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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의 지브리는 한편의 수채화”
피아니스트 브라이트, 내달 내한 콘서트

처음 왈츠를 배운 소녀처럼 서툴게, 그러다 이내 신기한 경험에 들떠 신이 나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긴다. 젊은 마법사 하울과 저주에 걸린 소녀 소피가 손을 잡고 하늘을 걷는 장면. 이때 한국인이 사랑한 ‘불후의 명곡’이 정체를 드러낸다. 결코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한 걸음걸음이 아름답고 슬픈 멜로디에 실린 곡, ‘인생의 회전목마’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명작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선 이 곡이 변주돼 모든 신을 장악해 나간다.

오케스트라부터 오르골, 기타, 리코더, 칼림바, 플루트 등 수 많은 악기의 버전이 나왔지만, 그래도 가장 인기 있는 버전은 ‘피아노 버전’이다. 이 곡을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공식 라이선스를 받은 피아니스트가 있다. 엘리자베스 브라이트(본명 유미 나나츠타니·사진)다.

“예전에 한국 공연에서 ‘인생의 회전목마’를 연주하고 나자, 관객들이 ‘오(ぉ-)!’라면서 록 콘서트 같은 환성을 받았어요. 너무나 깜짝 놀랐고, 정말 기쁘더라고요. 제가 마치 록 가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웃음)”

‘지브리의 뮤즈’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 세 번의 내한공연마다 ‘전석 매진’ 신화를 기록하며 한국에서도 탄탄한 팬을 확보한 그는 다음 달 3년 만에 한국 관객과 만난다. ‘지브리 피아노 트리오 발렌타인 콘서트’(2월 11일, 롯데콘서트홀)를 통해서다.

내한을 앞두고 진행한 서면인터뷰에서 그는 “한국 관객은 열정적이면서도 부드럽게 지브리의 음악을 사랑하는 것이 전해진다”고 말했다.

“지브리의 작품은 인간이 살아가는 일상의 본질, 지구에서 인간의 역할 등 매우 깊은 테마들을 이면에 가지고 있어요. 한국인들은 풍부한 감성으로 지브리의 작품 세계에 담긴 본질적인 메시지를 발견해요. 그 이면을 들여다보기에 한국에서 지브리의 세계가 특히 사랑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엘리자베스 브라이트와 지브리의 인연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끄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제안으로 ‘피아노 지브리’(2009) 음반을 발매한 것이 시작이다. 이후 공식 연주 라이선스를 얻어 2018년 ‘지브리 스튜디오 명곡집’을 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마녀배달부 키키’, ‘이웃집 토토로’ 등 지브리 스튜디오의 음악은 모두 그의 손 끝에서 다시 울려퍼진다.

영화에선 대부분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나 엘리자베스 브라이트는 그 풍성한 세계를 피아노 한 대로 담아낸다. 그는 “오케스트라로 연주한 지브리의 음악이 대형 벽면에 걸린 화려한 유화라면, 피아노 버전의 지브리는 자기만의 방에 장식하는 작고 아담한 수채화 같은 이미지”라고 했다. 피아노 버전으로 편곡할 때엔 원칙이 있다.

“원곡이 가진 본질과 핵심을 정확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해요. 연주자로서 내 개성을 너무 드러내기보다는 곡이 지닌 본래의 빛을 놓치지 않게 가능한 한 단순하게 연주하려 하고 있어요.” 엘리자베스 브라이트의 연주에 영화의 장면 장면이 그려지는 이유다.

이번 내한공연에선 ‘인생의 회전목마’를 비롯해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중 ‘언제나 몇번이라도’, ‘치히로의 왈츠’, ‘마녀배달부 키키’ OST인 ‘맑은 날에’, ‘천공의 성 라퓨타’ 중 ‘너를 태우고’를 연주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덕우, 퍼커셔니스트 김미연이 트리오로 함께 한다.

“지브리의 음악은 클래식 음악의 깊이와 풍부함을 콤팩트하게 가공해 누구나 맛볼 수 있도록 하는 매력이 있어요. 클래식은 인간이 가지는 모든 감정, 공통의식을 망라한 훌륭한 세계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 훌륭함을 곧바로 느끼기 어려운 심연한 곳이 있어요. 반면 지브리 음악은 어떤 사람의 마음에도 쉽게 스며들어요. 이번 공연에서도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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