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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이은미, “삶의 동반자가 돼준 음악…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인터뷰]
지난달부터 4년 만의 전국 투어
원주, 강릉, 부산 등 40개 도시
 
1989년 데뷔…올해로 34주년
‘맨발의 디바’이자 ‘라이브 여왕’
이은미 음악의 힘은 이은미 자체
끊임없이 연구하는 보컬리스트
“낡지 않은 중년의 소리 찾는 중…
삶의 동반자가 된 음악, 고맙다”
1989년 신촌블루스의 객원 가수로 데뷔, 올해로 34주년을 맞은 이은미는 국내에선 찾기 힘든 독보적인 보컬리스트다. 이은미 음악의 힘은 ‘이은미’ 자체에 있다. 보컬리스트로의 강점, 음악가로의 신념과 방향성, 끊임없는 공부가 쌓아온 힘이다. [네오비즈컴퍼니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소리 위를 걷는다. ‘천 개의 목소리’가 만난듯 겹겹이 쌓아올려 뱉어낸 노래들. 풍성하나 무겁지 않고, 편안하지만 가볍지 않다. ‘하나의 목소리’가 빚어낸 마법의 시간 안엔 수만 가지의 감정이 쌓인다. 그의 이름 앞엔 언제나 ‘독보적’이라는 수사가 따라온다. 도무지 ‘모창 능력자’를 찾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보컬리스트.

팬데믹으로 움츠렸던 시간들을 지나온 이은미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이은미와 그의 밴드는 지난 시간 동안 ‘개점 휴업’ 상태를 보냈다. 물론 라디오 DJ, 싱글 발표 등의 활동이 있었지만 ‘공연의 여왕’인 그에게 무대는 언제나 그리움이었다.

지난 30여년 동안, 많을 때는 1년에 50회씩 공연을 올렸다. 지금까지 무려 1200회나 된다. 이제 마침내 시작한다. 올해엔 “40개 도시로의 전국 투어를 계획”하고 있다. ‘음악적 동반자’이자 서로의 ‘자부심’인 이은미 밴드(기타 김진영, 건반 임흥순, 드럼 이귀남, 건반 민경인, 베이스 최민영)와 함께다.

4년 만에 돌아오는 콘서트의 제목은 ‘2023 이은미 라이브 투어 ‘녹턴’’으로 정했다. 2010년 발매한 그의 대표적인 히트곡이다. 대중도 스스로도 “가장 이은미답다고 생각하는 음악”이다. 그는 “가장 이은미다운 모습을 보여줄 공연”이라고 했다.

“전 음악이 도구인 사람이니, 무대에서 음악으로 전해드리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어요. 이은미가 어떤 사람인지 만날 수 있는 공연이 될 거예요.”

올해로 데뷔 34주년. 지금도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는 이은미를 최근 서울 마포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긴 시간 안에 쌓인 음악 이야기엔 그의 어제와 오늘, 내일이 있었다.

이은미의 별칭은 ‘맨발의 디바’다. 첫 솔로 음반 녹음 당시 “해상도가 좋은 스피커 앞에 서니 청바지 스치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들렸던” 경험에 긴장을 풀고자 신발을 벗었던 것이 습관이 됐다. 이후 데뷔 5~6년차에 언론을 통해 붙은 별명이 상징적 수사가 됐다. [네오비즈컴퍼니 제공]
‘맨발의 디바’…“30년 뒤에 불러 달랬는데 어느덧…”

34년이라는 시간은 부담이자 영광이다. 1989년 신촌블루스의 객원 가수로 데뷔해 1992년 1집 ‘기억 속으로’를 냈다.

“34년이라지만, 세계인 모두가 그렇듯 3년 6개월은 날아갔으니 그만큼은 빼야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어요. (웃음) 제 일은 본인이 선택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운이 좋게도 많은 사람들이 아직까지는 이은미의 목소리가 들어줄 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홀로서기를 시작한 뒤, 그의 옆자리엔 누구와도 공유한 적 없는 수식어가 따라온다. MZ세대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은미는 영원한 ‘맨발의 디바’다. 첫 음반 제작 당시 녹음하며 생긴 일화가 ‘맨발’ 가수 탄생의 신호탄이었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은미는 “북미에서 가장 좋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는데, 해상도가 좋은 스피커 앞에 서니 청바지 스치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 들렸다”고 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맨발로 녹음을 했던 버릇이 콘서트로도 이어지게 됐다. 첫 솔로 앨범 발표 이후 ‘공연형 가수’로 자리잡고, 대학로에서 인지도가 높아지자 언론을 통해 그의 이름 옆에 ‘맨발의 디바’라는 타이틀이 따라오게 됐다. 불과 데뷔 5~6년만에 생긴 별칭이었다.

“당시엔 그 별명이 너무 부담스러웠어요. 꾸준히 열심히 잘해서 30년쯤 하면 그 때 불러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이야기를 했는데 자고 일어나니 30년이 넘었네요. (웃음)”

긴 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명곡이 쏟아졌다. 1990년대 ‘기억 속으로’, ‘어떤 그리움’을 시작으로 2005년 ‘애인 있어요’, 2009년 ‘헤어지는 중입니다’, 2010년 ‘녹턴’은 빼놓을 수 없는 히트곡이다. 정작 그는 “히트곡이 많은 가수는 아니다”고 말한다. 하지만 특정한 시기마다 인기 곡이 등장했다. 그 때마다 사람들과 ‘시절 인연’을 맺으며 교감했고, 그 시절을 뛰어넘어 소통했다.

“어떤 때엔 그만두고 싶어 도망가기도 했고, 그러다 다시 돌아오면 사랑받는 음악이 나오기도 했어요. 20주년쯤 됐을 땐 이게 운명인가 싶더라고요. 지금은 도망가거나 그만 두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운명을 잘 받아들여 더 잘해봐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무려 1200회의 공연을 이어온 가수 이은미가 4년 만에 전국 투어로 관객과 만난다. 올 한 해 40개 도시로 이어질 전국투어에 대해 그는 “이은미가 어떤 사람인지 만날 수 있는 공연이자, 가장 이은미다운 모습을 보여줄 공연”이라고 했다. [네오비즈컴퍼니 제공]
'이은미 음악'의 힘은 이은미 '그 자체'

이은미 음악의 힘은 ‘이은미’ 자체에 있다. 보컬리스트로의 강점, 음악가로의 신념과 방향성, 끊임없는 공부가 쌓아온 힘이다.

보컬리스트 이은미는 하루 아침에 완성되지 않았다. 이은미가 음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 역시 ‘성실함’이다. 그는 “음악은 오랜 시간 연습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것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만이 경지에 오른다”고 말한다.

“탁월한 재능도 있어야 빛을 발하겠지만, 매일 꾸준히 연습하는 사람을 이겨낼 방법은 없어요. 잘 하는 것은 다음 문제예요.”

이은미는 스스로의 음악 인생에 변곡이 찾아온 시점을 3집 ‘자유인’(1997) 때라고 했다. 이전까지 발라드의 정수를 들려줬다면, 이 음반에선 록 사운드를 담아내며 ‘라이브의 여왕’으로 서게 됐다. 이은미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음반이기도 하다. 이후 리메이크 앨범 ‘노스탤지아’(2000) 제작 당시를 ‘완전한 전환점’이라고 봤다.

“음악을 대하는 마음가짐, 표현 방법이 그 무렵 완전히 달라졌어요. 이 때부터 레코딩에서 리버브(잔향)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고, 제 목소리에 맞는 변화를 찾았어요.”

가수로 첫 발을 내딛던 ‘꿈나무’ 시절이 그에게도 있었다. 그는 “음악을 처음 시작할 땐 누구나 테크니션이 되고 싶어하진 않는다”며 “그런데 화려한 플레이를 하는 사람을 보면 너무나 경이롭고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시간이 쌓이며 ‘스스로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찾았다. 그 즈음이 창법의 연구가 완성되던 때였다.

이은미는 오랜 시간을 들여 ‘알리사 플랭클린처럼 몸통을 울려 공명이 잘 되는 소리’를 만들었다. 완성됐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활용했고, ‘창법의 연구’ 덕분에 ‘다양한 표현력’을 가지게 됐다.

중년에 접어들며 흉성의 사용으로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했다. 파워풀한 보컬에서 중저음의 다채로운 색채, 고음에서의 넓고 풍성한 배음이 만들어졌다. 사람들이 이은미의 음색을 독특하다고 느끼는 지점이다. 독창적인 가창법으로 인해 이은미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보컬’로 불린다.

물론 따라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리 불러봐도 원곡의 감정과 깊이가 같은 크기로 와닿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수십 년 간 공부하고 연구한 발성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저는 전달자예요. 음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노랫말이 품는 의미를 소리로 전달하는 사람이죠. 그 의미를 담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다양한 방법을 사용해 배음을 만들고 있어요. 배음들이 품고 있는 여러 가지를 음악에 집어 넣었는데, 그게 들리지 않으면 이은미 노래의 맛이 나지 않는다 하더라고요. 어쩌면 따라하기 어려워 히트곡이 없는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러니 그게 또 좋은 건 아니죠?(웃음)”

한 해 한 해 늘어가는 나이테만큼 보컬리스트로의 고민도 깊어간다. 그는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는 보컬리스트이니, 몸에 무리를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해야 낡지 않은 소리를 만들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성대도 탄력이 떨어지고 늙어요. 그런 것들이 소리로 표가 나면 안 되거든요. 가능하면 더 오래 표나지 않게 사용할 수 있는 창법으로 바꾸려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무려 1200회의 공연을 이어온 가수 이은미가 4년 만에 전국 투어로 관객과 만난다. 올 한 해 40개 도시로 이어질 전국투어에 대해 그는 “이은미가 어떤 사람인지 만날 수 있는 공연이자, 가장 이은미다운 모습을 보여줄 공연”이라고 했다. [네오비즈컴퍼니 제공]
삶의 많은 것을 선물한 음악…“동반자 돼줘 고맙다”

시대마다 소통한 그의 음악엔 보편성과 독창성이 어우러진다. 듣기 편한 음악 안에 이은미의 강점이 채워져 독특한 색깔을 만든다. 그의 음악은 시대와 소통하면서도 반 보 앞섰다. 그래서인지 더 오래 불렸다.

대중의 사랑과 가수의 마음이 완전히 일치했던 것은 아니다. 이은미의 생각과 달리 큰 사랑을 받은 곡도 있다. ‘어떤 그리움’은 의외의 대중 반응에 놀란 곡이었다. 그는 “사실 이 곡은 좀 신파 같아 너무나 싫어했던 노래”라고 귀띔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난 뒤에야 가치를 알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라이브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다 ‘어떤 그리움’이 가진 힘에 무너졌다”고 떠올렸다.

“예전엔 듣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만드는 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들은 더 다양한 가능성과 시각으로 듣는다는 걸 알게 됐고, 제 감정만을 강요해온 방식을 깨뜨리게 됐어요. 그 경험이 음악을 만들 때도 나오더라고요. 정해진 것을 고집하지 않고 열어두게 됐어요. 악기도 다양하게 쓰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가기도 하고요.”

많은 곡들 중 이은미가 아끼는 곡은 기존의 히트곡은 아니다. “유명한 곡 빼곤 대부분 그래요. 곡을 만들 때는 어떤 음정 하나가 잡히지 않아 밤을 새기 일쑤예요. 엔지니어와 눈이 시뻘겋게 충혈돼 나와 24시간 우동집에서 우동을 먹으며 울컥하기도 했죠.” 애써 만든 음악이 잘 평가받지 못하는 서운함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음악도 좋은 음악이지만, 사람들을 깨어날 수 있도록 만드는 음악도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몇 년 정도는 ‘한국에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어?’ 싶을 정도로 앞서가는 음악을 해왔어요. 만약 제 음악이 그 시대의 주류 음악이었다면, 당시를 풍미하고 사라졌을 수도 있어요. 시대성과 무관한 스테디셀러를 만든다는 것은 어렵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기도 해요. 모든 음악가의 꿈이죠. 비틀스를 들으면서 유치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요.”

음악과 함께 한 날들은 그를 끊임없이 담금질 하는 연마의 시간이었다. 황량한 계절을 인내하고, 온화한 햇빛을 마주한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하고 강인하다. 이은미가 음악가로 그려가는 꿈은 소박하다.

“유튜브에서 은퇴한 기타리스트들이 자기 집 거실에 앉아 동료들과 듣기 편한 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을 봤어요. 음악이 그 사람의 삶에 완벽히 녹아들어, 그 사람 자체가 음악이 됐더라고요. 그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음악은 제게 많은 것을 선물해줬어요. 제 삶의 가장 행복하고 좋은 부분을 줬어요. 저도 이젠 음악에게, 동반자가 돼줘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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