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애인이 “괜찮다”며 슬쩍 권유
심리적 허들·죄의식 낮아진 마약
10대·외국인 사례도 계속 증가
“마약청정국에서 ‘마약범람국’으로 가는 중이죠.” 서울 소재 한 경찰서에서 마약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경찰관은 현재 우리나라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현장에서 실감할 정도로 마약 사건이 많다”며 “판매자가 특정 장소에 마약을 미리 숨겨두고 구매자가 찾는 ‘던지기 수법’으로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일선 경찰서에서 체감할 정도로 마약 사건은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마약 사범 검거 인원은 1만1580명이었다. 이는 2021년 전체 검거 인원인 1만626명을 넘어선 수치다. 2023년은 그 어느 때보다 ‘마약과의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되는 까닭이다.
▶유학파 친구가 자연스레 ‘마약 권유’=“미국에서 유학했던 친구가 ‘술 마실래?’처럼 별일 아니라는 듯이 ‘대마 할래?’라고 말했다.” 유럽에서 오래 유학을 했던 한모(33)씨는 최근 친구의 마약 권유를 거절했다.
사실 한씨는 유학 시절 대마를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거절이 더욱 어려웠다. 그는 “어떻게 가능하냐니까 (유학한 친구들 사이에서) 다 방법이 있다고 했어요. 솔직히 혹하긴 했는데 경찰에 잡혀갈까봐 안 했다”고 말했다.
한씨 사례처럼 젊은 층에게 마약 제안은 낯선 일이 아니다. 마약은 유명인이 하는 일탈이 아닌 평범한 시민도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 됐다. 일상에서 친구에게 마약을 제안받기도 한다.
직장인 서모(31)씨는 최근 애인 사이까지 발전했던 남성과 헤어졌다. 많은 이유가 있었지만 마약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씨는 “음악을 하는 친구였는데 가끔 클럽에서 대마를 하더라. ‘어쩌다 한 번 기분 좋을 때 한다’라는데 믿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서씨는 마약을 끊어달라고 말하기도 했으나 상대방은 오히려 “남들 다 하는데 너만 모르는 거다”고 말하기도 했다.
▶심리적 허들·죄의식 낮아진 마약=젊은 층 사이서 마약 제안이 늘어난 데는 마약 투약에 대한 인식이 낮아진 탓이 크다. 유학이나 해외여행 등 해외에서 마약을 접할 기회가 많은 젊은 층은 마약에 대한 심리적 허들이 낮아진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녔던 인모(30) 씨는 “한국인 유학생 중에서도 중독이 친구들이 몇몇 있었고, 대마가 합법인 주에서 여러 상점을 돌면서 구매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인씨는 마약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면서도 “하면 무슨 기분이 드나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정모(28) 씨는 독일과 미국 시애틀에서 유학하며 마약하는 사람을 자주 봤다. 정씨는 “파티를 많이하다보니 마약에 노출될 기회가 많고, 길거리에서도 마약을 하는 사람을 봤다”며 “물론 우리나라는 위법이라 직접 하지는 않으나 경계심이 큰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정씨는 “(마약을) 하는 걸 보면 ‘또 하나보다’ 하는 정도다”고 말했다.
▶10대·외국인 사례도 계속 증가=젊은 층뿐만 아니라 10대·외국인 마약 사범도 증가하고 있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21년 마약류 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마약 사범 중 20대가 31.4%, 30대가 25.4%를 차지해 20·30대 비중이 높았다. 10대 마약사범은 2.8%로 비중은 소수였으나 증가폭이 다른 연령대보다 높았다. 2020년 313명에서 지난해 450명으로 전년대비 40% 가량 늘었다.
경찰이 마약사범을 적발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 26일 목포해양경찰서는 전남 일대에서 이주여성을 운반책으로 이용한 외국인 선원(불법체류자) 및 판매책 등 4명을 검거했다. 지난 21일 광주지방검찰청은 신종 마약 43억원어치를 몰래 들여온 외국인 13명을 적발해 재판에 넘겼다. 대검에 따르면 올해 10월까지 외국인 마약류 사범은 2079명으로 지난해 전체 인원인 2339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김빛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