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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계약직의 길을 선택한 사람.’

국내에서는 10년 전 드라마에서나 찾아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상한 계약직 미스김의 좌충우돌 회사 생활을 그린 2013년작 ‘직장의 신’ 이야기다. 주인공 미스김에게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정해진 근로시간보다 더 일하지 않는다. 더 일해야 할 때는 추가 수당을 받는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목매지 않는다.

시청 당시에는 픽션임이 명확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생경했는데 코로나를 기점으로 ‘긱이코노미(Gig Economy)’가 활성화되며 국내에서도 미스김 같은 커리어를 택하는 이들을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회사생활에 전념하기보다 시간을 쪼개 배달, 유튜브 편집으로 부수입을 올리는 등 직장보다는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1980∼1990년대처럼 평생 다닐 직장을 갖는다는 개념은 시대에 뒤처진 것이 됐다. 변화한 의식주만큼 근로형태, 직업가치관도 다양해졌다.

그런 차원에서 4년 전 도입된 ‘주 52시간 근로제’는 시대변화를 다 담지 못하고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 내부 환경이 잘 갖춰진 일부 기업에서는 주 52시간 근로제로 근로자 권익이 유의미하게 개선됐으나 기업 규모 및 내부 사정, 근로형태와 관계없이 모든 노동자가 혜택을 받았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는 인력 쏠림, 노동 경직성이 야기됐다. 모든 노동자를 아우르기 위한 보완 조치는 필요해 보인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정부가 내놓은 근로제 개편안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정부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하게 바꾸고자 주 최장 근로시간을 69시간까지 늘리되, 장기 휴가를 가능케 해 휴식권을 보장하겠다는 내용의 개편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연차휴가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지금의 환경 속에서 장기 휴가의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수당에 떠밀려 과로에 시달리던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는 비판여론이 들끓고 있다.

쟁점은 ‘자율성’이다. 커리어 성장 혹은 더 많은 소득을 위해 자발적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늘리고자 하는 근로자가 있는가 하면, 충분한 여가가 주기적으로 확보돼야 직업적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어떻게 찾을 것인지는 정책적 차원에서는 뾰족하게 답을 내기 어려운 숙제다. 오로지 개인만이 자신의 진정한 직업적 행복을 위한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 일은 각 개인에게 달렸음을 인정하고, 모두의 니즈를 아우를 만한 유연함을 부여할 때 이번 개편안이 고루 받아들여질 것이다.

잡음을 뒤로 하고 이번 개편안이 이상적인 형태로 정착된다면 새로운 근로제는 개인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하고 근로문화 전반에 유연함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사용자가 원할 때는 근로자가 조금 더 일한 뒤 합당한 대가를 받고, 근로자가 원할 때 장기 휴가를 낼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시간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용자 일방을 위한 혁신이 되지 않도록 예방책이 필요하다.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려는 ‘꼼수’의 사각지대를 손보고, 휴가저축제와 같은 보완책을 모든 근로자가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세심한 노력을 기대한다.

김형렬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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