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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럴드시사]美 반도체지원법 독소조항…국익 위해 협상해야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미국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부속된 보조금 지원조건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일고 있다. 반도체지원법을 이해하려면 그 뿌리를 찾아가야 한다. 2021년 3월 24일 새로 부임한 인텔 최고경영자 팻 겔싱어는 ‘IDM(종합반도체회사) 2.0 온라인’ 브리핑을 했다. 바이든 정부와의 교감이 유추된다.

팻 겔싱어는 인텔의 미국과 유럽 공장에서 반도체를 확대 생산하는 게 고객사의 이익과 국가 안보에 도움이 된다며, ‘동아시아에 치우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환으로 수직 분업의 완전 독립된 수탁사업부를 자회사로 신설한다고 밝혔다. 독립된 자회사 형태의 ‘파운드리 산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인텔은 파운드리 산업의 후발주자지만 ‘자국기업’이란 이점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인텔에게 반도체 가공을 위탁할 엔비디아, 퀄컴 같은 반도체 설계회사(팹리스) 그리고 구글, 아마존 등 ‘반도체 자체생산’을 추진 중인 정보통신기술 기업 등이 잠재고객이 될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러한 인텔의 변신에는 미·중 투키디데스 함정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미국의 패권주의’가 있다.

현재 세계 반도체 산업은 설계는 미국, 생산은 한국과 대만, 부품·소재는 일본이 주도하는 국제 분업 구조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는 미국이 지휘봉을 갖고 반도체 설계부터 생산까지 생태계를 미국 중심으로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그 실행계획이 반도체지원법이다. 한국, 대만, 일본기업의 유치를 위해 향후 5년간 총 527억달러(약 68조5000억원)를 지원하겠다는 것이 당근이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달 28일 지원 세부 기준으로 ‘경제 및 국가 안보, 사업 상업성, 재무 건전성, 기술 준비성, 인력 개발, 사회 공헌’ 6개 원칙을 제시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외국기업 유치를 위한 당근이겠지만 반대시각에서 보면 보조금에 대한 ‘꼬리표’가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조금 지급 기준에 부합하려면 ‘기업 정보 공개·시설 접근’ 등을 허용해야 한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목적으로 생산 시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할 수 있다. 예상 현금 흐름 등이 담긴 재무 계획서 제출을 포함해 재무 건전성에의 접근 권한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제조 시설, 기술 역량, 회계정보 등이 노출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억5000만달러 이상의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수익이 전망치를 초과할 경우 미 정부와 초과분의 일부를 공유해야 한다.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배당과 자사주 매입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당시 미국 정부의 회생 지원을 받은 대형 투자은행들에게 적용했던 조항을 반도체 기업에게 적용한 것이다. 미국의 고용에 도움을 주는 외국기업에 대한 대접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초래한 은행과 같아서는 말이 되지 않는다.

중국 시장도 걱정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지원금을 받으려면 10년간 일정 기술 수준 이상의 고성능 반도체를 중국에서 생산해서는 안 된다. 최근 수출 감소와 무역 적자의 주원인은 부진한 반도체 업황이다. 반도체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것은 한국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 한국기업이 중국에서 생산한 반도체가 군사목적으로 쓰였다는 증거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을 압박하는 것은 한·미 가치동맹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이 미국 입장에서 적성 우려국인 중국에 10년간 제조시설 확장 등을 포기해야 한다면, 한국은 중국에서 철수해야 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술과 장치 등을 그대로 중국에 넘겨주는 것이 된다. 기(旣)진출한 기업에 대한 기준은 달라야 하며, 본질적으로 시장질서를 침해하는 선은 넘지 말아야 한다.

보조금 지원 기준에 남아있는 독소조항은 한·미간 협상을 통해 합리화돼야 한다.

ra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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