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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근대 조각 특별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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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을 함께 살펴봅니다.
카미유 클로델.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1943년 10월 프랑스 남부의 한 수용소.

카미유 클로델의 눈은 황량했다. 머리가 하얗게 셌다. 팔다리는 비쩍 마른 장작 같았다. 쇠침대에 웅크린 카미유는 옷 위로 거적때기 몇 겹을 둘렀다. 그런데도 찬 공기가 뼛속까지 들어왔다. 몇 개 남지 않은 이가 서로 부딪히며 딱딱거렸다. "네 누나가, 정신병원에, 갇혀 있다는 걸, 잊지 마." 카미유는 꾹꾹 눌러 글을 썼다. 폴 클로델에게 쓸 편지였다. 자신을 이곳에 넣은 동생이었다. 카미유가 손에 힘을 줄 때마다 침대 다리는 삐걱댔다. 사실, 카미유는 폴에게 같은 내용의 편지를 수천 장 보냈다. 폴은 외면했다. 끈질기게 무시했다. 카미유는 자기 눈이 여전히 조각가의 눈이라고 믿었다. 손도 당연히 조각가의 손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있어야 할 곳은 조각 작업실이었다. 퀴퀴하고 습한 수용소 따위가 아니었다. 하지만 폴에게 카미유의 눈은, 카미유의 손은 과대망상증 환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폴은 카미유가 있어야 할 곳이 이곳 정신병원이라고 확신했다.

영화 '까미유 끌로델(2013)' 예고편 중 일부 캡처.

얼마 전만 해도 폴은 가끔 면회실에 얼굴을 비췄다.

폴의 눈도 황량했다. 카미유는 편지 이야기를 했다. 폴은 그때마다 말을 끊고 "제발, 다 누나를 위해서야"라고 했다. 카미유는 그 말에 울어도 보고, 화도 내고, 애원도 해봤다. 폴은 아무 말이 없었다. 두 눈만 더 황량해질 뿐이었다. 어느 날, 카미유는 폴에게 여기가 너무 좁고 어둡다며 연신 악을 썼다. 아직도 그놈, 오귀스트 로댕이 나를 가둔 채 감시하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폴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폴은 고개를 저었다. 그날 이후 지금껏 폴은 카미유를 찾지 않았다. 그래도 카미유는 견뎠다.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젠가는 이 창살을 꺾고 나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새 작업실에서, 새 조각칼을 쥐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확신했다. 단지 그날이 오늘은 아닐 뿐이었다. 편지를 다 쓴 카미유는 찢어진 담요를 턱 끝까지 올렸다. 애써 눈을 감았다. 얼마 후 카미유가 희미하게 웃었다.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조각계 ‘우상’을 만났다
카미유 클로델, Bust of Auguste Rodin

"잡았다!"

1883년 프랑스 파리에 있는 조각가 부셰의 작업실 앞. 카미유는 눈을 떴다. 유독 화창한 날이었다. 햇빛이 눈가리개 틈으로 콸콸 쏟아졌다. 19살의 카미유는 스승 부셰 소유 작업실 마당에서 동료들과 술래잡기를 했다. 카미유는 누군가를 꽉 잡았다. 눈가리개를 벗었다. 내리쬐는 빛에 얼굴을 찡그렸다. 카미유가 끌어안은 건 동기 이사벨이 아니었다. 카미유 앞에는 중년의 남성이 서 있었다. 푸른 눈과 수북한 수염, 거친 손의 소유자였다. "죄송해요." 카미유는 뒤로 물러났다. 그의 깊은 눈동자를 봤다. 심장이 펄펄 뛰었다. 깜짝 놀랐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괜찮습니다." 그는 그런 카미유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 또한 카미유의 밤색 눈동자를 봤다. "저 신사는 누구야?" 카미유는 그가 떠난 뒤 이사벨을 찾아 물었다. "로댕. 스승님의 오랜 친구야." 아, 저 사람이 로댕…! 카미유의 얼굴이 붉어졌다. 로댕은 조각가 지망생에게 우상 같은 존재였다. 그런 이에게 주책맞은 짓을 한 것이었다.

카미유 클로델, Vertumnus and Pomona

카미유는 얼마 후 로댕과 또 마주했다.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부셰는 로마 유학길에 올랐다. 부셰는 로댕에게 자기 제자들을 맡겼다. 카미유도 그렇게 로댕의 작업실로 가게 된 것이다. 카미유는 로댕에게 엉거주춤 인사했다. 로댕은 그 푸른 눈으로 카미유를 바라봤다. 카미유는 로댕이 자신을 기억한다는 데 깜짝 놀랐다. "어제 '지옥의 문'에서 마지막 점토 작업을 한 사람이 누구지?" 로댕은 제자들을 모아 물었다. 카미유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클로델. 날 따라와." 주변이 술렁였다. 카미유과 함께 온 이사벨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카미유는 로댕의 개인 작업실로 들어왔다. 떨렸다. 무슨 실수를 했는지 곱씹었다. "카미유 클로델 양." 로댕이 카미유의 이름을 불렀다. 평생 마음에 든 적 없던 이 이름이 처음으로 황홀하게 들렸다. 로댕이 건넨 말은 예상 밖이었다. "당신의 재능은 상상 이상이야. 내 정식 조수로 일해주게."

“로댕에게 몰입하지 말거라”
카미유 클로델 14세 무렵.

"카미유. 좋은 선택이 아니야."

카미유의 아버지는 로댕의 제안을 받아들인 딸을 타박했다. "로댕은 이기적이란다. 소문도 좋지 않아." 로댕에게 홀린 카미유는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네가 그를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다." "제가 감당할 수 없는 게 무엇이 더 있겠어요." 카미유가 응수했다. 아버지는 말을 하려다 말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딸의 말에 뼈가 있어서였다. 카미유는 평생 견디며 살아왔다. 카미유는 1864년 프랑스 페르 앙 다드누아에서 태어났다. 카미유는 축하받지 못한 아기였다. 카미유의 부모는 장남 샤를 앙리 클로델을 잊지 못했다. 1년 먼저 세상에 나왔지만 고작 보름 만에 죽은 아기였다. 카미유의 부모는 그 아이가 그대로 다시 태어나길 바랐다. 그런데 딸이었다. 그녀에게 중성적 이름이 붙은 이유였다.

다행히 아버지는 카미유의 예술 재능을 알아봤다.

마음의 문을 열었다. 카미유는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덕에 예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꽤 잘나가는 조각가 부셰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카미유를 싫어했다. 제 오빠를 잡아먹고 나온 아이라며 저주하고 증오했다. 어머니는 뒤이어 태어난 아들 폴에게 애정을 쏟았다. 카미유는 어머니의 방치 속 혼자서 흙을 갖고 놀았다. 언젠가 20㎏ 넘는 진흙 뭉치를 낑낑대며 집에 들고 왔다. 어머니는 "어디서 쓰레기를 갖고 와!"라며 뺨을 후려쳤다. 카미유는 그런 어머니를 가만히 쳐다봤다. 어머니는 마구 날뛰었다. 카미유의 뺨을 여러 차례 올려쳤다. 카미유는 끝내 버리지 않았다. 이런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알았다…. 하지만 로댕에게 너무 몰입하지 말거라. 로댕의 독선적인 면은 네 능력을 갉아먹을 수 있어." 아버지는 카미유에게 당부했다.

24살 차이 무색하게
오귀스트 로댕, 입맞춤

카미유는 로댕의 작업실에 살다시피 했다.

카미유는 로댕에게 푹 빠졌다. 24년 나이 차를 뛰어넘었다. 로댕에게는 정부(情婦) 로즈 뵈레가 있었다. 이들 사이에는 자식도 있었다. 카미유는 신경 쓰지 않았다. 사람들은 카미유의 불행한 가정사를 술안주로 뒀다. "부모에게 못 받은 사랑을 늙은이 로댕에게 구걸하고 있다"는 모욕적인 말도 굴러다녔다. 카미유는 못 들은 척했다. 카미유는 결국 자신이 로댕 부인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 생각뿐이었다. 카미유는 로댕과 같이 '지옥의 문', '입맞춤', '칼레의 시민' 등을 작업했다. 특히 '입맞춤'을 작업하며 불륜 관계인 남녀의 끈적한 자세를 구상할 땐 괜히 웃음과 눈물이 함께 나왔다.

카미유 클로델, The Waltz

로댕도 카미유를 아꼈다.

카미유의 백합 같은 외모, 반짝이는 재능을 모두 사랑했다. 로댕은 카미유에게 자기 작품 일부를 직접 만들도록 했다. 그 오만한 로댕이 카미유를 자신과 동일시한 셈이다. 로댕은 카미유가 자신과 로즈와의 관계를 추궁하자 절절한 글도 썼다. "그대를 미치도록 사랑해. 다른 어떤 여자에게, 어떤 감정도 없어. 내 영혼은 통째로 그대 것이야. (…) 나는 울부짖지만 그대는 아직도 의심해. 그대 없는 나는 이미 죽었어. (…) 신성한 아름다움, 말하고 사랑하는 꽃, 영리한 꽃,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대 앞에 무릎 꿇고, 그대 몸을 감싸 안겠소"라는 내용이었다. 둘은 찰싹 붙어 다녔다. 둘을 위한 저택이 파리 근교에 몇 채씩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로댕의 격분, 카미유의 통곡
오귀스트 로댕, 다나이드

하지만 카미유는 그사이 아버지의 충고를 잊었다.

로댕에게 너무 몰입하지 말거라. 카미유가 로댕을 위해 쏟는 봉사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카미유는 자기 일보다 로댕 일을 돕는데 더 공들였다. 종일 로댕의 예민함을 받아냈다. 힘이 쭉 빠졌다. 카미유는 남은 힘을 쥐어짜 창작 활동을 했다. 그렇게 해 내놓은 작품을 놓고 누군가가 "로댕 표절인데?"라고 하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았다. 카미유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구원자의 탈을 쓴 로댕은 파멸자의 탈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로댕은 생기를 잃어가는 카미유에게 위로한답시고 자기 작품 '다나이드'를 선물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작품을 놓고 "로댕이 비밀 저택에서 카미유의 나체를 보고 만들었다"며 수군댔다.

카미유 클로델, Perseus and the Gorgon

참다못한 로댕의 정부 로즈가 카미유를 찾아왔다.

로즈는 평소 인내심이 컸지만(그 로댕을 감당할 정도였다!) 화에 잠식되면 주체할 수 없이 욱하는 경향이 있었다. 왠지 모르게 로댕에게는 꼼짝할 수 없는 그녀였지만, 남에게는 그 누구보다 차가울 수 있었다. 로즈는 카미유의 작업실 문을 부서질 듯 두드렸다. 안으로 들어온 로즈는 눈앞 카미유의 조각상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카미유의 생명 같은 작품들이었다. "내가 언제까지 모른 척해줘야 해? 여우짓은 적당히 해, 이 계집애야!" 로즈는 더 이상 내던질 조각상이 없어지자 카미유에게 달려들었다. 카미유의 머리채를 잡았다. 카미유를 정말 죽일 기세였다. '내 삶이, 로댕 때문에 얼마나 혼미해졌는데…!' 카미유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로즈를 힘껏 밀쳤다. 로즈는 뒤로 넘어졌다. 그 순간, 로댕이 숨을 헐떡이며 작업실로 들어왔다. "이런 미친 짓을!" 로댕이 소리쳤다. "어떻게 작업실에서 이따위 몰상식한 일을 저지를 수 있어. 당신의 히스테리에 정말 질렸어!" 로댕이 소리쳤다. 로즈가 아니었다. 카미유를 보고 한 말이었다. 로댕은 쓰러진 채 엉엉 울고 있는 로즈를 데리고 나갔다. 카미유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카미유는 바닥에 흩뿌려진 조각상의 파편을 주웠다. 손이 베여 핏방울이 떨어졌다. 카미유의 얼굴에서 눈물이 뚝뚝 흘렀다. 통곡했다. '정말 질렸다….' 그건 카미유가 할 말이었다.

마지막 이성의 끈까지…‘툭’
카미유 클로델, 성숙의 시대 [이원율 기자]

카미유는 로댕과 함께 새긴 10년 간의 나이테를 잘라내기 위해 애썼다.

때때로 돌발 행동도 했다. 카미유는 사람들을 모아 "저는 로댕의 아이를 뱄어요. 아니, 정확히는 임신했었어요. 지금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없어요"라며 폭탄선언도 했다. 로댕은 기겁했다. 로댕은 카미유의 망상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현시점에선 카미유의 말이 진실이었다는 게 정설이다. 카미유는 로댕 말고 다른 남자도 만나봤다. 그중에는 작곡가 드뷔시도 있었다. 그러나 카미유는 결국 로댕에게 돌아왔다. 정말 미친 사랑이었다. 1889년, 카미유는 로댕을 생각하며 필생의 역작을 빚었다. '성숙의 시대'다. 한 남성이 늙은 여성에게 끌려가고 있다. 이 여성은 심술궂은 마녀 같다. 고개를 떨군 남성은 못내 아쉬워한다. 뒤에 있는 젊은 여성에게 뻗은 손을 거두기를 망설인다. 이 마녀만 없다면, 당장 뒤돌아 그녀를 끌어안을 것 같다. 젊은 여성은 무릎을 꿇었다. 가면 안 된다고 절규 중이다. 남성은 로댕, 마녀는 로즈였다. 젊은 여성은 카미유였다.

카미유 클로델, 성숙의 시대(일부 확대) [이원율 기자]

카미유는 그렇게 자존심을 다 버렸다.

나약하게 울부짖는 모습을 다 보여줬다. 카미유의 동생 폴은 이 조각에 대해 "그 대단하고 오만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던 내 누이가 애원하면서, 비참하게 무릎을 꿇고 있다. 그녀에게는 이미 영혼이 사라졌었다"고 했다. 카미유는 로댕이 이 작품을 보고 내심 기뻐하길 바랐다. 자신의 진짜 처지, 진짜 속마음을 대신 드러내 줬다며 옆구리를 쿡 찔러주길 바랐다. 하지만 카미유의 바람과 달리 로댕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작품 공개를 막으려고 했다. 로댕과 로즈의 사이는 생각보다 더 견고했다. 로댕에게 카미유는 오만 정이 떨어진 불장난의 상대이자, 이젠 피해망상증 환자에 불과했다. 누군가는 로댕이 카미유의 눈부신 천재성에 압도돼 억지로 깎아내렸다는 말도 했다. 실제로 로댕은 이 조각상의 작품성에 기겁했다. 로댕은 질투가 많았다. 최고의 위치에 오른 그는 누군가가 그 자리를 채갈까 봐 늘 불안해했다. 카미유는 로댕을 꺾을 수 있는 그 시대 유일한 존재였다.

“로댕이 제 모든 걸 훔쳐갔어요”
영화 'Camille Claudel(1988)' 예고편 중 일부 캡처

로댕에게 버림받은 카미유는 일순간 무너졌다.

사실, 카미유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그녀는 결국 줄을 놓은 것이었다. 신은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만큼 시련을 안긴다고 한다. 그 말이 맞는다면 신은 카미유를 너무 편애한 점도 없지 않다. 카미유는 세상이 두려워졌다. 그녀는 자기 작품을 직접 깨부쉈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옛 악몽을 되살아나 자신을 괴롭히는 탓이었다. 삶을 지탱해준 조각상은 그렇게 하나, 둘 박살 났다. 카미유는 차츰 낭인이 됐다. 산발이 된 머리, 흙투성이의 옷과 신발 차림으로 거리에 출몰했다. 말을 걸면 "로댕이 날 쫓아와요"라며 대꾸했다. 이쯤 카미유는 돈도 다 떨어졌다. 로댕과의 결혼을 꿈꾼 그녀가 로댕의 작업실에서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은 탓이었다. 볼품없는 음식에 싸구려 와인을 털어 넣은 카미유에게는 늘 술 냄새가 났다. 한겨울에는 난로를 들일 돈이 없어 벌벌 떨었다. 집에서 길고양이 12마리와 살을 부비며 생활했다.

영화 'Camille Claudel(1988)' 예고편 중 일부 캡처

그사이 카미유는 얼마 남지 않은 조각상을 도둑맞았다.

카미유는 이것도 로댕이 훔쳤다고 주장했다. 로댕이 지난 10년간 그랬듯 이번에도 자기 영감을 빼앗아 갔다고 했다. 망상이었다. 그 사건 이후 카미유는 로댕과 관련한 모든 것을 불태웠다. 몇몇 화상은 그런 카미유를 안타깝게 여겨 개인전도 열어줬다. 애석하게도 카미유의 작품은 매번 로댕의 아류작으로 불릴 뿐이었다. 한때 여성으로 살롱에서 최고상을 받았던 카미유의 조각상은 한 점도 팔리지 않았다. 끝이었다. 카미유는 생을 완전히 내려놨다.

30년간 감금, 쓸쓸한 최후
영화 'Camille Claudel(1988)' 예고편 중 일부 캡처

카미유는 다시 한번 눈을 떴다.

더 이상 19살의 꽃다운 나이가 아니었다. 술래잡기를 하며 뛰어놀던 부셰의 작업실 앞 마당도 아니었다. 로댕과 사랑을 속삭이던 저택도 아니었다. 이곳은 어머니와 폴의 결정으로 온 수용소였다. 지난 1913년. 카미유를 아낀 아버지가 사망한 직후에 이끌려 온 장소였다. 반년? 1년? 어쩌면 5년? 카미유는 수용소로 온 첫 날부터 지금까지 몇 년이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카미유는 멍하게 누워 있었다. 몸을 뒤척일 때마다 어제 쓴 편지가 바스락거렸다. 좁은 창틈으로 햇빛이 내려왔다. 오늘은 날씨가 맑을 것 같았다. 어제 오지 않은 폴이 오늘은 올지도 모른다. 오늘이야말로 "오래 기다렸지? 고생 많았어"라며 밖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이곳에 온 뒤 바깥출입이 막혔던 그녀가 드디어 양팔 벌려 햇살을 만끽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나가면 무엇부터 할까. 로댕을 찾아야 한다. 그간 나를 왜 미행했고, 무슨 이유로 내 작품을 훔쳤는지 캐물어야 한다. 로댕이 다시 만나자고 애원하면? 못이기는 척 손을 꼭 잡아줄 것이다. 그다음 술을 끊고, 새로운 조각상을 빚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다.

영화 'Camille Claudel(1988)' 예고편 중 일부 캡처

카미유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발소리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날이 저물었다. 카미유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꾸깃꾸깃해진 편지를 직원에게 맡겼다. 침대로 돌아왔다. 벌레 몇 마리가 재빨리 숨었다. 폴은 오늘도 오지 않았다. 내일은 올지도 모른다. 조금 더, 아주 조금 더라면 견딜 수 있었다. 카미유의 눈은 황량했다. 카미유는 이날 죽었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탄 카미유는 오들오들 떨며 눈을 감았다. 79살이었다. 정신병원에 오고 근 30년이 흐른 후였다. 로댕이 죽고서 26년이 지난 뒤였다. 카미유가 기다리던 폴은 그녀가 죽은 다음에도 오지 않았다. 카미유는 무연고자가 됐다. 묘소도 없이 공동으로 매장됐다. 지금도 그녀의 시신이 어디 묻혔는지 아는 이는 없다.

〈후암동 미술관 이론 편 읽는 순서〉

1)천사가 이렇게까지 운다고? 무섭게 왜 그래[후암동 미술관-조토 편] - 르네상스 선구자(2022. 7. 2.)

2)뻥 아냐, 600년전인데 이 정도 ‘입체 그림’ 있었다[후암동 미술관-마사초 편] - 원근법 선구자(2022. 8. 27.)

3)세계서 가장 유명한 이 ‘레이저 눈빛’, 그것은 사랑?[후암동 미술관-얀 반 에이크 편] - 유화 선구자 (2022.5.21.)

4)‘레드벨벳’도 춤추게 한 이 화가의 정체…"악마의 아들? 나 원 참" [후암동 미술관-보스 편] -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5.28.)

5)아리따운 금발 여인, 외간남자 목을 베고 있는거야?[후암동 미술관-카라바조 편] - 바로크 선구자 (2022.6.11.)

6)아름다운 여인, 끌어안고 난리난 옆 커플이 부러워[후암동 미술관-와토 편] - 로코코 선구자(2022.10.8.)

7)맨몸 여인들, 전쟁 뛰어들어 “그만!” 사자후…싸움 막았다[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다비드 편] - 신고전주의 선구자 (2022.10.15.)

8)표류 D+13, 왜 몰랐지? 뗏목 위 널린 게 먹을건데[후암동 미술관-테오도르 제리코 편] - 낭만주의 선구자 (2022.5.14.)

9)“천사요? 데려오면 그려드리죠” 이놈의 똥고집[후암동 미술관-귀스타브 쿠르베 편] - 사실주의 선구자 (2022.5.7.)

10)벌거벗은 이 여자, 뭐 때문에 빤히 쳐다보나[후암동 미술관-에두아르 마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2022. 4. 23.)

11)“못 그렸는데 폼만 잡아” 욕먹던 이 그림, 3300억이요? [후암동 미술관-클로드 모네 편] - 인상주의 선구자⑵ (2022.4.30.)

12)‘점투성이’ 수상한 커플 정체는? [후암동 미술관-조르주 쇠라 편] - 신인상주의 선구자 (2022. 6. 25.)

13)반 고흐 최애작, 별밤·해바라기 아닌 ‘이 사람들’ [후암동 미술관-빈센트 반 고흐 편] - 표현주의 선구자 (2022.6.4.)

14)이 ‘사과’ 때문에 세상이 뒤집혔다, 도대체 왜?[후암동 미술관-폴 세잔 편] - 근대 회화 선구자(2022. 7.9.)

15)‘생각하는 사람’ 진짜 정체, 남모를 사정도 있었다[후암동 미술관-오귀스트 로댕 편] - 근대 조각 선구자 (2022. 10. 22.)

16)“로댕 아이를 뱄다” 폭탄선언 여성, 30년 수용소에 갇혔다[후암동 미술관-카미유 클로델 편] - 근대 조각 특별 편 (2022. 11. 5.)

17)화끈한 키스, ‘이 여성’ 사르르 녹아내리다[후암동 미술관-구스타프 클림트 편] - 빈 분리파 선구자 (2022. 8. 13.)

18)나체 여인, 어쩌다 사자 득실대는 정글 한복판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루소 편] - 근대 초현실주의 선구자 (2022. 7. 30.)

19)당신은 모르실거야, 키스하는 두 사람 왜 이 꼴인지[후암동 미술관-르네 마그리트 편] - 근대 초현실주의 특별 편 (2022. 9. 3.)

20)헐크색 피부 갖게 된 ‘이 여성’…이 놈의 ‘남편’ 때문에[후암동 미술관-앙리 마티스 편] - 야수주의 선구자 (2022. 7. 16.)

21)피카소도 ‘이 그림’에 “대박!” 감탄, 각성했다는데[후암동 미술관-피카소·마티스 편] - 야수주의·입체주의 특별 편 (2022. 9. 10.)

22)잘생긴 법학 교수님, ‘이것’ 그렸더니 미술계 '발칵'[후암동 미술관-바실리 칸딘스키 편] - 추상회화 선구자 (2022.7. 23.)

23)“이건 나도 그리겠다!” 1순위 그림, 그 놀라운 비밀[후암동 미술관-몬드리안 편] - 추상회화 선구자⑵ (2022. 8. 6.)

24)스파게티 면발? 1315억에 팔린 그림, 충격적 이유[후암동 미술관-잭슨 폴록 편] - 액션페인팅 선구자 (2022. 10. 29.)

25)권총도 채찍도 버텼는데, ‘이 남자’ 행동에 무너졌다[후암동 미술관-마리나 아브라모비치 편] - 행위예술 대모 (2022. 8. 20.)

〈후암동 미술관 현장 편 읽는 순서〉

1)이건희 컬렉션, 이 ‘다섯 작품’ 놓치지 마시라[후암동 미술관-‘어느 수집가의 초대’ 출장 편] - 전시 특집 (2022. 6. 18.)

2)알코올 중독 ‘이 남자’, ‘파리’에 미치자 놀라운 일 터졌다[후암동 미술관-몽마르트 언덕 편] - 동행자 : 모리스 위트릴로 (2022. 9. 17.)

3)고흐 “슬픔은 왜 나한테만” 펑펑 울었다, 고작 2평 다락방에서[후암동 미술관-오베르 편] - 동행자 : 빈센트 반 고흐 (2022 9. 24.)

4)모네 “앞이 안 보여도 상관없어”…백내장도 못 막은 그의 ‘최후작’[후암동 미술관-지베르니 편] - 동행자 : 클로드 모네 (2022. 10.1.)

yul@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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