 리더인 정부·관료·정치인부터 힘을 합쳐 위기 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우리가 지금까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한 몸이 되어 위기를 극복해왔던 것처럼, 우리의 힘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부는 만선의 풍어를, 농부는 들녘을 금빛으로 가득 채우는 풍년을, 음지에서 떨고 있는 이웃들이 따스한 양지의 햇살에 누더기를 벗어 던질 수 있는…(생략),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에는 채움보다는 비움이 가득한 한 해 되길 소망해 본다.


fanta732@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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