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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 경기 그 이상의 무게

정말 아름다운 골이었다. 카타르월드컵, 포르투갈과의 H조 마지막 경기 후반 종료 직전에 황희찬 선수가 넣은 골을 보고 또 본다. 상대 수비수들에 에워 싸여 있었는데도 손흥민 선수는 어쩜 그리 침착했는지. 그 짧은 순간에 들어오는 황희찬 선수를 보고 패스를 했고, 황 선수도 차분하게 골로 연결했다. 메시나 호나우두 못지않은 축구기술과 정신력이 낳은 결과였다.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안고 싸운 선수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한국 팀의 조별 세 경기는 모두 한 경기장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대학 사이에 위치해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데 아시아 지역예선을 치르며 카타르에서 여러 번 경기해봤고, 카타르의 프로축구팀에서 뛰었던 정우영 선수도 있어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보다 현지 적응도 쉬웠을 것이다.

이번 월드컵에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나라들의 활약은 예고된 것이었다. 카타르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아주 많다. 그들의 응원을 등에 업고 뛰는데 신나지 않겠는가. 2002년처럼 아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 카타르는 우리 선수들에게 ‘홈 어웨이 홈(home away home)’이나 마찬가지다.

포르투갈은 2002년 우리에게 당한 뼈아픈 패배를 설욕하고 싶었을 텐데 주전 선수들을 선발 출전시켰는데도 우리에게 졌다. 16강의 문을 연 2002년 박지성의 고품격 골을 나는 현장에서 직접 봤다. 인천 월드컵경기장 관중석에 앉아 있던 수녀님들이 생각난다. “대한민국!” 손뼉치며 구호를 외치던 아이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이토록 놀라움과 논란이 넘치는 월드컵이라니. 중동에서 처음 열리는 겨울 월드컵, 카타르의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지만 경기장과 관중석에 대형 에어컨을 설치해 축구장의 온도는 20도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사막의 열기를 식히느라 4층 건물 높이의 실외기를 설치했다는데 그 어마무시한 냉방장치들을 가동하느라 에너지는 또 얼마나 낭비될까.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를 막으려는 인류의 노력을 거꾸로 돌리는 축제가 과연 축제일까? 브라질의 공격수 안토니는 경기장 내 설치된 에어컨에서 나오는 찬바람 때문에 목감기에 걸려 훈련에 불참하는 등 많은 선수가 몸관리에 어려움을 겪었다.

평소 세계 시민이라고 자처했는데 경기가 시작되자 나도 모르게 아시아 팀들을 응원했다. 아르헨티나를 꺽은 사우디아라비아, 독일과 스페인에 역전승한 일본 그리고 이란 대표팀. 영국과의 첫 경기에서 (히잡시위를 유혈진압한 정부에 반대한다는 의지를 보이려)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는 이란 선수들을 보며 가슴이 짠했다. 이란 국가가 흘러나올 때 관중석에 있던 이란 여성은 눈물을 흘렸다.

이란 팀의 경기에서는 늘 경기 그 이상의 무게가 느껴졌다.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경기장의 한쪽에서 건장한 남자들이 공을 다투고, 페르시아만의 다른 쪽에선 여성들이 목숨을 걸고 히잡을 불태우며 저항하고 있다. 자유를 위한 싸움에 연대하려 국가를 부르지 않는 용기를 보여준 이란 선수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체포와 고문을 당할까? 그 논란의 결과가 어쩌면 중동의 역사를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월드컵.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2022 카타르’는 반전(反轉)과 이야기와 논쟁이 풍부한 최고의 월드컵이다.

시인·이미출판사 대표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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