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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병기 연예톡톡]‘더 글로리2’ 이건 단순복수가 아냐, 뛰어난 복수 디테일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학교폭력의 심각성을 조명한 넷플닉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가 공개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OTT 순위집계 사이트인 ‘플릭스 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10일 오후 5시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2(9화~16화)는 공개 하루만인 11일 넷플릭스 글로벌 ‘톱TV 쇼’ 부문에서 세계 3위를 차지한데 이어 12일에는 세계 2위, 3일만인 13일 기준 넷플릭스 월드랭킹 1위에 올랐다.

송혜교와 임지연 등 ‘더 글로리’ 시즌2 출연배우 7명이 3월 2주 차 굿데이터 TV-OTT 화제성 드라마 출연자 화제성 부문 순위에서Top10에 진입했다.

‘더 글로리’는 유년 시절 학원폭력을 당해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 문동은(송혜교)이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파트2에서는 극중 학교폭력의 피해자 문동은이 조력자인 주여정(이도현), 강현남(염혜란) 등과 함께 가해자 무리에게 어떻게 복수하는지를 치밀하고, 정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오랜 시간 문동은은 박연진 무리에게 복수를 계획하면서 독백 또는 대사로 ‘연진아’를 자주 부른다. 극중 송혜교가 하는 명대사인 “나 지금 되게 신나. 연진아”에도 나오는 ‘연진아’는 올해의 유행어가 될 조짐이다. 송혜교 뿐만 아니라 박성훈, 차주영 등 가해자 그룹의 여러 배우가 “연진아”라고 말하는 연진아 시리즈가 편집으로 모아져 ‘귀에서 피나는 연진아 #netflix #더글로리’라는 제목의 밈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학폭 가해자로서 의혹을 받고 한동안 부인하던 ‘더 글로리’ 안길호 PD가 과거 고교시절 폭력 행사 의혹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네티즌 사이에는 “학폭 당사자 PD가 어떻게 학교폭력물을 다룬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느냐”며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더 글로리’의 파트2는 음미해볼만한 내용과 구성들이 많다. 실제 있었던 학원 폭력을 바탕으로 집필된 ‘더 글로리’ 파트2의 복수 서사는 기본적으로 권선징악이다. 단순한 악인 처단이 아니라 드라마 구조를 정교하게 잘 세워 학교폭력의 심각성과 경각심을 높이는 사회적 메시지를 주는 드라마가 됐다.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는 복수방식이라면 작위적이고 식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김은숙 작가가 단순복수가 아니라 각자에게 어울릴법한 응징과 처벌을 단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해 식상함을 피해간 것은 작가의 역량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마디로 복수의 디테일이 좋다.

가령, 동은이 자신처럼 함께 당하는 입장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자신을 도와주지 못한 김경란을 제외하고 온전히 연진에게만 손명오(김건우) 살해의 책임을 넘기는 장면이 한 예다. 이로써 소희-동은-경란이라는 학폭 피해자들의 뜨거운 연대가 마련된다.

악행을 저지른 재준(박성훈)이 비릿한 눈으로 본다는 대사도, 엄청난 포석이고 암시다. 시야가 서서히 감소하는 녹내장을 앓고 있는 재준은 결국 앞을 볼 수 없게 되면서 자신의 딸인 예솔을 보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도 여러 단계를 거쳐 나온 서사다. 쓰면서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전체를 총괄하는 구조가 만들어진 후 하나하나가 움직인다.

동은이 조력자 여정에게 바둑을 배워, 연진 남편 도영(정성일)에게 접근하는 도구로 사용하는데, 바둑 포석의 구성이 복수방식을 보여준다. 바둑을 두면서 상대를 계속 공격하다보면 자신의 집이 부셔져있다. 가해자들이 뭉친 것은 우정과 인정이 아니라 계산과 이해관계다. 복수도 직접 하기보다는 상대의 그런 약점 같은 걸 건드려주면, 그들끼리 쉽게 균열이 일어난다.

김은숙 작가는 “내 안에 너있다” “애기야 가자” 등 로코에서 무수한 명대사를 남긴 바 있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무겁고 비장한 ‘글로리’에도 경쾌한 대사들이 나온다. “난 매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현남), “물이 차다 그치. 우리 봄에 죽자”(에덴빌라 할머니가 어린 동은에게 하는 말) 등이 명대사가 될 수 있는 것은 김은숙 작가의 내공때문이다. “물이 차다 그치. 우리 봄에 죽자”는 이 작품을 통틀어 최고의 명대사일 것 같다. 그것은 어른 동은이 “그리고 봄에 죽자던 그 말은 봄에 피자는 말이었다”라는 독백으로 되뇌인다.

‘더 글로리’ 파트2의 복수는 동은 혼자 하지 않는다. 폭력 사이코 남편때문에 가정이 무너진 현남과 보건교사 안정미, 에덴빌라 할머니(손숙), 세명초등학교 강선생 등 조력자들과 함께 한다. 이는 학교폭력과 가정폭력 등 폭력 피해자들이 좀 더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방안을 강구하게 한다. 그들의 뜨거운 연대는 결코 헛되지 않았다.

김은숙 작가는 폭력 사회의 어른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졌다. 동은 엄마와 연진 엄마의 막장적인 모습과 최악의 상황인데도 딸을 위해 애쓰는 현남과 소희 엄마의 극명한 대비를 보면서 어른들이 어떻게 개념을 챙겨야 하지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혹시 별 생각 없이 보는 어른들을 위해 동은이 엄마에게 “내가 당신을 용서 안하는 이유는 당신이 내 첫 가해자라는 걸 당신은 지금도 모르기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강렬한 대사를 빼놓지 않았다.

김은숙 작가는 ‘글로리’를 통해 복수를 왜 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피해자가 되찾을 수 있는 게 몇개라고 생각하는가?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뿐이죠. 그래야 원점으로 돌아오는 거고. 동은의 19살이 시작되는 거다. 저(여정)는 동은 후배의 원점을 응원하는 거다. 그 사람은 그저 지금보다 조금 덜 불행해지려는 것뿐이거든.”

동은은 복수를 마친 후 옥상위 난간에 섰다. 하지만 생각을 바꾼다. 이제 아버지를 살인마에게서 잃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여정 선배를 지옥에서 꺼내야 한다. 그는 한동안 여정에게서 떠났다. “복수가 아니라 사랑인가 보죠.” 김은숙 작가는 동은과 여정, 두 사람을 복수를 통해 구원을 이뤄내게 하고 그 와중에 멜로까지 챙긴다. 그 연결이 기가 막힐 정도로 정교하다. 장르물에 멜로가 들어가면 작가의 어설픔을 지적하곤 했는데,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지 않는가. 동은과 여정은 서로 “사랑해요”라며 입을 맞춘다.

김은숙 작가는 멜로드라마를 잘 쓴다. 스토리와 디테일이 약해도 캐릭터의 감정선을 잘 끌고가면 멜로는 완성된다. 이번에는 치밀한 두뇌플레이로 저력있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김은숙 작가에 대한 대중적인 기대치도 한층 더 올라갔다. 이처럼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뤄진 사회적인 드라마를 써줬으면 한다. 나도 김은숙의 나이브한(순진한) 글보다는 이렇게 치열한 글이 더 좋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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