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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한 숨으로 채운 낙찰률...국내미술시장, 활력 잃다
2년 만에 재개된 경매시장
10개 경매사 낙찰총액 2230억
지난해보다 무려 31% 가량 줄어
경기침체·유동성·급성장 피로감
MZ컬렉터 가상자산 몰락도 겹쳐
‘미술품=투자계약 증권’ 규정도 찬물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올해 11월까지 국내 10대 경매사의 낙찰총액은 2230억원, 지난해 전체 낙찰총액 3242억원에 비해 31%가량 줄어들었다. 12월 한 달 치 낙찰 총액을 더한다 할지라도 20%이상 시장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사진은 경매에 참여하는 모습. [서울옥션 제공]

지난주 서울옥션 홍콩 경매를 지켜보던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긴 한 숨을 내쉬어야 했다. 전체 84개 작품 중 50개만 낙찰되며 낙찰률이 65%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70%대를 평작으로 보기에, 60%대는 예상에 못 미치는 수치였다.

기대를 모았던 쿠사마 야요의 호박도 최저 추정가인 80억원보다 낮은 64억2000만원에 낙찰됐다. 김환기, 박서보, 김구림 등 한국 현대미술의 블루칩 작가들의 작업도 모두 유찰됐다. 대신 시장에서 선호하는 도상이었던 이배, 정영주, 우국원, 장마리아 등은 추정가 상단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홍콩 경매는 시작 전부터 이목이 집중됐다. 코로나19로 2년 만에 재개된데다 지난 6월부터 미술품 경매시장의 하락세가 뚜렸해졌기에 이번 경매가 터닝포인트가 될 지 관심이 커진 상태였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2022년 11월까지 국내 10개 경매사의 낙찰 총액은 2230억원이다. 2021년 전체 낙찰총액인 3242억원에 비해 약 31% 줄어들었다. 12월 한 달 치 낙찰 총액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감안해도 20%넘게 시장이 주저 앉았다.

시장이 하락 반전한 것은 6월부터였다. 전년 동기 대비 낙찰 총액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낙찰률도 꾸준히 빠져, 2022년 11월 30일 현재 연평균 낙찰률은 59.7%다. 특히 11월은 49.3%를 기록해 출품작의 절반이 유찰됐다. 2021년 평균 낙찰률은 66.5%였다. 경매시장이 얼어붙고 있는 것이다.

요인으로는 여러가지가 꼽힌다. 먼저 경기침체다. 미국이 코로나19발 양적완화를 접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빠른 속도로 올리면서 강(强)달러가 연출됐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에서 달러 이동이 나타났고, 이에 따라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할 것 없이 대부분 자산 시장이 폭락했다. 미술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에 더해 국내시장은 급격한 성장에 따른 조정기까지 겹쳤다. 지난 3월 아트바젤과 UBS가 발행한 ‘아트 마켓 리포트 2022’에 따르면, 조사 이래 처음으로 한국 미술시장이 ‘전후 및 동시대 미술’분야 거래액이 전 세계 2%를 차지,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5위에 랭크됐다. 전후 및 동시대 미술은 현대미술 분야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분야로 꼽힌다. 존재조차 없었던 한국 미술시장이 5위에 진입하게 된 것은 신규 컬렉터의 급증이 가장 크다.

2022년 국내 미술작품 경매가 중 최고를 기록한 쿠사마 야요이의 녹색 ‘호박’. 64억 2000만원 (구매수수료 포함 76억 원)에 낙찰됐다. [서울옥션 제공]

시장에서는 이른바 MZ컬렉터로 불리는 젊은 컬렉터가 최근 2~3년간 급격하게 유입된 것이 시장 파이를 키우는데 주효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이들 컬렉터 자산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던 가상자산시장이 몰락하면서 미술시장도 함께 활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젊은 작가를 주로 프로모션하던 한 갤러리 대표는 “지난해 까지만 해도 전시장에서 바로 코인을 팔아 작품을 구매하던 컬렉터들이 꽤 있었다. 올해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한 최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미술품 조각투자를 투자계약 증권에 해당한다고 정리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테사·서울옥션블루·투게더아트·열매컴퍼니 등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는 당분간 공동구매를 중단하기로 했다. 그간 미술품 조각투자는 수 억원에 달하는 미술품을 적은 돈으로도 지분 보유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MZ컬렉터 사이 인기를 끌었으나, 이를 딱 규정할만한 제도가 없어 제도권 밖 투자로 분류됐었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이들 서비스를 ‘증권’으로 인정하면서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됐다. 테사·서울옥션블루·투게더아트 등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구매자들끼리 지분을 사고 파는 플랫폼은 문을 닫고, 예치금은 소비자 명의로 전환했다. 이같은 소비자 보호조치를 6개월 내에 마련해야 공동구매를 재개할 수 있다.

다만 미술시장 전문가들은 금융당국의 결정보다는 시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을 것으로 봤다. 공동구매한 작품 가격이 올라야 수익이 나는 구조이기 때문에, 오를만한 작품을 선별하는데 더 역량을 집중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회사의 경우, 예상치 못하게 자금이 묶이면 운영이 힘들어지는 곳들이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경매 시장의 한파가 미술시장 전체로 번질까. 시장에서는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유래 없이 뜨거웠던 상승장이었기에 한 템포 쉬어 가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시작돼던 2020년처럼 급격하게 후퇴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갤러리를 위주로 하는 1차 미술시장과 드러나지 않는 2차 미술시장인 프라이빗 세일은 경매 시장과는 온도 차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우환, 박서보, 이건용 등 미술사적으로는 물론 시장에서도 인정받는 작가들의 작업은 ‘갤러리가(價)’에선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된다. 프라이빗 세일을 주로 하는 한 딜러는 “좋은 작품은 공개 매물로 나오지 않는다는 건 불문률인데, 최근 경매 시장이 불안하자 이같은 경향이 더 심해졌다. 박서보 작업만 하더라도 시장에서 선호하는 빨강, 노랑 등은 호가가 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거래가 시작될만 하면 높여부르기 일쑤”라고 전했다.

온기가 덜 식은 것일까, 아니면 이미 식고 끓어오를 시점을 기다리는 것일까. 올해 마지막 미술품 메이저 경매는 서울옥션은 12월 20일, K옥션은 그 다음날인 21일 이다.

이한빛 기자

vick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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