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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신도시, 분당·판교의 역사]②신도시개발의 근현대사

  • 기사입력 2015-02-1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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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분당판교=신민섭 인턴기자(서울대)]◇성남시
광복 후 분당·판교지역을 포함한 성남시의 근·현대사는 서울 근교 내 이주단지 및 신도시 개발과 맞물려 진행돼 왔다. 서울시는 1968년 광주대단지 조성계획을 수립하여 한강 및 청계천변에 살던 주민들을 이곳으로 집단 이주시키고자 했다. 서울시의 인구 급증에 따른 무허가건물 철거대책의 일환이었다. 강남보다 먼저 시작된 성남시 개발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입주 후개발 정책에 따라 도시의 기반시설이 채 갖추어지기도 전에 진행됐던 집단이주 사업은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판교박물관의 진영욱 학예연구사는 “신도시(광주대단지)에는 먹고 살 수단이 없었기에 이곳으로 이주한 많은 철거민들이 결국 서울 변두리로 다시 돌아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애초의 계획과는 다르게 광주대단지는 서울에서 이주한 철거민이 아닌, 이들로부터 분양권을 불법전매한 지방 출신 이주민들로 채워졌다. 이에 서울시는 입주자들에게 높은 가격의 땅값을 일시불로 요구함과 동시에 각종 조세를 부과했다. 결국 열약한 생활환경과 정부 및 서울시의 졸속행정에 분노한 입주자들은 1971년 8월 집단시위를 벌인다. ‘광주대단지 사건’의 발생 배경이다.

‘광주대단지 사건’ 이후 경기도가 신도시개발 사업을 서울시로부터 인수받았고, 광주군 직할의 성남출장소는 1973년 광주군으로부터 독립하여 성남시로 승격한다. 주민 대부분이 도시빈민층이었던 탓에 신도시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불량주택이 난립했던 성남시는 지방에서 올라온 이주민들의 일시적인 거주지로 기능하면서 그 크기를 키워갔다. 진 씨는 “60년대까지 2만 8천 명이었던 지역인구가 분당 개발 후 1999년 92만으로 폭증했다”면서 가파른 증가세를 설명했다.

◇분당신도시
분당은 80년대 말 주택공급 부족으로 인한 수도권의 주택대란과 주택가격 폭등, 그리고 부동산 투기를 해결하기 위한 ‘200만호 주택 건설계획’의 일환으로 형성됐다. 당시 분당을 비롯해 일산, 평촌, 중동, 산본 등 5개 신도시 건설이 추진됐는데, 이 중 분당 신도시 개발은 강남 지역의 주택 위기를 안정시킬 목적으로 계획됐다. 이에 정부의 개발 제한정책에 따라 1976년부터 녹지보존 지역(‘남단녹지’)으로 묶여었던 성남 남서부 지역의 일부가 분당으로 개발된다.

주택 위기 안정을 위해 사업 일정은 최대한 단축됐으며, 이 과정에서 분당 개발은 성남시가 아닌 정부 주도로 이루어졌다. 한국토지공사가 입지선정에서부터 계획수립, 택지공급에 이르기까지 사업시행의 전 과정을 수행한 것이다. 주택공급의 시급성으로 인해 주택공급 및 주민입주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분당의 자족기능은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분당을 비롯한 5개 신도시들이 모두 모(母)도시인 서울의 베드타운(bedtown)로만 기능할 뿐이라는 비판이 여러 연구들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의 연구에 따르면 분당은 최근 자족능력이 점차 증가하여 수도권 남부 지역의 주요 상품구매지이자 여가 등의 서비스 중심지로 변모하고 있다.

주로 서울 중산층 이상의 생활수준에 기준을 뒀던 개발 계획에 따라 분당에는 단독주택, 연립주택, 아파트 등 다양한 형태의 주택이 깔끔하게 세워졌다. 공원이 많이 형성된 것 또한 특징적인데, 공원 녹지가 분당 전체 면적의 19.4%를 차지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판교신도시
‘남단녹지’ 중 일부가 1989년 분당신도시로 개발될 때도, 여전히 판교 일대는 개발이 제한됐다. 경부고속도로를 가운데 두고 평야가 동서로 펼쳐져 도시 형성에 매우 불리했으며, 성남비행장 활주로가 근처에 있어 고도제한구역 및 소음권에 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도시 개발 후에도 수도권 지역 주택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신도시개발에서 제외됐던 판교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짐에 따라 1992년 ‘남단녹지’는 결국 해제됐다. 이후 2003년 판교신도시개발에 대한 계획이 최종적으로 승인되면서 성남시에는 분당에 이은 제2의 신도시가 생겨나게 된다.

판교신도시 개발의 모토는 ‘선진형 저밀도 전원도시’였다. 이는 과거 단기간의 신도시 건설이 초래한 부작용 및 지역 난개발을 극복하기 위한 방향이었다. 이에 저밀도의 친환경 시가지가 조성됐고, ‘선교통-후입주’ 원칙이 세워으며, 지구단위로 구역을 나눠 여러 주체(경기도, 성남시, 한국토지공사, 주택공사)들이 각각 일정 구역을 분담 개발하게 됐다. 또한 도시의 자족능력을 함양시키기 위해 벤처단지 또한 형성됐다. 이것이 오늘날의 판교테크노밸리다.

이처럼 성남시와 분당·판교지역은 수도권의 인구 증가를 해소할 목적으로 정부주도로 세워진 신도시들이다. 과거 교통의 요충지로서 기능해왔던 이 지역은 광복 이후 신도시개발의 역사와 맞물려 새로운 모습을 갖추게 됐다. 구석기 시대까지 그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면서도 오늘날의 도시 모습을 갖춘지는 얼마 되지 않은, 오래된 신도시 분당과 판교의 시간은 새롭게 쌓여가는 중이다.


참고문헌
성남시사편찬위원회, '성남시사', 2014
이창무·여홍구·나강열, '분당 신도시의 성장과 상권의 변화과정', '국토계획' 제41권 6호, 2001
한국토지공사, '분당신도시 개발사', 1999
한국토지공사 토지박물관, '분당의 땅이름 이야기', 1999

charliesnoopy@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