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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극 세 단체 ‘오늘의 판’을 이야기하다
반상회-할 말 있는 소리극 동네 사람들
타루·바닥소리·판소리트래블러 한자리
작품 하나 올리려면 제작비 8000만원
티켓 3만원...수익만으론 유지 힘들어
소리극의 터전을 다져온 세 단체 ‘창작하는 타루’,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 ‘판소리 트래블러 KA2729’가 한 자리에 모였다. 2023 남산소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열린 ‘반상회-할 말 있는 소리극 동네 사람들’을 통해서다. [서울남산국악당 제공]

삶의 밑바닥을 딛고 선 노동자(다큐 판소리 ‘태일(TALE)’), 하늘을 호령하는 독수리와 음습한 지하를 휘젓는 쥐(‘아리랑 그리랑’), 양계장을 뛰쳐나온 닭(‘닭들의 꿈, 날다’), 조선 최고의 여성 명창(‘진채선’)....

이 땅의 모든 것은 이야기가 됐다. 그 위로 전통 소리가 입혀졌다. ‘춘향전’도 아니고, ‘심청전’도 아니었다. 익숙함을 벗어던진 새로운 무대를 누군가는 ‘실험’이라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파격’이라 했다. 신선하고 기발했지만, 때론 ‘불손’하다 여겨졌던 ‘창작의 세계’를 이끈 주역들이 있다. 과거와는 다르다는 표식은 이름에서 시작됐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창극’인데, 그 이름 대신 ‘소리극’으로 명명했다. ‘창극’이라는 명칭이 낡고 촌스러웠던 시절 태동한 창작욕구이기 때문이다.

2001년 창단, 원년멤버로 ‘창작하는 타루’를 이끌고 있는 정종임 대표는 “20여년간 타루는 별별 말을 들어왔고, 내 마음속에도 상처와 영광의 순간이 있었다”며 “그 말들에 휘둘렸다면 우리는 작품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창작하는 타루’는 업계 ‘최고의 스타’인 이자람, 이날치의 권송희가 거쳐갔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판소리를 입힌 ‘판소리, 애플 그린을 먹다’, 햄릿의 자아를 네 명으로 설정한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등 23년간 30여편의 신선한 창작물을 보여줬다.

소리극의 터전을 다져온 세 단체 ‘창작하는 타루’, ‘판소리 공장 바닥소리’, ‘판소리 트래블러 KA2729’가 한 자리에 모였다. 2023 남산소리극축제의 일환으로 최근 열린 ‘반상회-할 말 있는 소리극 동네 사람들’을 통해서다. 반상회에선 성실한 뚝심으로 저마다의 길을 걸어온 소리꾼들과 각기 다른 창작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반상회에선 창작 소리극 단체들의 운영 방식부터 트렌드까지 나누는 시간이 됐다.

▶티켓 가격은 3만원...민간 단체 운영은?=“평소 소리극을 좋아해 즐겨보는데요. 티켓 가격은 너무도 저렴한데, 심지어 돈을 주고 사야할 굿즈를 만들어 주기도 하더라고요. 티켓 판매를 통해 수익 창출이 되나요?”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하는 조수진 씨의 질문엔 ‘소리극 팬’으로의 진심 어린 염려가 담겨 있었다. 더 자주 보고 싶은 소리극이 이러다 망해 버리는 것은 아닌지, 다시는 볼 수 없게 돼버리는 것은 아닌지, 소리극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적잖았다. 해체 직전의 ‘최애’아이돌 그룹을 바라보는 심경과 다르지 않았다.

남산소리극축제 동안 공연한 세 단체의 소리극 티켓 값은 전석 3만 원. 지난 3월 막 내린 국립단체 작품의 S석보다도 5000원이 저렴하다. ‘축제’가 아닌 공연으로 만날 때에도 창작 판소리 단체들의 공연은 대체로 비슷한 수준이다.

정종임 타루 대표는 “티켓 수익만으로 유지되는 민간 예술 단체는 극히 드물다”며 “모든 단체는 수익을 내고 싶지만, 더 많은 관객을 끌어 모아야 하는 만큼 고민을 많이 하게 된다. 총 제작비는 오르지만, 여전히 티켓 단가는 낮을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작품의 규모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작품을 올리기 위해 보통 8000만원 정도의 제작비가 들어간다. 각 단체들은 그간의 노하우로 맞춤형 제작이 가능해졌다. 1억5000만원 정도의 제작비가 확보되면 최고의 퀄리티로 여유로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보통 6000~8000만 원 정도면 “아끼고 아껴 작품을 제작”(바닥소리)한다. 최소 400만원에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다.

전지혜 바닥소리 PD는 “민간단체는 정부 보조금으로 운영되는데, 공모 시즌이 되면 많은 민간 단체들이 경쟁한다”며 “공모 사업에 선정되지 않으면 다음해에 활동이 어렵다”고 말했다. 김희정 타루 PD 역시 “연초에 공모 사업에서 몇 개가 선정되느냐에 따라 일 년 살림살이가 달라진다”며 “주된 업무 역시 지원서를 쓰는 일이다. 이 일을 ‘헌터’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지금 우리 시대 소리극 트렌드는 ‘다양성’=민간의 ‘창작 판소리’는 지난 20여년 동안 전통을 동시대 감각으로 재해석, 재창조해왔다. 척박했던 판소리 창작은 집요하게 한 세계를 탐구하고 탐험한 단체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로 태어났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지금의 창작 판소리의 ‘트렌드’이기도 하다.

2002년 창단한 바닥소리는 노동자,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무대로 가져왔다. 단체의 이름이 이들의 방향성을 담고 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판소리라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다. 고전 소설, 그리스 비극, 셰익스피어 희비극이 아닌 현실의 밑바닥에 발붙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리극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신선했다. 최근 작품인 ‘체공녀 강주룡’은 단체의 정체성에 공연계의 트렌드를 담아냈다. 한국 노동운동사 최초의 노동운동가이자 고공 농성자. 시대를 바꾼 주역이면서도, 공연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2030 여성 관객들이 선호하는 ‘여성서사’를 중심으로 끌고 왔다.

바닥소리의 소리꾼 김부영은 “소재를 찾을 때는 우리 시대에 문제가 되는 것, 이슈가 되는 것을 중심으로 찾는다”며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아픈 역사를 안고 있는 사람들, 소외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목청껏 이야기해 개선점을 만들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타루는 판소리에 다양한 장르를 접목해 ‘젊은 소리극’을 선보였다. 고전 작품에 동시대성을 입혀 ‘지금의 이야기’로 다시 만드는 작업도 타루가 즐겨 쓰는 방식이다.

정종임 타루 대표는 “고전소설을 활용할 때는 그 시대의 이야기는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고, 지금 시대엔 어떻게 관객과 호흡할 수 있을지 의견을 나눈 뒤, 판소리나 민요와 함께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작업한다”고 했다. 특히 고전소설을 현재로 가져올 땐 스토리나 인물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 인물을 변형하거나 통합하는 경우도 많다.

김희정 타루 PD는 “민간단체들이 저마다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팀을 이끌어와 소리극이 자리 잡을 수 있었고, 소리꾼들도 창작할 줄 아는 노하우가 생기게 됐다”며 “각기 다른 단체의 다양성, 이를 바탕으로 한 여러 색깔이 지금의 창작 판소리의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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