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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가면 위스키 사다줘” 흔한 풍경이 됐다 [주류시장 뒤흔든 싱글몰트]
작년 위스키 연수입량 72.6%↑
판매전날 줄서는 오픈런 일상화
일부 품귀현상에 해외직구 급증
지난달 6일 서울 용산구 이마트 용산점에서 시민들이 줄을 서 위스키를 구매하고 있다. [연합]

30대 직장인 서모 씨는 최근 일본여행을 가는 친한 지인들이 있으면 꼭 위스키를 부탁한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들어진 산토리 가쿠빈도 현지에서 훨씬 싼 가격에 쉽게 구할 수 있다”며 “지난달 일본에 놀러갔을 때 싱글몰트 위스키 야마자키를 못 산 아쉬움이 있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항 면세점이라도 한 번 더 둘러봐주길 부탁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위스키, 그중에서도 싱글몰트 위스키를 향한 ‘꺾이지 않는 마음’이 올해도 여전할 전망이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아재(아저씨) 술’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진 위스키는 퇴근 후 집에서 하이볼(위스키에 탄산수 또는 토닉워터를 섞어 마시는 음료) 한잔으로 음미하는 술로 자리잡았다. ‘노 재팬(No Japan·일본 제품 불매 운동)’ 이후 일본 맥주는 존재감이 희미해졌지만 일본 위스키의 인기는 고공행진 중이다.

3일 관세청 수출입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위스키 연간 수입중량은 전년 대비 72.6% 늘어난 2만7038t , 수입금액은 52.2% 늘어난 2억6681만달러를 기록했다. 위스키 수입중량은 팬데믹이 시작된 뒤 2020년과 2021년 연이어 감소하다, 지난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일본 위스키 수입금액도 전년 대비 31% 증가한 414만달러를 기록했다. 일본 위스키의 상승세는 맥주와 비교하면 더욱 놀라운 수치다. 일본 맥주 수입금액은 지난해 큰 폭의 회복세를 보였지만, 노 재팬 이전인 2018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5분의 1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본 여행이 급증한 가운데, 위스키는 쇼핑 필수 품목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잡화점 돈키호테에는 산토리 가쿠빈이 가득 쌓여있을 정도다. 어렵지만 야마자키, 하쿠슈 같은 싱글몰트 위스키도 구할 수 있다. 하이볼용으로 짐빔과 함께 인기가 높은 산토리 가쿠빈은 한국에서는 4만원대까지 가격이 치솟았고 구하기도 힘들지만, 현지에서는 반값도 안되는 1200~1300엔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지난해 위스키 수입이 급증했음에도 여전히 국내에서는 인기 위스키를 구하기 힘들다. 위스키 오픈런이 일상화되면서 ‘위스키런’이라는 말까지 등장했을 정도. 각종 세금과 배송비 부담에도 불구하고 해외 직구에 나서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는 발품을 팔아도 구하기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은 맥주와 탁주만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적용하고, 나머지는 가격에 따른 종가세를 적용해 위스키 판매가격 자체가 높은 편이라 해외직구도 할인제품을 공략하면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인기 위스키 품귀 현상이 이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준의 한국주류수입협회 홍보고문(시그니처 대표)은 “원액도 문제지만 병, 라벨, 코르크 등 부자재업체들이 팬데믹 기간 동안 문을 닫은 곳이 많아 부자재 공급 부족으로 인한 품귀현상이 심화된 상태다”고 말했다. 팬데믹 기간에 물류대란이 심화됐을 때에는 위스키 수급 자체가 더욱 불안정했다.

또 한국은 위스키 장기 숙성에 적합하지 않은 기후 특성상 위스키 산업이 발달하지 않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다. 위스키 최대 생산국인 스코틀랜드는 연간 기온 차가 크지 않고 습해 숙성이 느리고 증발량도 연 2% 수준이다. 반면 한국의 증발량은 연 5%가량이나 된다. 대한민국 최초의 싱글몰트 위스키라고 불리는 ‘김창수 위스키’도 숙성기간이 3년가량으로 짧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나온 뒤 지난해 국내 판매량이 전년 대비 169% 증가한 대만 ‘카발란’도 5년 이하 단기숙성이다.

최근 위스키 시장의 특징은 싱글몰트, 캐스크 스트랭스(CS·위스키 원액 그대로 병에 담아 판매하는 방식)제품이 인기를 끈다는 점이다. 20~30대가 주류 문화를 주도하면서 발베니, 더 맥캘란, 글렌피딕 등 인기 싱글몰트 제품은 입고와 동시에 팔려나갈 정도다. 싱글몰트는 단일 증류소에서 몰트(맥아)를 이용해 만든 제품을 말하는데, 여러 종류를 섞는 것보다 만들기 까다롭고 생산량도 적다. CS 또한 물을 타서 희석하는 과정이 없어, 도수도 높고 가격도 일반 위스키보다 비싸다.

싱글몰트 같은 고가 위스키의 인기는 술도 나만의 방식으로 즐기는 홈술·혼술 문화가 자리잡은 덕분이다. 위스키는 한잔씩 마시고 다시 보관이 용이하며, 달달한 술을 좋아하는 젊은 고객들을 중심으로 칵테일로 만들어 먹는 등 홈술 트렌드와도 부합한다는 분석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증샷을 게시하는 문화와 MZ세대의 수집욕구까지 더해지면서 인기 위스키는 공병이 중고시장 플랫폼에서 거래될 정도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싱글몰트인 발베니를 처음 수입할 때에만 해도 지금처럼 잘 팔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코로나를 거치면서 가정채널, 젊은 연령대로 중심이 옮겨가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젊어진 위스키 트렌드에 주류업계는 감각적인 팝업스토어도 속속 선보이고 있으며, 위스키 광고 모델도 변화하는 중이다. 과거 배우 정우성 씨와 이정재 씨를 모델로 기용한 발렌타인은 지난해 이들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배우 주지훈 씨와 그룹 샤이니 멤버 민호를 모델로 기용했다. 시바스리갈은 걸그룹 블랙핑크의 태국인 멤버인 리사를 아시아 앰배서더로 기용하고, ‘시바스리갈18년 리사 에디션’도 선보였다. 오연주 기자

o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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