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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시간 스트리밍=일회용컵 2.5개” 음반·스트리밍·숲 조성까지…Z세대 K-팝 팬덤이 행동한다
1만 K-팝 팬덤의 적극적 기후행동
‘지속가능한 K-팝’ 위한 다양한 활동
친환경 음반 제작 등 기후행동 요청
음악 스트리밍업체엔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
“음악 들으며 죄책감 느끼고 싶지 않아”

Z세대 중심 팬덤의 목소리로 업계도 변화
YG, FNC 친환경 음반 제작 앞당
하이브, 디지털 음반 발매 시도
멜론, 친환경 데이터센터 구축 중

케이팝포플래닛은 국내 스트리밍업체에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성명을 발표하기 앞서 ‘멜론은 탄소맛’ 캠페인을 벌였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1시간 음악 스트리밍=일회용 플라스틱컵 2.5개 사용.”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3년 사이 내놓은 신작 음반은 한 해 평균 세 장이다. 정규는 물론 싱글, 미니앨범 등 다양한 형태의 앨범을 포함한 수치다. 여느 K-팝 가수들의 한 해 활동지표와 다르지 않다.

K-팝 팬덤이 만든 기후위기 대응 플랫폼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에 따르면 좋아하는 가수의 컴백시기에 팬들은 하루평균 5시간 이상 스트리밍(streaming·인터넷에서 음성이나 영상, 동영상 등을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기술) 서비스로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재생한다. 1시간 음악 스트리밍은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2.5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케이팝포플래닛은 국내 스트리밍업체에 재생에너지 전환 요구 성명을 발표하기 앞서 ‘멜론은 탄소맛’ 캠페인을 벌였다. [케이팝포플래닛 제공]

1만 ‘K-팝 팬덤’이 움직였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최근 멜론·바이브·플로·지니뮤직·벅스 등 국내 음원 서비스에 ‘친환경 스트리밍’을 요구하는 1만명의 청원과 함께 성명서를 전달했다.

케이팝포플래닛의 이다연 활동가는 “좋아하는 가수가 컴백하면 멜론, 벅스에서 앨범의 노래를 반복해 듣는 것을 ‘스밍(스트리밍)을 돌린다’고 표현한다”며 “음반 구매와 함께 음원 스트리밍은 팬들이 가수를 응원하는 전통적인 방법인데 실물 음반의 탄소배출 문제는 알려져 있지만 음악 스트리밍의 탄소배출 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두지 않아 목소리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 음원 스트리밍 시대…“1시간 스트리밍에 55g 탄소 배출”

실물 음반은 구매해도 음악은 ‘디지털’로 듣는 시대다. 음악 청취 방식이 디지털로 전환되며 멜론, 지니, 플로 등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사용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됐다. 그러나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감상하는 행동이 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는 사실 드물다. 케이팝포플래닛이 1097명의 응답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의 62.4%가 “음악 스트리밍이 탄소를 배출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스트리밍으로 듣는 음악파일은 각각의 음악 스트리밍업체의 데이터센터에 저장된다. K-팝 팬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검색하면 데이터센터에 있는 음악파일이 네트워크를 통해 중계장치인 라우터로 전송, 이 라우터가 와이파이를 통해 스마트폰으로 파일을 전송해줘 음악이 들리는 것이 스트리밍의 원리다. 문제는 음악 재생을 위해 데이터센터, 라우터, 와이파이 등의 시설을 운영하는 전력이 엄청나게 소비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화석연료가 사용돼 전력을 생산, 탄소배출로 이어진다.

2019년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의 카일 디바인과 영국 글래스고대학의 맷 브레넌이 시대별 음악 소비를 환경비용 관점에서 분석, 실물 앨범에서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시대로 전환된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은 도리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우드 서비스로 음악을 저장·처리하는 전력사용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연구진이 음악을 저장하고 전송하는 과정에서 생산되는 플라스틱과 전력사용량 등을 온실가스 배출량으로 환산한 결과, 1977년 1억4000만㎏에서 2016년 2억~3억5000만㎏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스포티파이

영국의 탄소저감 관련 비영리기관 카본트러스트(The Carbon Trust)에 따르면, 음악이나 동영상 등 미디어를 1시간 스트리밍할 때 55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일회용 플라스틱컵 한 개의 탄소배출량은 23g이다. 심지어 스트리밍 서비스로 1시간 동안 음악을 듣는 것은 플라스틱빨대 40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수치다. 플라스틱빨대는 개당 1.45g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이 활동가는 “5시간 이상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들으면 플라스틱, 비닐 포장으로 된 실물 음반 한 장의 탄소배출량보다 더 많은 양이 배출된다”고 말했다. 실물 CD의 탄소배출량은 288g인 반면 5시간 이상 스트리밍할 경우 약 300g의 탄소가 배출된다.

이는 단순 수치화로, 모든 스트리밍업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멜론 측은 “이용자가 최초 스트리밍 시 단말기에 데이터가 캐싱되기 때문에 스트리밍 때마다 데이터센터를 거치지는 않는다. 1시간 스트리밍에 55g까지의 탄소배출량이 나온지는 않는다”고 설명했다.

■ 스포티파이·애플뮤직처럼…“재생 에너지 사용 전환해야”

1만명의 K-팝 팬덤이 청원에 참여해 이러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지속 가능한 K-팝’을 위해서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성명서를 통해 “음원 스트리밍은 팬들이 아티스트를 응원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임에도 현재 한국에는 적극적으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스트리밍사업자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활동가는 “온라인 음원을 재생할수록 더 많은 탄소가 배출돼 기후위기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응원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청원의 취지를 설명했다.

음악 스트리밍 제공업체가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친환경 데이터센터’ 구축하고, 이 센터에서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면 기후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 부분 감소한다. 세계 최대 음악 플랫폼인 스포티파이를 필두로 애플뮤직, 유튜브는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통해 기후 영향을 줄이고 있다.

[스포티파이 제공]

스포티파이는 지난 2019년부터 기존 데이터센터에서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으로 콘텐츠를 전환,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다. 구글은 “이 플랫폼은 탄소중립적이며, 2030년까지 모든 데이터센터에 클린에너지로 전력을 공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애플뮤직은 아마존 웹 서비스를 이용해 전체의 65%를 재생에너지로 상용하고 있다.

스포티파이의 경우 스트리밍 서비스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탄소중립을 위한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레이스 투 제로(Race to zero) 캠페인’에 합류했고, 해마다 연간 리포트를 발행해 탄소배출량을 공개 중이다. 지난 3월 스포티파이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스포티파이 직원 및 월간 활성 사용자당 온실가스의 배출집약도는 2019~2020년에 약 25% 감소했다. 현재 스포티파이는 향후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순배출 제로 달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기 위한 데이터센터를 갖춘 곳이 거의 없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 과정 자체가 ‘기업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고 호소한다. “구글, 애플 등이 위치한 미국과 유럽은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20~60%대에 이르지만, 한국은 5.8%에 그친다”며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는 환경”이라는 것이다.

멜론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중 하나도 미국과 중국, 유럽 사업장에서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했지만 국내에서는 재생에너지를 일부만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멜론이 속한 카카오는 아직 자체 데이터센터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 2023년 준공을 목표로 친환경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고 밝혔다. 케이팝포플래닛에선 여러 여건을 고려해 투명한 정보 공개를 함께 요구하고 있다. 이 활동가는 “해외와 다른 여건은 있지만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업체에서도 ESG경영 차원에서 기후에 미치는 영향과 현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에너지 비율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의 첫 솔로 음반은 일반반(실물 음반)이 아닌 QR코드를 인식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위버스(하이브가 만든 자체 팬플랫폼) 앨범’으로 선보였다. [빅히트뮤직 제공]
Z세대 팬덤의 기후행동…친환경 음반 제작·ESG경영으로의 변화 만들어

Z세대를 중심으로 한 K-팝 팬덤의 다양한 목소리는 K-팝 산업을 변화를 이끄는 중요한 역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초 생긴 케이팝포플래닛은 그간 여러 활동을 통해 K-팝 산업계에 책임감 있는 활동을 요구했다.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는 캠페인을 시작으로 대형 기획사와 K-팝 아티스트, 팬덤이 탄소배출을 줄이는 것에 앞장서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왔다.

‘K-팝 팬덤’의 기후행동은 보다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향후 K-팝을 넘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올 하반기엔 K-팝의 팬문화 중 하나인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을 딴 숲을 조성하는 문화를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이 활동가는 “숲 조성을 넘어 심어진 숲을 입양해 삼림파괴로부터 보호하는 캠페인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팝의 주요 팬층으로 자리 잡은 Z세대는 “다양한 정치, 사회, 국제 이슈에 대한 관심으로 세계적 영향력이 있는 K-팝 스타에게 목소리를 내라”(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요청을 하고 있다. K-팝의 해외 팬덤이 확대되자 이들을 중심으로 특히 더 많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활동가는 “K-팝 팬층의 다수인 Z세대는 기후위기의 피해를 직접적으로 겪어 기후위기 감수성이 높다”면서 “케이팝포플래닛은 우리가 K-팝을 사랑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후행동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업계에서도 K-팝의 주요 팬층인 Z세대 팬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며 변화하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해 11월 하이브를 필두로 한 국내 4대 기획사(SM, JYP, YG)에 기후행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와 1만여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이들이 목소리를 높여온 ‘친환경 음반’ 제작에 대한 요구는 세계적인 그룹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소속된 하이브, YG엔터테인먼트 등을 중심으로 실현되고 있다.

SF9의 친환경 소재 음반. [FNC엔터테인먼트 제공]

YG엔터테인먼트가 가장 발 빠르게 움직였다. YG에선 플라스틱, 비닐포장으로 ‘쓰레기더미’로 치부됐던 K-팝 가수들의 음반은 저탄소 용지, 재생 용지, 100% 생분해 플라스틱을 사용한 ‘친환경 음반’으로 제작하고 있다. ‘SF9’ 등이 소속된 FNC엔터테인먼트도 콩기름 잉크와 수성 코팅 등을 사용해 친환경 소재로 음반을 제작, 환경오염의 부담을 줄여가고 있다. 하이브에선 ‘디지털 음반’을 내놓고 있다. ‘방탄소년단’ 멤버 제이홉의 첫 솔로 음반을 일반반(실물 음반)이 아닌 QR코드를 인식해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위버스(하이브가 만든 자체 팬플랫폼) 앨범’을 선보였다. 지난 1월 IST엔터테인먼트는 소속 그룹 ‘빅톤’은 CD가 없는 ‘플랫폼 앨범’을 발매했다. 뿐만 아니라 하이브는 지난 3월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고, SM은 지난 5일 유엔글로벌콤팩트에 가입하는 등 ESG경영을 강화하고 있다. JYP는 K-팝업계 최초로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캠페인인 한국형 ‘RE100’을 이행하고 있다.

이 활동가는 ”엔터테인먼트업계가 팬들과의 소통을 거부하는 불통의 이미지가 큰데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며 변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며 “메이저 엔터테인먼트사인 하이브에선 케이팝포플래닛의 활동과 요구를 지속적으로 살피고 있다는 답변과 함께 실제로 대형 가수의 솔로 음반을 디지털로 제작하는 시도로 변화를 보여줬다. 우리의 목소리가 의미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산업계에서도 현재의 여건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으로 친환경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멜론에선 내가 응원하는 아티스트의 이름으로 숲을 조성하는 ‘숲;트리밍’을 진행 중이다. K-팝 팬덤의 중요한 팬문화를 함께하며 ‘기후위기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음악생태계 조성하겠다’는 입장이다. 지니뮤직의 모회사인 KT는 RE100에 가입했다.

업계에선 K-팝 팬덤의 기후행동이 앞으로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한 대형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단순 활동가가 아닌 K-팝을 직접 소비하는 주체인 팬덤이 주축이 된 만큼 엔터테인먼트사는 물론 유관업계에서도 이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며 “과거와 달리 지금의 K-팝은 팬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함께 발 맞춰 가야 하는 때가 됐다. 공정성 지수가 높고, 사회 참여를 강조하는 Z세대 팬덤의 목소리로 인해 업계에서도 다양한 고민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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