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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 ‘불’ 안 가리는 ‘엘리멘탈’…기본 원소로 감동·재미 잡았다
4개 원소가 사는 세상…문화 다양성·가족애 담아
인종 차별·부모 갈등…피터 손 감독 자전적 이야기
영화 엘리멘탈[디즈니 제공]

[헤럴드경제=이현정 기자]“엘리멘트 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불의 나라에서 살던 부부가 ‘엘리멘트 시티’에 입국한다. 엘리멘트 시티는 불, 물, 흙, 공기. 네 원소가 살아가는 도시이지만 다른 원소들과 섞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불의 부부는 물, 흙, 공기를 피해 그들만의 불의 동네를 만든다. 이들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딸 ‘엠버’를 낳고 키운다. 엠버의 목표는 ‘불의 가게’를 물려 받는 것. 그러나 우연히 물 ‘웨이드’를 만나면서 엠버는 내적 갈림길에 선다.

디즈니·픽사 신작 ‘엘리멘탈’은 불 ‘앰버’가 물 ‘웨이드’를 만나 자아를 찾는 과정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다.

영화가 그린 원소들의 삶은 인간 세상과 흡사하다. 원소들은 그들만의 정체성 아래 그들만의 문화를 만든다. 반면 다른 원소 문화에 대한 무지는 ‘차별 아닌 차별’을 낳는다. 같은 도시에 사는 웨이드의 외삼촌은 엠버와의 첫 만남에서 “우리 말을 잘하네?”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를 꼬집는다. 이는 픽사의 최초 한국계 감독인 피터 손의 어린 시절의 경험이 베여 있다. 손 감독은 뉴욕에서 식료품을 운영하는 부모 아래 자란 이민 2세다.

손 감독은 30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엘리멘탈’ 간담회에서 “뉴욕에서 자라면서 느꼈던 건 차별과 혐오도 있었지만 여러 민족 공동체들이 잘 섞이면서 살기도, 잘 섞이지 못하기도 했다”며 “섞이지 못했을 때 어떻게 서로를 이해할지, 차이점을 극복할 수 있을지를 작품에 담아내려고 했다”고 말했다.

부모의 기대와 중압감 속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 엠버의 모습은 현실의 청춘과도 많이 닮아있다. 엠버는 “부모님의 희생에 보답하는 방법은 내 인생을 희생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말하거나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은 사치다”라며 ‘착한 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투명한 물인 웨이드에 반사되는 자신을 바라보며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기회를 갖게 된다.

손 감독은 “웨이드는 물이기 때문에 앰버에게 거울 역할을 해준다”며 “앰버는 웨이드와 함께하면서 자기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내적 갈등 역시 손 감독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애니메이터를 꿈 꿨던 손 감독은 가게를 물려받길 바라는 부모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손 감독은 “내 진로를 두고 갈등을 빚으면서 어머니는 내가 그린 그림을 찢어버리기도 했다”며 “아버지는 애니메이터였던 가게 손님의 연봉을 듣고 내 진로를 승낙했지만 어머니는 끝까지 반대하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예술적인 재능은 어머니로부터 온 것이었지만, 재능이 있어도 기회를 가질 수 없었던 아픈 기억 때문에 어머니께서 반대하셨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고 덧붙였다.

손 감독의 경험이 반영된 덕에 영화 곳곳엔 한국적인 정서가 담겨 있다. 엠버의 어머니가 가게 뒷편에서 손님들의 궁합을 봐주거나 엠버가 부모에게 절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는 원소의 특성이 잘 반영된 캐릭터들이다. 분노가 치민 불은 큰 화염으로 커진다. 불의 얼굴이 물에 스치자 곧장 반쪽이 된다. 불이 장작을 씹어 먹자 불의 얼굴은 되살아난다.

원소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삼은 것은 학창 시절 화학 시간에서 본 원소 주기율표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손 감독은 “원소가 적힌 한 칸, 한 칸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가족 같았다”며 “수소 등 어려운 원소들을 가지고 웃기게 만들 순 없었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원소인 물, 불, 흙, 공기 네 가지 원소를 소재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영화 엘리멘탈[디즈니 제공]

그러나 원소에 인간의 감정을 대입해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제작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손 감독은 "불과 물 자체를 그려내기가 까다로워서 이팩트를 사용해서 어떻게 감정을 표현하느냐가 관건이었다"며 "어떻게 해야 인간적인 공감을 할 수 있을지를 최우선으로 두고 캐릭터를 그려냈다"고 했다.

영화에 참여한 이채연 애니메이터도 “원소들의 움직임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며 “모든 원소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항상 움직여야 해서 가장 도전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불의 일렁임을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법, 혹은 웨이드가 행여나 젤리나 탱탱볼처럼 보이지 않도록 하는 법 등이 고민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애니메이터는 앞서 소니픽쳐스를 거쳐 픽사로 옮긴 뒤 ‘버즈 라이트이어’ 등을 작업했다.

‘엘리멘탈’은 ‘굿 다이노’에 이어 손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이다. ‘엘리멘탈’은 지난 27일 폐막한 칸 국제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돼 호평을 받았다.

내달 14일 개봉. 109분. 전체 관람가.

ren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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