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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번이나 이사”...여성들 오늘도 불안
곳곳에 스민 ‘신당역’ 그림자
스토킹 경범죄 인식부터 바꿔야
집 창문앞 서있거나 문자·이메일
전화번호 바꾸고 이사했는데 또
신고자는 극도로 예민·절박한데
경찰은 ‘항목따라 평가’ 괴리감

“벗어날 수가 없다.” 수개월에 걸쳐 스토킹 피해를 겪은 30대 여성 A씨는 당시의 감정을 이렇게 회상했다. A씨는 두 번이나 거주지를 옮겼지만 여전히 불안에 시달린다. 언제 다시 주변을 수소문해 자신을 찾아올지 몰라서다.

신당역 역무원 살인 사건이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나며 수사당국 등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시민들 사이에선 불안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스토킹처벌법이 마련됐음에도 이 같은 상황이 재발한 데 따라, 관련 범죄의 주요 표적이 되는 여성들은 스토킹을 여전히 경범죄로 취급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고 지적한다.

A씨는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수개월에 걸쳐 스토킹을 당했다. 피해가 시작된 건 평소 알고 지내던 남성에게 불편함을 표시한 직후부터다. 대뜸 집에 찾아온 가해자를 타일러 돌려보낸 후, 스토킹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말없이 A씨의 집 창문 앞에 서있거나, ‘만나달라’는 내용이 담긴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수차례 보낸 것.

A씨는 결국 전화번호를 바꾸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갔다. 그러나 주변을 수소문한 가해자가 또 다시 주소를 알아내 문을 두드린 새벽, A씨는 신고를 결심했다.

문제는 당시 수사기관의 대처였다. A씨는 “경황이 없어 가해자와 만난 날을 기억하지 못하자 ‘정신 차리세요’ 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며 “조서를 쓴 뒤엔 가해자가 찾아왔던 집으로 다시 가야했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제공하는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에도 한계가 있다는 게 A씨의 지적이다. 경찰에선 안전조치를 제공하기에 앞서 피해자를 대상으로 ‘위험성 판단’을 진행한다. A씨도 신당역 사건의 피해자도 이 단계를 거쳤지만, 가장 낮은 수준인 ‘위험성 없음 또는 낮음’ 평가를 받았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위험성 판단 체크리스트’를 보면 첫 번째 항목에서 ‘가해자로부터 폭행·협박·성폭력·스토킹·감금 등을 당한 사실이 있느냐’고 묻고, 다음 항목에서 그 빈도를 묻는다. ‘뺨 때림’, ‘목을 조름’, ‘흉기로 때리거나 찌름’, ‘차로 납치’ 등의 위해 행위가 있었는지 체크하는 항목도 있다.

A씨는 “범죄를 피하기 위해 극도로 조심하는 단계에서 신고를 했는데 폭행이나 감금 여부를 물어보니, 실효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며 “위험성이 낮다고 평가를 받은 뒤, 당시 수사관이 개인적으로 ‘이사를 가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을 해왔다”고 했다. A씨는 그렇게 두 번째 이삿짐을 쌌다.

이와 관련 서울 소재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항목에 따라 평가했는데 결과가 애매하고, 피해자도 원치 않으면 결국 경찰 직권에 맡기는 구조인데 판단하기에 부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신당역 사건 발생 보름째였던 지난 28일 오후 신당역 인근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도 여러 시민들이 모였다. 서울교통공사 직원들뿐 아니라 메트로9호선 직원들도 모여 근무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추모제에 방문한 대학생 변모(21)씨는 “피해자가 처음 신고를 했을 때부터 위험성을 경찰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지 않았느냐”며 “아무리 처벌법을 만들어도 일선 현장에서 스토킹을 여전히 경범죄로 인식한다면 쓸모가 없다”고 지적했다.

신당역 10번 출구 바깥 환풍구에도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담긴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막을 수 있는 살인이었다’는 등 미흡했던 예방 체계를 지적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를 들여다보던 장유진(27·여) 씨는 여성 직원 당직 감축 등 서울교통공사 대책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지금으로선 교통공사가 가장 실망스럽다”며 “피해자 여성만의 문제도, 역무원만의 문제도 아닌데 안전한 근무 환경을 정비하는 게 최우선 아니겠느냐”고 했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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