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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죄 드리운 코인] 규제사각지대서 자란 독버섯...로비·청탁 수단이자 뇌물로
투기광풍 타고 자금 몰려들자
정치권·공무원·학계·언론까지
로비 대상 포섭 가능성도 제기
미공개 정보만으로도 뇌물효과
범죄수익 은닉 창고로 안성맞춤
유사수신·마약거래 도구 악용도

“코인 업계가 돈을 너무 많이 벌었어요. 정부기관 인사들이 한 때 가상자산 업계로 이직 러시가 벌어졌잖아요. 학계에 있는 교수들, 언론사 기자들도 누가 코인을 얼마나 받았다더라는 이야기가 떠돕니다. 모 교수는 100억원대 코인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어요. 정치권에는 얼마나 많이 로비를 했겠습니까.”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수십억대 가상자산(코인) 거래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규제 사각지대에 놓인 코인이 이미 우리 사회 곳곳에 각종 범죄 수단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박 투자’를 빌미로 한 코인 사기 범죄가 판치고, 공직자들이 코인으로 뇌물을 받는 사례는 물론 10대 청소년들이 코인으로 마약을 사고 파는 일까지도 흔히 볼 수 있는 뉴스가 돼 버렸다. 전문가들은 가상자산을 규제·감독해야 할 정치권과 공무원, 이를 감시해야 할 학계·언론계까지 이미 코인업계의 전방위적 로비에 포섭돼 있을 가능성도 제기한다.

▶코인, 로비·청탁 수단이자 뇌물이 되다=코인이 뇌물 수단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건 수년 전부터다. 지난 2021년 전 홍성군청 공무원 A(39)씨는 화물차 불법 증차 대가로 현금과 비트코인 등 1억80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고, 최근 대법원에서 징역 9년의 원심이 확정됐다. 법원은 “비트코인을 이용한 새로운 수법의 뇌물 사건”이라고 판시했다.

코인 업체가 직접 로비·청탁을 위해 자신들이 사전 발행한 코인을 사용하는 경우도 흔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강남 납치·살인 사건의 발단이 된 ‘퓨리에버 코인’의 경우도 해당 업체가 거래소 상장 전부터 현직 공무원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사전 발행 코인 물량을 대거 지급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실제 피해자 A씨가 생전 확보한 이 업체의 관리 명단에는 전·현직 공무원, 대학교수, 언론사 편집국장, 국회의원 보좌관, 시민단체 대표, 기업 임원 등 총 28명의 이름이 적혀 있고, 이 중 19명에게 많게는 수십만 개의 퓨리에버 코인이 전자지갑으로 송금된 것으로 표기돼 있다.

예자선 법무법인 광야 변호사는 “현금이 아닌 가상자산을 주니까 업체 입장에서는 실제로는 돈 한푼 안들이고 홍보나 청탁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가상자산을 통하면 자금 추적의 루트도 남기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꼭 현금이나 코인을 줄 필요도 없다. ‘미공개 내부 정보’만으로도 막대한 뇌물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남국 의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그가 위믹스뿐 아니라 ‘마브렉스’ 등의 코인이 상장되기 전 거액을 매집한 것을 두고 ‘내부정보를 미리 알고 투자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본지 통화에서 “사전 정보 없이 상장 직전의 가상자산을 이렇게 큰 규모로 거래한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김 의원처럼 한 번에 몇 억씩 거래하는 방식과 규모는 업계에서도 굉장히 드물다. 일반인이 이런 투자를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코인, 범죄 수익 은닉 창고가 되다=코인은 이처럼 부정 청탁이나 뇌물 등 범죄 도구로 쓰임과 동시에, 범죄 수익의 창고로 쓰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당장 국가가 인정하는 법정화폐가 아니다보니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신고 대상에서 빠져있다. 자본시장법 등의 규제도 받지 않는다. 해외 국가에 설립된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뇌물을 주고받을 경우 추적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위나 금감원 등 관련 당국, 검·경 수사기관의 경우에도 직무 관련 공무원들이 코인 보유를 신고하도록 자체적인 공무원 행동 강령을 운영하고 있지만, 이들이 자진 신고하지 않는 이상 알 도리가 없다. 공무원들의 윤리의식에 기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박선영 교수는 “퓨리에버 코인 납치 살인 사건이 됐든 김남국 의원 사태가 됐든 우리는 지금 과거에 벌어졌던 일의 극히 일부를 보고 있는 것”이라며 “정말 해 먹을 사람들은 지난해 트래블 룰(코인 실명제) 적용 전에 이미 다 해 먹고 나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3년 전부터 (가상자산 업계에) 사기꾼들이 뻔히 보이니 사기꾼만 잡아가자고 주장했는데, 업계에서는 그게 산업을 저해한다고 반대해왔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박수용 서강대 컴퓨터공학과 교수(한국블록체인학회 학회장)는 “우리가 가상자산 시장을 마치 서부시대 무법 천지처럼 놔둬왔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금융실명제를 하기 전에도 차명으로 돈이 오가니 범죄에 이용이 되고 시장이 혼란스러웠지 않느냐. 그런 문제가 지금도 나타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김형중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에서 국회의원 코인 보유 전수조사 이야기가 나오는 데 대해 “아무리 전수조사를 한다고 해도 본인이 얘기하지 않거나 차명으로 하는 경우는 누가 얼만큼 코인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코인, 유사수신·마약 등 범죄 도구가 되다=가상자산 투자 광풍 시기를 몇차례 겪으면서 일반 국민들에게 코인은 ‘한 방’에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투자 수단으로도 여겨졌다. 가상자산공개(ICO)에 앞서 다단계 방식으로 코인 투자자를 모집하는 등 유사수신 범죄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가상자산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액은 3조1282억원에 달했다. 가상자산거래소에 투자하면 자체 발행한 가상자산을 지급해 원금 대비 300%의 수익을 보장한다고 속여 피해자 5만2000여 명으로부터 2조2400억원 상당을 수신·편취한 브이글로벌 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이병욱 서울과학종합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코인이 법정화폐가 아니다보니 자본시장법으로는 뭘 어떻게 할 수가 없다”며 “사기죄 아니면 유사수신 행위인데, 유사수신도 돈이 아닌 코인으로 주고 받은 경우는 처벌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코인 산업에 ‘활성화’라는 키워드를 쓰는 나라가 대한민국 밖에 없다”고도 했다.

시세조종을 의미하는 이른바 ‘마켓 메이킹’으로 다수 투자자가 피해를 입는 케이스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전세계 투자자들에게 50조원 가량의 피해를 끼친 테라·루나 폭락 사태 역시 대표적인 시세조종 케이스로 꼽힌다.

코인은 마약거래 등 각종 범죄 거래 수단으로도 보편화되고 있다. 서울 동대문경찰서가 지난달 입건한 14세 중학생 A양은 용돈 40만원으로 필로폰 0.05g을 구입해 같은 밤 남학생 2명과 투약했는데, 구매대금은 비트코인으로 지급했다. 경찰 관계자는 “가상자산이 마약 거래를 비롯해 각종 범죄에서 주요 수단이 되고 있다”며 가상자산 특성상 범죄 추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배두헌·김빛나 기자

badhone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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