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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들이 노닐던 절경 아래...인간이 꽃 피운 영암 르네상스
백두대간 끝 암산…전남 영암 월출산
아침에 오르면 운무·햇빛 어울려 장관연출
구름다리서 만나는 실경은 한폭의 동양화
구정봉 세계유일 자연 큰바위 얼굴 눈길
무역 중심지 구림·상대포, 대동사상 발원
왕인박사 논어·천자문 들고 日 계몽 출항
예술·놀이·미식 토털파크 기찬랜드 인기
전남 영암 월출산 [지엔씨21 드론 촬영]

혼자서 대간이나 정맥을 개척하려는 듯, 백두대간-호남정맥 다 끝난 바닷가 평지에 나홀로 불쑥 솟은 월출산은 신(神)들의 무공 놀이터, 혹은 ‘아바타’ 같은 고공활극 영화촬영지로 삼아도 좋은 만큼 신비스럽고 수려하다.

미술책이나 전람회에서 우람한 산자락을 표현한 옛 한국화, 동양화의 표현이 과장된 줄 알았다. 그러나 월출산은 동양화가 팩트에 기반한 것임을 증명한다.

영암 천황 야영장을 조금 지나, 아파트 4~5층 될 법한 거대 바위 앞 바우제단에서 가볍게 예를 표한뒤 20분 정도 산길을 걸어도, ‘소문 만큼 힘든 산은 아니네’라는 생각을 갖게된다.

▶산중 대나무숲 지나 땀 빼면 빨간 구름다리=산중의 대나무숲은 보기드문데, 등산하면서 대나무의 호위를 받는 것이 색다른 느낌을 주기에, 월출산 등정의 기대감을 더 키운다.

그러나, 북동쪽으로 사자봉이 올려다 보이는 해발 200m 지점의 천황사를 지나면서부터 가파른 돌산이 시작된다. 디딤발을 잘 보고 천천히 걷는데, 11월 중순 등산임에도 온 몸에서 구슬땀이 흐른다.

좀 쉬려 했더니 예닐곱살 어린이가 차분히 잘 오르기에 엄살을 피울 기회를 놓쳤다. 등산 중 고개를 들면 우람한 돌산이 “뭐가 힘드냐”는 듯, 나를 내려다 보고, 뒤편엔 영암 벌판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월출산 빨간 구름다리에 서면 흘린 땀 보다 보람과 이득이 엄청나게 크다는 것을 금방 느낀다. 동양화 보다 더 멋진 실경을 우리는 눈앞에서 목도하며 “와”하는 환성을 여러 차례 지르게 된다. 땀 흘린 보람을 충분히 느끼는 순간이다. 빨간 구름다리가 이렇게 만족감을 주니 많은 필부필부들이 최종 목적지로 삼기도 한다.

아침 일찍 등산할 경우 월출산은 독도 처럼, 운무 바다 위 거대 바위섬이 된다

‘오우가’의 고산 윤선도가 “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걷히랴!”라며 희망을 노래한 시점은 오전 9시 이전일 것이고, ‘택리지’의 청담 이중환이 월출산의 장쾌한 풍광이 점점 더 선명하게 깨어나는 모습을 ‘화승조천(火昇朝天:아침 하늘 불꽃같은 기상)으로 표현한 것은 아마도 오전 10시는 넘긴 때이리라.

▶세계유일의 자연산 ‘큰바위 얼굴’ 구정봉=‘남도 금강산’ 월출산 최고봉 천황봉 정상에는 300여명이 한꺼번에 앉을 수 있는 평평한 암반이 있다.

천황봉 남서쪽 제2봉, 구정봉에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자연산 큰바위 얼굴이 달마대사 같은 모습으로 내려다 본다. 미국 사우스다코나주의 러시모아 큰바위 얼굴은 인공인데도 최근 크게 훼손됐는데, 이제 전세계 교과서는 ‘영암 큰바위얼굴’로 단원을 바꾸어야 할 듯 싶다.

정상까지 간다면, 태백산에 오르는 것과 같다. 등산의 출발점인 평지의 고도가 월출산(809m)은 해발 50m 정도인데 태백산(1567m)은 800m이기 때문이다.

구절폭포, 용추폭포를 지나 조금씩 아래로 내려가면서 폭포수가 무려 일곱 차례나 연거푸 떨어지는 칠지폭포와 은천폭포·대동폭포의 합창 소리도 요란하고, 방향에 따라 국보-보물 백화점 도갑사와 무위사 등에 이르게 된다.

도갑사는 영암에서 태어난 도선국사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이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도갑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국보인 도갑사 정문, 해탈문은 1473년에 지어졌는데, 양식이 독특하다. 좌우 앞쪽 칸에 금강역사상이, 다음 칸에는 보물인 문수동자와 보현동자상이 미소짓고 있다. 우람하고 무서운 상징만 있던 여느 사찰 출입문과 달리 푸근함도 느껴진다.

대웅보전 앞과 뒤에는 오층석탑 및 삼층석탑 등 고려시대의 석탑 2기와 도선·수미의 비가 있다. 오층 석탑에는 저마다의 소원이 적힌 쪽지가 빼곡히 걸려있다. 천불을 만나면, 1000 좌상의 부처가 내 소원을 단체로 들어줄 듯 하다.

도갑사 주위에는 1972년 국보로 지정된 월출산마애여래좌상을 비롯하여, 도선이 디딜방아를 찧어 도술조화를 부렸다는 구정봉 큰바위얼굴의 9개 우물, 박사 왕인이 일본에 건너간 것을 슬퍼한 제자들이 왕인이 공부하던 동굴입구에 새겼다는 왕인박사상 등이 있다.

▶상남자인출 알았던 월출산, 훈남 면모도?=월출산 기찬랜드쪽으로 내려오면 천황봉 자락 맥반석에서 나오는 월출산의 기(氣)와 월출산 계곡을 흐르는 청정 자연수를 활용한 문화,예술,놀이,미식의 토털 파크, ‘기찬랜드’를 만난다.

환경부로부터 삼림욕 건강산책로로 인증받은 ‘기(氣)찬묏길’은 기찬랜드~기체육공원~탑동약수터~천황사 주차장으로 연결되는데, 재잘거리는 개천 소리 들리는 편안한 산책길이라, 험준한 등산길에서 보이던 월출산의 상남자 면모와는 달리, 배려심 깊은 훈남의 색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기찬랜드에는 가야금산조기념관, 영암 노래 하춘화 노래비, 전석홍 시인 시비 등 볼거리와 휴식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논어와 천자문을 들고 일본에 문명을 일궈준 왕인 박사의 출항지로, 창녕조(曺)씨, 함양박씨, 연주현씨, 해주최씨, 낭주(영암)최씨가 상부상조로 살아가는 구림-상대포 마을과 덕진면 영보리 최덕지 후예들의 마을, 영암읍 장암리는 반상과 귀천, 빈부를 초월해 더불어 함께 살아가고자 다짐하고 실천하던 대동(大同) 정신의 진원지이다.

흉년에 고통받는 백성에게 구휼미를 베풀기 위해 논공법이라는 세법을 상소해 세종을 설득했던 최덕지가 평생 공직에 봉직하다 67세되던 1451년 사임해 영암으로 내려갈 때, 당대 석학과 중신 28명이 노량진나루터에 나와 시부(詩賦)를 지어 칭송하며 송별한 일화는 유명하다.

우렁찬 월출산은 끝자락으로 향하면서 왕인박사의 상대포, 대동(大同)사상의 진원지 구림전통마을, 루오, 달리의 작품도 걸려있는 하정웅미술관과 도기박물관, 인문학의 산실 장암·모정마을에서 부터, 기(氣)체육공원, 조훈현 바둑기념관, 흥겨운 트로트 가요센터, 아기자기한 기찬묏길, 가야금산조테마공원, 매력한우와 낙지를 탕탕 쳐서 러프하게 자른 뒤 버무린 ‘탕탕이’ 등 맛집거리 까지 차례로 빚어낸다.

농지 면적 전국 11번째, 친화경 고품질 농축업의 메카로서, 매력한우, 한우육회초밥, 토종닭요리 등 육지의 청정 미식, 삼호읍이 조선업 등 대불산업단지로 변모하면서 목포-장흥 등지 수산물을 공급받아 영암의 손맛을 가미한 어란, 독천낙지마을 갈낙탕, 낙지구이, 짱뚱어탕이 입맛을 자극하는 곳이다. 영암국제자동차경주장, 기찬랜드의 역동성과 유쾌함은 또 어떠랴.

신의 놀이터 월출산은 이처럼 대단한 확장성으로 인간의 영암 르네상스를 다채롭게 꽃 피운 것이다.

월출산=함영훈 기자

abc@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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